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의 고통에서 제품으로"… 싱가포르 AICET가 증명한 에듀테크의 본질

싱가포르 국립대학(NUS) 내 에듀테크 연구기관인 AICET(인공지능 교육기술센터)이 지난 5일 한국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소속 교사 및 교육전문직으로 구성된 연수단을 맞이했다. 이 자리에서 AICET의 수유엔지엔(S

aicet.comp.nus.edu.sg 보도 | 2 days ago "교실의 고통에서 제품으로"… 싱가포르 AICET가 증명한 에듀테크의 본질

싱가포르 국립대학(NUS) 내 에듀테크 연구기관인 AICET(인공지능 교육기술센터)이 지난 5일 한국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소속 교사 및 교육전문직으로 구성된 연수단을 맞이했다. 이 자리에서 AICET의 수유엔지엔(Soo Yuen Jien) 부소장은 단순히 인공지능(AI) 도구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 현장의 고통 지점(pain point)에서 출발해 제품을 설계하는 AICET만의 개발 철학을 공개했다. '포용하되, 인간을 루프에 남겨두고, AI 탐지 도구는 확증이 아닌 정황으로만 활용한다'는 NUS의 기본 정책부터, 교사들이 AI 활용 역량을 키워가는 4단계 성장 모델까지, 이번 교류는 한국 교육계가 AI 통합 전략을 고민하는 데 중요한 참조점을 제공했다.

AICET가 제시한 교사들의 AI 역량 발달 단계는 '알기(Knowing)'에서 시작해 '적용하기(Applying)', '맞춤화하기(Customising)', 그리고 '창조하기(Creating)'로 이어진다. 이는 단순히 생성형 AI 도구를 체험하는 수준을 넘어, 교사가 자신의 수업 설계에 AI를 통합하고 궁극적으로는 기성 도구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AI 기반 도구를 설계하는 단계까지를 상정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NUS 내 역할 분담이다. 일상적인 오프라인 도구 사용은 교수학습지원센터(CTLT)가 워크숍과 컨설팅으로 지원하고, 보다 참신하거나 맞춤형 응용이 필요한 경우 AICET가 컨설팅과 공식 프로젝트를 통해 개입한다는 구조는, AI 교육 통합이 단일 부서의 몫이 아니라 유기적 협력 체계 속에서 이뤄져야 함을 시사한다.

AICET의 설계 원칙은 '인간과 AI의 델타(delta)' 개념으로 구체화된다. 이는 AI와 인간의 기여도 차이를 세 가지 수준으로 나눠, 단순히 기존 프로세스를 개선할지(Enhance), 인간과 AI가 공동 창작할지(Co-create), 아니면 거의 전적으로 AI에 맡길지(Delegate)를 결정하는 실용적 프레임워크다. 실제 NUS 수업 사례는 이 프레임워크의 살아있는 증거다. 법학 모듈에서는 AI가 시뮬레이션한 법정 시나리오를 통해 학생들이 변호 기술을 연습하고, 물리학 모듈에서는 학생들이 챗봇을 설득하려는 시도 자체가 과학적 탐구 과정이 된다. 공학 모듈에서는 생성형 AI 아트 해커톤을 통해 추상적 과학 개념을 시각화하는 경험을 쌓는다. 이처럼 AI는 아이디어 생성기, 롤플레이 페르소나, 작문·코딩 비서, 개인 교사, 그리고 학습 위험 학생을 식별하는 분석가 등 다층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번 방문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부분은 AICET의 공학팀이 교육적 비전을 제품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AICET는 진정한 교육적 고통 지점에서 출발해 소프트웨어를 구축하고, 실제 사용자와의 검증과 반복을 통해 완성도를 높인다. 소프트웨어 과제물의 표절 탐지 도구인 '소프트마크(SoftMark)'는 AI 지원 코딩이 보편화되면서 학문적 정직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교수자들의 실질적 고민에서 탄생했다. 더 최근에 개발된 '스콜라이스틱(ScholAIstic)'은 에이전틱 AI 기반 학습 플랫폼으로, 단순한 챗봇을 넘어 학습자의 인지 과정에 개입하는 차세대 도구다. 부소장이 "누구나 챗봇을 만들 수 있지만, 그 뒤에 있는 교수 설계가 더 어렵고 가치 있는 작업"이라고 강조한 대목은, 기술 주도가 아닌 교육학 주도(pedagogy-led)의 개발 원칙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교류가 한국 교육계에 주는 시사점은 결코 작지 않다. 첫째, AI 교육 도구의 성패는 기술의 화려함이 아니라 '어떤 교육적 문제를 해결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에듀테크 시장도 생성형 AI를 접목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상당수가 기술적 가능성에 이끌려 개발되는 경우가 많다. AICET의 사례는 교실에서 실제로 목격되는 불편함과 한계를 정밀하게 포착하는 것에서 개발이 시작돼야 함을 분명히 보여준다. 둘째, AI 통합에 대한 교사들의 거부감을 해소하기 위한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알기'에서 '창조하기'로 이어지는 AICET의 성장 모델은 교사들이 느끼는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자신의 수업 맥락에 맞는 맞춤형 활용을 장려하는 실질적 로드맵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AICET가 제시한 미래 교육의 방향성은 한국 교육청과 학교 현장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배우는 법을 배우고, 올바른 일을 하고, 올바른 질문을 하고, 인간적 기술에 새롭게 가치를 두라'는 프레임워크는 AI 시대의 교육이 지식 전달을 넘어 메타인지와 인간 고유의 역량에 집중해야 함을 시사한다. 제주 교육청 연수단의 이번 방문이 단순한 견학을 넘어, 한국형 AI 교육 모델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교육학이 기술을 이끄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에듀테크의 본질은 결국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이 풀어내는 인간의 배움에 대한 깊은 이해에 있다는 사실을 AICET는 다시 한번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