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과제 적발 논란, ‘정의의 기준’을 둘러싼 교육 현장의 균열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의 한 전공 수업. 전체 수강생 62명 중 36명이 생성형 AI를 활용한 과제를 제출했다가 무더기로 성적 불이익을 받았다. 수업은 처음부터 '모든 수업 활동에서 생성형 AI 활용 금지'를 공지한
hani.co.kr 보도 | 3 days ago AI 과제 적발 논란, ‘정의의 기준’을 둘러싼 교육 현장의 균열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의 한 전공 수업. 전체 수강생 62명 중 36명이 생성형 AI를 활용한 과제를 제출했다가 무더기로 성적 불이익을 받았다. 수업은 처음부터 '모든 수업 활동에서 생성형 AI 활용 금지'를 공지한 상태였다. 그런데 처분 이후 컴퓨터공학부 학생회가 교수에게 낸 의견서 하나가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 "솔직하게 답한 학생만 불이익을 받고, 실제로 사용했지만 부인하거나 적발되지 않은 학생은 불이익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적발 과정의 공정성'을 문제 삼은 이 이례적인 반발은, AI 시대 교육 현장이 직면한 더 깊은 인식의 간극을 드러낸다.
이번 사건의 표면적 쟁점은 명확하다. 교수는 사전에 공지된 규칙을 위반한 학생들을 처벌했고, 학생들은 그 처벌의 형평성을 문제 삼았다. 담당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죄지은 사람 모두가 잡히지 않았다고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한 거부감을 표했다. 법리적으로 보면 교수의 논리가 타당해 보인다. 범죄의 미검거율이 높다는 이유로 검거된 범죄자를 처벌하지 않는 사회는 없다. 그러나 학생회의 문제 제기는 단순한 '억울함 호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AI 활용에 대한 세대 간, 역할 간 인식의 단층을 그대로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갈등의 이면에 AI 활용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차이가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AI를 자연스럽게 쓰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도움을 받아도 전부만 아니면 '내가 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단순한 변명이 아니다. 현재 대학생들은 AI가 일상화된 환경에서 성장한 'AI 네이티브' 세대에 가깝다. 이들에게 AI는 부정행위의 도구라기보다는 사전이나 계산기처럼 자연스러운 학습 보조 수단이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교육 현장의 규범과 충돌하면서 발생한다. 'AI를 쓰지 않는다'는 교수의 공지는 학생들에게 '왜 써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 없이 전달됐고, 학생들은 이를 이해하기 어려운 낡은 규칙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수업의 징계 논란을 넘어, 한국 고등교육이 AI 시대에 재정의되어야 할 '학습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먼저, 'AI 활용 금지'라는 블랙앤화이트식 접근의 한계가 드러났다. 해당 수업은 컴퓨터공학부 전공 수업이었다. AI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AI 도구 사용을 전면 금지당했을 때 느꼈을 위화감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이는 AI 활용의 수준과 범위를 단계적으로 규정하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예컨대 아이디어 구상 단계에서의 AI 활용과 최종 결과물의 직접 작성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어디까지를 쓰지 말라는 것인지'에 대한 세부 지침이 없는 금지 조치는 현실성과 설득력을 동시에 잃는다.
또한, 이번 사건은 AI 부정행위 적발 기술의 한계와 그로 인한 형평성 논란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현재 대학들이 사용하는 AI 탐지 도구는 완벽하지 않다. AI가 생성한 텍스트를 인간이 다듬으면 탐지를 피해갈 수 있고, 반대로 인간이 작성한 독창적인 텍스트가 AI 생성물로 오탐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학생회의 의견서가 '적발되지 않은 학생'을 언급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 것이다. 기술적 한계 속에서 규칙을 집행할수록 '정직한 학생'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는, AI 시대 교육 평가의 신뢰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더 큰 과제를 제기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번 논란은 교육의 본질적 목적에 대한 재고를 요구한다. 김명주 인공지능안전연구소 소장은 "기업들은 최근 AI 의존으로 임직원의 사고와 판단 능력이 약화하는 탈숙련 현상을 걱정하고 있다"며 "교육 과정에서라도 AI를 통해 효율적으로 결과를 내는 것보다 사고 능력을 숙련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AI 시대 교육의 핵심 과제를 정확히 짚는 지적이다. AI가 모든 지식 노동을 대체할수록, 인간 고유의 가치는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에 더욱 집중될 수밖에 없다. 대학이 단순히 AI 사용을 금지하는 소극적 방어에 그칠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하면서도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새로운 교수법과 평가 방식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하는 이유다.
에듀테크 업계에 이번 사건이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첫째, AI 활용 교육 도구의 시장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지만, 단순한 결과물 생성 도구를 넘어 '사고 과정'을 평가할 수 있는 혁신적인 솔루션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AI가 만든 답안을 탐지하는 '탐지 기술'보다, 학생의 사고 과정과 학습 성과를 입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형 평가 시스템이나 AI 활용 과정을 투명하게 기록하는 'AI 사용 로그' 기반의 평가 도구가 더 큰 주목을 받을 것이다. 둘째, 대학과 에듀테크 기업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각 대학이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정립할 때, 기술적 지원과 교육적 컨설팅을 제공할 수 있는 에듀테크 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은 AI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학생들에게 AI 도구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AI 활용의 윤리적 경계와 학문적 정직성에 대한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AI 시대의 교육은 '금지'에서 '성찰적 활용'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며, 이번 서울대 사건은 그 전환을 촉구하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