[기고] 고등학교 AI 교육, 일반고와 실업계는 다른 설계가 필요하다
한 가지 AI 교육 모델로 고등학교 단계의 모든 학생을 아우를 수 있을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이어지는 AI 교육의 방향이 제시되자, 다음 화두는 자연스럽게 고등학교로 옮겨왔다. 특히 일반계와 실업계 고등학교의 교
yna.co.kr 보도 | 5 hours ago [기고] 고등학교 AI 교육, 일반고와 실업계는 다른 설계가 필요하다
한 가지 AI 교육 모델로 고등학교 단계의 모든 학생을 아우를 수 있을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이어지는 AI 교육의 방향이 제시되자, 다음 화두는 자연스럽게 고등학교로 옮겨왔다. 특히 일반계와 실업계 고등학교의 교육 목표와 학습 환경이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이를 동일한 AI 교육 틀 안에 묶어두는 것은 학생들에게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AI를 얼마나 빨리 가르칠 것인가보다, 학생의 성장 단계에 맞춰 무엇을 먼저 가르치고 무엇을 AI와 함께하도록 할 것인가의 순서 설계가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AI 교육의 중심에는 여전히 교과의 기초 지식과 탐구 능력이 놓여야 한다. AI 시대라 해서 전통적 학습의 가치를 낮게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위에 AI를 활용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저자는 탐구보고서 작성 사례를 들어 차이를 구체화했다. AI에게 보고서 전체를 맡기는 행위와, AI를 활용해 연구 질문 후보를 만들고 자료 검색 방향을 넓히며 자신이 작성한 논리의 약점을 점검하는 행위는 교육적으로 같은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학교에서는 AI 사용 여부만을 표시하는 단순한 규칙을 넘어, 어떤 과정에서 어떤 목적으로 AI를 활용했는지 드러내도록 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궁극적 목표는 AI에게 답을 받는 학생이 아니라, 자신이 아는 것을 바탕으로 AI의 답을 사용할 줄 아는 학생을 만드는 데 있다.
반면 실업계 고등학교의 AI 교육은 다른 결을 띠어야 한다. 여기서 AI는 별도의 교양 교육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반도체 공정, 로봇 제어, 스마트 제조, 설계와 생산관리 등 학생이 배우는 실제 직무와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 현장에서 AI가 실제 업무 도구로 빠르게 확산하는 상황에서 실업계고 학생에게 AI 활용 경험을 늦추는 것 자체가 교육적 위험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다만 전공 지식 없이 AI의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직무를 이해해야 AI가 생성한 결과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에 도입된 AI 기반 조리로봇 사례처럼 현장에서 즉시 체득할 수 있는 교육 인프라가 그 해법의 하나로 제시됐다.
교육 내용을 바꾸면 평가 역시 반드시 함께 바뀌어야 한다. AI 시대의 학교는 학생이 AI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과 AI를 활용해 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모두 길러야 하며, 학교 평가 역시 이 두 가지 능력을 모두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한 시험 안에서 동시에 측정하려 하면 문제가 복잡해지므로, AI 없이 치르는 시험과 AI 활용을 허용한 프로젝트를 분리해 운영해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됐다. 그러나 고등학교 평가가 대학입시와 맞닿아 있다는 현실적 제약은 명확하다. AI 협업 능력을 곧바로 대입의 새로운 변별 요소로 삼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료 AI 서비스를 여러 개 이용할 수 있는 학생과 제한된 무료 서비스에 의존하는 학생의 환경 차이, 사교육의 영향력, 평가의 신뢰성과 공정성 문제 등이 해결 과제로 거론됐다. OECD 역시 생성형 AI가 교육에 공정하게 활용되려면 기기와 연결성뿐 아니라 교사 연수 등 활용 기반을 학생들에게 고르게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그렇다고 AI 활용 능력을 입시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학교 자율에만 맡겨두어서도 안 된다. 입시와 직접 연결되지 않은 교육이 쉽게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 한국 교육 현실이라는 진단 때문이다. 필요한 능력인데 입시에 넣을 수 없는 것이라면, 정규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으로 일정 수준의 학습과 탐구 활동을 필수 이수하도록 하는 별도의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평가 대상도 결과물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어떤 질문을 AI에 던졌는지, AI의 답에서 무엇을 의심했는지, 어떤 자료로 검증했는지, 최종 결과를 어떻게 수정했는지 등의 과정 기록으로 남겨 학생이 AI를 얼마나 주도적으로 통제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는 구체적 설계도 함께 제시됐다. 반면 수능과 같은 통제된 입시 평가는 학생이 AI 없이 스스로 갖춘 교과 지식과 사고 능력을 확인하는 역할을 계속 맡을 수 있으며, 계산기나 검색엔진의 사례처럼 외부 도구가 강해질수록 인간이 결과를 해석하고 검증하기 위해 머릿속에 남겨야 할 힘의 가치는 오히려 더 분명해질 수 있다는 시각이 덧붙었다.
결국 초·중·고 AI 교육의 핵심은 도입 속도가 아니라 학습의 순서를 제대로 정하는 일이라는 결론으로 요약된다. 초등학교에서 읽고 쓰고 계산하고 생각하는 기초를 충분히 다지고 AI의 성격과 위험 같은 기본 소양을 익히고, 중학교에서 AI의 답을 비교하고 의심하며 출처와 오류를 검증하는 경험을 넓히고, 고등학교에서 충분한 교과 지식 위에서 AI와 실제로 협업해 더 복잡한 문제를 푸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나이에 같은 도구를 허용하자는 의미가 아니며, 교과와 과제의 목적, 학생이 이미 갖춘 능력에 따라 경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교육부와 AI 중점학교 1천141개교 운영, AI 융합형 교육실 사업 등 국내 정책이 학교 현장의 AI 교육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미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제 남은 과제는 양적 확대를 넘어 단계별 목표와 평가 체계를 어떻게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AI가 먼저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시대일수록 학교는 오히려 더 어려운 질문을 떠안게 됐다. 아이의 머릿속에서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 할 생각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생각이 자란 뒤 어떤 일을 AI와 나누게 할 것인가. 초·중·고 AI 교육의 설계는 바로 그 질문에 답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