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열다, 중국-아세안 교육 협력의 새로운 지평

베트남 학생 20명이 중국 산둥성에서 4개월간 중국어와 인공지능을 배웠다. 이들이 귀국 후 향발전자(Goertek)의 베트남 현지 법인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단순한 인력 수급이 아니다. 중국 대학과 기업이 손을 맞잡

english.scio.gov.cn 보도 | 2 days ago AI가 열다, 중국-아세안 교육 협력의 새로운 지평

베트남 학생 20명이 중국 산둥성에서 4개월간 중국어와 인공지능을 배웠다. 이들이 귀국 후 향발전자(Goertek)의 베트남 현지 법인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단순한 인력 수급이 아니다. 중국 대학과 기업이 손을 맞잡고 AI를 매개로 동남아 교육 시장을 공동 설계하는 새로운 실험이 시작됐다는 신호다. 전통적인 장학금 유치와 어학연수 중심이었던 한-중-아세안 교육 교류의 지형이, 기술 융합과 산업 맞춤형 인재 양성의 시대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산둥대학교가 베트남 대학들과 함께 출범한 지능형 제조(intelligent manufacturing)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은 이번 협력의 대표 사례다. 4개월 과정에는 중국어 교육과 AI 관련 교과가 포함됐고, 학생들은 산둥대 수업을 마친 뒤 바로 향발전자의 베트남 법인으로 배치됐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글로벌 IT 매체 아보시아(Abacus)가 최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상하이대학교 역시 '예술+AI' 융합 교육 과정을 확대하며 유사한 흐름을 타고 있다.

이 협력 모델의 핵심은 '교육-산업-현지화'의 3단 연결이다. 산둥대의 경우 교육과정을 기업이 직접 필요로 하는 직무 역량에 맞춰 설계했고, 졸업과 동시에 베트남 현지 법인에 취업이 연결되는 구조다. 이는 단순히 중국 내 대학에 외국인 학생을 유치하는 차원을 넘어, AI 시대에 요구되는 디지털 제조 인력의 글로벌 공급망 자체를 중국 대학과 기업이 공동으로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협력의 비대칭성이다. 중국 측은 자국 AI 교육과정과 첨단 제조 노하우를 제공하고, 아세안 학생들은 자국 산업 현장으로 복귀해 중국계 글로벌 기업의 현지 생산라인을 이끄는 인력이 된다. 이는 중국이 ASEAN 교육시장에서 단순한 '학생 파견' 차원을 넘어 교육과정의 표준화, 교재 개발, 교수 인증에 이르는 상류부(upstream) 영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국-아세안 교육협력 메커니즘과 같은 다자 협의체가 이미 다수 가동 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사례는 그 흐름의 구체적 결과물로 읽힌다.

데이터 차원에서도 변화의 폭을 가늠할 수 있다. UNESCO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전 세계 유학생 유입 1위 국가이며, ASEAN은 약 10년간 중국 유학생의 최대 공급 지역 중 하나였다. 여기에 AI가 가세하면서 교육 교류의 양상이 양적 팽창에서 질적 전환으로 넘어가는 모습이다. 중국 칭화대와 싱가포르국립대(NUS)가 공동 운영하는 AI 석사과정, 저장대학교의 동남아 대상 온라인 AI 마이크로크레덴셜 프로그램 등이 그 예다.

다만 몇 가지 짚어볼 지점도 있다. 첫째, 베트남 학생들이 향발전자 현지 법인으로 배치되는 구조는 교육과 노동이 결합된 형태로서, 학습자가 실질적 선택권을 가지는지, 현지 산업에 대한 의존성이 과도하게 발생하지는 않는지 추적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ASEAN과 교육협력을 강화한다면 단순한 학위과정 교환을 넘어 기업이 참여하는 산학협력형 인재양성 모델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베트남 노이즈하이 공장, SK하이닉스의 청주-용인 클러스터 사례처럼 한국 기업도 이미 ASEAN에 깊은 제조 거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AI 교육과정의 내용과 질 관리 문제가 남아 있다. 상하이대의 '예술+AI'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커리큘럼으로 운영되는지, 산둥대의 4개월 과정이 어떤 수준의 기술 역량을 가르치는지에 대한 투명한 공개가 뒤따라야 협력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아세안 각국의 교육 당국은 자국 학습자의 데이터와 지적재산이 중국 플랫폼으로 유출되지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셋째, 이 협력 모델이 결국 글로벌 AI 인재 파이프라인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전략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미국과 유럽이 첨단기술 인재의 자국 회수(reshoring)와 동맹국 중심 인재 양성에 나서는 상황에서, 중국은 교육 단계에서부터 ASEAN과의 관계를 견고히 다지고 있다. 이는 글로벌 AI 인재 흐름의 다극화라는 거시적 맥락 안에서 읽혀야 할 부분이다.

한국 에듀테크 업계에 대한 시사점은 분명하다. 우선, 중국이 '교육과정 수출'에 본격 나서면서 한국 대학과 기관은 더 이상 자생적 프로그램 개발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한국은 AI 교육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앞선 디지털 인프라와 학습자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나, 이를 ASEAN 현장의 산업 수요와 즉시 연결하는 통로는 아직 부족하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국제화진흥원이 추진하는 ASEAN 맞춤형 프로그램이 사업 단위를 넘어 인재양성 생태계 단위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둘째, 한국 기업과 대학의 산학협력 모델을 재설계해야 한다. 산둥대-향발전자 사례처럼 대학이 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직무 역량을 교육과정에 직접 반영하고, 학생 졸업과 함께 현지 취업을 연결하는 구조는 한국 에듀테크 기업에도 중요한 참조 모델이 된다. NHN, 뤼이드, 매스프레소 등 국내 AI 교육기업들은 ASEAN 시장 진출 시 단순 학습 콘텐츠 수출을 넘어 현지 기업과의 공동 교육과정 설계로 영역을 넓혀야 한다.

셋째, 한-중-아세안의 3자 협력 가능성도 모색할 만하다. 세 지역의 산업 구조는 보완적 관계에 가깝다. 한국의 반도체와 디지털 콘텐츠, 중국의 AI 모델과 제조 역량, 아세안의 성장하는 디지털 경제와 청장년층이 결합한다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모델보다 지속 가능한 협력 프레임을 만들 수 있다. 한국이 단순히 중국-ASEAN 협력의 관찰자에 머무르지 않고, 교육기술 표준과 인증 체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산둥대 캠퍼스를 떠나는 베트남 학생 20명의 뒷모습에는 AI 시대 교육 국제화의 새 좌표가 담겨 있다. 그 좌표의 중심에는 여전히 중국과 아세안이 있지만, 자리에 앉을지 서 있을지는 한국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