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과제하면 배울 게 없고, 그게 왜 문제인지 깨닫지 못한다” — 교실에서 시작된 생성형 AI의 성찰

새 학기 오리엔테이션 시간. 한 교사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과제에 AI를 써도 됩니다. 단,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게 괜찮고, 매번 기말고사에서 왜 실패하는지 스스로에게 놀라는 게 괜찮다면요.” 이 짧은 발

x.com 보도 | 2 days ago “AI로 과제하면 배울 게 없고, 그게 왜 문제인지 깨닫지 못한다” — 교실에서 시작된 생성형 AI의 성찰

새 학기 오리엔테이션 시간. 한 교사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과제에 AI를 써도 됩니다. 단,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게 괜찮고, 매번 기말고사에서 왜 실패하는지 스스로에게 놀라는 게 괜찮다면요.” 이 짧은 발언은 소셜미디어 X(구 트위터)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단순한 풍자나 냉소로 치부하기에는, 지금 한국과 전 세계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성형 AI 활용의 민낯을 정확히 짚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교사는 AI 사용 자체를 금지하지도, 막연히 경고하지도 않았다. 대신 ‘학습의 주체’가 누구인지, ‘배움의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셈이다.

실제로 이 교사의 발언이 주목받는 이유는 현재 교육 현장의 딜레마를 압축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2023년 이후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 도구가 대중화되면서, 전 세계 교육계는 ‘금지’와 ‘허용’ 사이에서 갈팡질팡해왔다. 뉴욕시 교육국은 초기에 챗GPT를 학교 네트워크에서 차단했지만, 몇 달 만에 이를 번복하고 오히려 AI 리터러시 교육을 도입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교육부는 2025년부터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교실 현장에서는 AI를 ‘과제 대필 도구’로만 인식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학력 저하와 사고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AI 사용 자체가 아니라, ‘무분별한 위임’에 있다. 인지심리학에서 ‘생성 효과(generation effect)’라고 부르는 현상은, 정보를 단순히 읽거나 받아들일 때보다 스스로 재구성하고 만들어낼 때 기억과 이해가 훨씬 오래 지속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제는 단순히 ‘제출물’을 만들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사고를 확장하고 지식을 내재화하는 인지적 과정이다. 그런데 생성형 AI가 이 과정을 통째로 대체해버리면, 학생은 결과물의 ‘소유자’일지언정 학습의 ‘주체’는 아니게 된다. 교사가 지적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기말고사에서의 실패는 단순한 성적 문제가 아니라, 지식의 구조화 능력과 문제 해결력의 부재로 이어진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발언은 ‘평가 방식의 변화’라는 더 큰 화두를 던진다. 현재의 지필고사와 과제 평가는 대부분 결과물의 ‘완성도’에 초점을 맞춘다. 학생이 AI를 이용해 완성도 높은 리포트를 제출하면, 교사는 그것이 온전히 학생의 사고를 반영하는지 판별하기 어렵다. 표절 탐지 프로그램으로는 생성형 AI가 만든 텍스트를 완벽하게 걸러낼 수 없다는 것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일부 교육 전문가들은 ‘과정 중심 평가’로의 전환을 제안한다. 즉, 최종 결과물보다 초고, 메모, 질문 목록, 수정 과정 등을 함께 제출하게 하거나, 구술 시험이나 발표를 통해 이해도를 직접 검증하는 방식이다. 이 교사의 발언이 단순히 경고를 넘어, 평가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방증으로 읽히는 이유다.

그러나 이 상황을 학생들만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이다. 학생들이 AI에 과제를 맡기는 데는 구조적인 유인이 존재한다. 과도한 학업량, 성적 경쟁, 그리고 ‘효율성’을 최우선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AI 사용을 부추긴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학생의 상당수가 과제의 ‘시간 절약’을 위해 AI를 활용한다고 답했다. 이는 게으름의 문제라기보다, 교육 시스템이 ‘깊은 사고’보다 ‘빠른 생산’을 더 높이 평가해온 결과에 가깝다. 교사가 던진 “놀라는 것이 계속 반복된다”는 표현은, 학생들이 기말고사에서 자신의 실력을 마주할 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아이러니를 정확히 포착한다. 배움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AI는 교묘하게 가려버린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 사용 투명성’을 제도화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는 AI 사용을 허용하되, 과제별로 AI 활용 범위를 명시하고 출처를 밝히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도입했다. 호주 일부 대학은 AI가 생성한 콘텐츠를 사용했는지 스스로 선언하게 하는 ‘AI 사용 선언서’를 도입했다. 중요한 것은 AI를 ‘금지’하거나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배움의 도구로 전유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I가 써준 초안을 학생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수정하는 과정은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사고력을 요구한다. 문제는 AI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학습자가 AI의 결과물을 ‘맹신’하느냐 ‘비판’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에 화제가 된 교사의 발언은 에듀테크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많은 에듀테크 기업이 ‘AI 튜터’나 ‘자동 채점 시스템’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 기술들이 학생의 사고 과정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설계된다면, 그것은 교육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학습의 빈곤’을 가속화할 뿐이다. 진정한 에듀테크 혁신은 AI가 학생을 대신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돕는 ‘비계(scaffolding)’ 역할을 할 때 가능하다. 즉, AI가 답을 주는 도구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도구’, ‘사고를 검증하는 도구’로 재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의 경고는 기술 발전의 속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교육의 본질’임을 상기시킨다.

결국 이 한마디는 디지털 시대 교육이 마주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으로 수렴된다. 기술이 학습의 전 과정을 대체할 수 있다면, 그때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단순 지식 전달이 AI로 대체된다면, 교육은 비판적 사고, 창의성, 윤리적 판단력 같은 고차원적 능력에 집중해야 한다. 교사의 발언이 수많은 공감을 얻은 것은, 많은 이들이 이미 이 문제를 체감하고 있지만 명확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AI를 막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AI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학습 윤리와 평가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그 출발점은 교실에서 학생들이 왜 배우는지, 배움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대화에서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