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교부금, 줄일 것이 아니라 '전환'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가 현실이 되면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하 교육교부금)을 두고 '규모 축소'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국세의 일정 비율(총액 기준 약 20.79%)을 교육재정으로 자동 배분하는 현행 제도가 학생 수

fnnews.com 보도 | 5 days ago AI 교부금, 줄일 것이 아니라 '전환'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가 현실이 되면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하 교육교부금)을 두고 '규모 축소'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국세의 일정 비율(총액 기준 약 20.79%)을 교육재정으로 자동 배분하는 현행 제도가 학생 수 감소 시대에는 과잉 재원을 만들어낸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2024년 기준 교육교부금은 약 80조 원에 육박하지만, 학령인구는 10년 새 100만 명 가까이 줄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재원이 남아돈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논리의 전제에는 '현재의 학교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암묵적 가정이 깔려 있다. 문제는 학교가 그대로일 수 없다는 데 있다. AI가 12년간의 학교 교육 성과를 12분 만에 대체하는 시대, 교육 시스템의 존재 이유 자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벽 고려대 석좌교수는 최근 파이낸셜뉴스 칼럼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그는 "현재의 학교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면 교부금 축소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학교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교부금을 줄일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핵심은 교부금 규모가 아니라 교육 시스템의 전면적 개편에 있다는 것이다. 교부금 개편 논의가 교육 시스템 개편 논의보다 먼저 나오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접근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단순한 재정 논쟁을 넘어, AI 시대에 학교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학교의 역할이 학생들 사이의 변별력이 아니라 '학생과 AI 사이의 변별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이 전환의 중심에는 교사의 역할 변화가 자리한다. 지식을 전달하고 설명하는 전달자로서의 교사는 AI가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아이의 성장 과정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이끌어주는 '성장 코디네이터'로서의 교사는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역할 변화가 결코 적은 비용으로 실현될 수 없다는 점이다. 학생 한 명을 깊이 관찰하고, 태도와 행실에 대해 섬세한 피드백을 제공하고, 올바른 모델링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교사 1인당 담당 학생 수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현재의 교사 대 학생 비율(약 1:16, OECD 평균 1:13)을 1:8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교사 수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나야 한다. 교사 양성, 연수, 처우 개선을 포함하면 추가 재원은 수십조 원 단위로 계산된다. 학교폭력 문제 역시 같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변호사, 보안관, 조정관을 늘리고 새로운 위원회를 만드는 방식은 사후 처방에 불과하다. 아이들은 차가운 제도보다 따뜻한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는 교육학적 상식이 AI 시대에 더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가진 교육교부금 제도는 오히려 전략적 자산으로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국가는 매년 정치적 협상을 통해 교육예산을 결정한다. 예산이 정권의 성격과 정치적 환경에 따라 출렁이는 구조다. 반면 한국은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교육에 자동 배분하는 법정 교부금 제도를 통해 교육재정의 안정성을 확보해왔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제도적 강점이다. 문제는 이 안정적인 재원이 '기존 학교 유지'에 묶여 있다는 데 있다. 교부금이 AI 시대에 맞는 학교 혁신의 자본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이 제도는 곧 과잉 재원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조 교수의 표현대로 교부금은 'AI 시대를 돌파하기 위한 탄약'이자 '미래를 위한 예치금'이 아니라 '지금 당장 AI 시대로 진입하기 위한 입장료'로 인식되어야 한다.

한국 에듀테크 업계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교부금이 혁신 자본으로 전환된다면, 그 방향은 필연적으로 AI 기반 개인화 학습, 교사 업무 경량화 시스템, 데이터 기반 성장 기록 플랫폼 등 에듀테크 인프라 구축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학생과 AI의 변별력을 키우는 교육은 결국 개별 학생의 성장 과정을 정밀하게 추적하고 해석하는 기술적 토대 위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 학습 데이터의 수집·분석·환류 체계와 교사의 해석적 판단을 결합하는 새로운 교육 운영 모델을 요구한다. 문제는 현재의 교육교부금 집행 구조가 이런 혁신적 투자를 담아낼 만큼 유연하지 않다는 데 있다. 교부금의 상당 부분이 인건비와 학교 운영비에 고정되어 있고, 혁신 사업에 대한 재량 지출 여지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교부금 축소 논쟁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교부금의 용도 전환과 집행 구조 개편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결국 이 논쟁의 본질은 재정 규모가 아니라 교육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이다. 학교가 여전히 지식 전달의 장소로 머문다면, 교부금 축소는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AI가 더 잘하는 일에 세금을 쓸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학교가 인간 고유의 역량을 길러주는 공간으로 재탄생한다면, 지금의 교부금은 오히려 부족하다. 더 많은 교사, 더 깊은 관계, 더 정교한 관찰과 피드백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 전환을 주도할 구체적 청사진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교부금을 줄일 방안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지만, 이 소중한 제도를 미래 교육의 혁신 자본으로 바꾸는 상상력은 부족하다. 대한민국이 AI 시대에도 인재를 길러내는 선진국으로 전진할 것인지, 아니면 과거의 교육 시스템에 묶여 후진국으로 후퇴할 것인지 판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교부금 논쟁은 그 출발점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