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kyung.com 보도 | 1 day ago

AI가 답을 줄 때, 교실에 남는 것은 '질문의 힘' — 부산 현장에서 읽는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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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답을 줄 때, 교실에 남는 것은 '질문의 힘' — 부산 현장에서 읽는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

지난 6일 부산 벡스코의 한 세미나실. 경기 복정고 이명철 교사가 마이크를 잡자, 객석의 초·중등 교사 20여 명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학생이 "갑신정변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라는 막연한 질문을 던졌고, AI가 "구체적으로 다시 써보라"고 피드백하자 학생은 스스로 "일본의 지원이 계속됐다면 청의 개입을 막고 근대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라는 탐구형 질문으로 다시 쓴 것이다. 답을 잘 찾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 교실이 길러야 할 역량은 '좋은 질문을 만드는 힘'이며, 그 중심에 AI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교육부가 주최한 '2026 인공지능 활용 선도교사 연수 및 대한민국 과학·수학·정보 교사 콘퍼런스' 현장이 바로 그 단면을 보여줬다.

[본문 1]

이번 행사의 가장 뚜렷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AI 시대의 교육은 학생에게 '더 많은 답'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질문'을 이끌어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사는 수업 설계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에는 AI 창을 열어줘도 무엇을 질문해야 할지 몰라 키보드조차 치지 못하는 학생이 많았다." 결국 도구 자체가 아니라, 도구를 작동시키는 사고력이 병목이었다. 이에 이 교사는 AI를 단순한 검색 도구가 아닌 '메타인지 코치'로 활용하는 교수법을 고안했다. 학생의 질문이 일차원적이면 AI가 다시 묻고, 학생은 그 피드백을 받아 자신의 질문을 스스로 다듬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자신의 사고 과정을 객관화하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전시장의 풍경도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찾아가는 학교 컨설팅'을 통해 학교별 디지털 여건과 수요를 진단하고 전문가가 직접 현장을 찾아가는 맞춤형 연수 체계를 소개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교원의 반복 업무를 줄이고 학습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교육현안 해결형 에듀테크 프로젝트를 전시했다. 즉, AI·에듀테크가 교실로 들어오는 방식도 일방적 공급이 아니라, 현장의 수요를 읽고 맞춤형으로 설계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사례는 이날 대한민국 수학교육상을 받은 부산 대연중 하미숙 수석교사의 수업이었다. 하 교사는 그래프를 실시간으로 조작할 수 있는 쌍방향 수학 도구 '데스모스'를 활용해 학생이 직접 그래프를 움직이며 변수의 관계를 탐색하도록 했다. "학생들이 그래프를 직접 조작하고, 교사는 학생들의 답변을 바로 확인할 수 있어 수업에 유용하다"는 하 교사의 말은, AI·에듀테크가 학생의 조작과 탐구를 가능케 하는 인터랙티브 매체로 기능해야 함을 시사한다. 단순한 정답·오답 판별을 넘어, 학생이 직접 가설을 세우고 결과를 확인하는 과학적 탐구 과정을 디지털 도구가 뒷받침하는 셈이다.

[본문 2]

이번 콘퍼런스가 시사하는 더 깊은 변화는 '교사의 역할 재정의'다. 전통적 교실에서 교사는 정답을 전달하는 지식의 전달자였다. 그러나 AI가 무한한 정보를 즉시 제공하는 시대에 그 역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명철 교사의 수업에서 교사는 직접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학생이 AI와 대화하며 질문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사고의 촉진자'로 물러선다. 하미숙 교사의 경우에도 교사는 정답을 판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의 그래프 조작과 추론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며 피드백을 제공하는 조력자다.

이런 변화는 해외 사례와도 맞닿는다. OECD의 학습 통찰력 프레임워크는 이미 수년간 '학생 에이전시(Student Agency)'를 핵심 역량으로 강조해왔다. 이는 학습자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학습 과정을 조정하는 능력을 말한다. 최근 UNESCO도 'AI와 교육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에서 AI 시대의 핵심 역량으로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문제 해결을 꼽았으며, 이는 단순히 AI를 활용하는 능력(AI Literacy)을 넘어 AI와 함께 사고하는 능력(Thinking with AI)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국의 이번 행사는 이러한 국제적 흐름을 현장 교사들이 체감하고 공유하는 장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다만 현장을 보면 과제도 분명하다. 한국교원대학교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전국 교사 중 AI·디지털 도구를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약 60%에 그치지만, '학생의 탐구 역량을 키우는 교수법에 도구를 통합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이보다 훨씬 낮다. 즉 도구의 도입 자체는 확산 단계에 들어섰지만, 이를 교수 철학과 연결하는 데는 여전히 격차가 있다. 이번 콘퍼런스에서 사례를 공유한 현장 교사들은 그 격차를 좁히려는 '선도 교사' 집단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시도한 교수법을 일반 교실로 어떻게 확산시키느냐에 있다. 이를 위해선 사례 공유의 장을 넘어, 연수·컨설팅·교원 평가 체계 전반에 '탐구형 질문 중심 수업'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번 부산 행장은 한국 에듀테크 시장의 다음 5년을 가늠하는 이정표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에듀테크 논의는 '어떤 도구를 학교에 들여올 것인가'에 집중되어왔다. 그러나 이번 사례들은 도구보다 더 중요한 질문, 즉 '도구를 어떤 교육적 의도와 결합할 것인가'를 전면에 세웠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학생이 '무엇을 물을지'를 모른다면 그 도구는 그저 빈 채팅창에 불과하다. 반대로 학생이 좋은 질문을 던질 줄 안다면 AI는 단순한 정보 검색 엔진을 넘어 사고의 거울이자 학습의 동반자가 된다.

업계가 주목해야 할 변화도 이 지점에 있다. 단편적인 문제 풀이나 콘텐츠 추천에 머무르던 에듀테크는 이제 '학생이 자신의 질문을 발전시키는 과정을 지원하는 도구'로 영역을 넓혀야 한다. 이는 곧 교육부·지자체 발주형 에듀테크 사업의 평가 기준이 '기능의 풍부함'이 아니라 '교수학습 설계와의 정합성'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함을 의미한다. 다행히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찾아가는 컨설팅,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교육현안 해결형 프로젝트 등은 수요 기반 접근을 취하고 있어 방향성은 맞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를 전국 1만여 개 학교의 일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교원 연수 체제의 내실화, 평가 문해력 강화,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질문이 좋은 수업'이라는 교실 문화의 합의가 함께 따라가야 한다.

AI는 답을 빠르게 준다. 그러나 어떤 질문을 던질지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부산에서 시작된 이 작은 수업 사례들이, 대한민국 교실 전반의 질문의 질을 바꿀 수 있을지 향후 몇 년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