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을 AI 리터러시 설계의 주인공으로: 영국 대학의 '공동 설계' 실험이 던지는 질문

생성형 AI가 대학가에 몰아친 지 2년, 교육 현장의 대응은 여전히 ‘금지’와 ‘허용’ 사이를 오가고 있다. 표절 탐지기를 돌리고, 과제 지침을 개정하는 소극적 대응이 대부분인 가운데, 영국의 한 대학이 학생들을 교

journals.gre.ac.uk 보도 | 6 days ago 학생을 AI 리터러시 설계의 주인공으로: 영국 대학의 '공동 설계' 실험이 던지는 질문

생성형 AI가 대학가에 몰아친 지 2년, 교육 현장의 대응은 여전히 ‘금지’와 ‘허용’ 사이를 오가고 있다. 표절 탐지기를 돌리고, 과제 지침을 개정하는 소극적 대응이 대부분인 가운데, 영국의 한 대학이 학생들을 교수진과 동등한 ‘설계자’ 자리에 앉힌 실험을 진행해 주목받고 있다. 학생들이 AI 리터러시 프레임워크를 교수진과 함께 직접 설계하도록 한 이 사례는, 위계적 교육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교실의 ‘객관식 정답자’에서 프레임워크의 ‘공동 저자’로

이번 사례 연구의 핵심은 단순하다. 대학이 생성형 AI 활용에 대한 교육 지침을 만들 때, 학생들을 단순한 의견 청취 대상이 아닌 공동 설계자(co-designer)로 참여시킨 것이다. 영국의 한 대학에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교수진, 학생, 그리고 전문 지원 부서가 함께 모여 생성형 AI에 초점을 맞춘 AI 리터러시 프레임워크를 공동 창작했다.

이 프로젝트의 설계 원칙은 ‘호혜성(reciprocity)’과 ‘존중(respect)’이라는 파트너십 원칙에 기반을 두었다. 단순히 학생들의 피드백을 수집하는 설문조사 수준을 넘어, 학생들이 프레임워크의 구조와 내용을 결정하는 의사결정 과정 자체에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기존의 ‘교수자가 설계하고 학생이 따르는’ 수직적 관계를 ‘함께 설계하는’ 수평적 관계로 전환한 실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대학의 접근법은 특히 생성형 AI가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환점에서, 그 변화의 방향을 학생들의 목소리에서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교수자들이 우려하는 학술적 정직성(academic integrity) 문제와, 학생들이 실제로 마주하는 학습 효율성 문제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시도였다.

‘당사자 전문성’의 재발견: 학생은 AI 리터러시의 대상이 아니라 원천이다

이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단순한 ‘학생 참여 확대’ 이상이다. 핵심은 ‘학생을 AI 리터러시의 대상(target)이 아닌 원천(source)으로 본 것’이다. 대부분의 대학이 AI 윤리 교육,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교수자 중심으로 개발하고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프로젝트에서 학생들은 단순한 설문 응답자가 아니라, 프레임워크 개발의 전 과정에서 자신의 학습 경험과 AI 활용 실태에 대한 ‘당사자 전문성(lived expertise)’을 발휘했다. 학생들은 교수진이 미처 인지하지 못한 생성형 AI의 실제 사용 패턴, 학문 분야별 차이, 그리고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제공했다. 예를 들어, 교수진이 우려하는 ‘과제 대리 작성’ 문제보다 학생들이 더 자주 마주치는 문제는 ‘AI가 생성한 정보의 신뢰성 판단’이나 ‘전공 분야별 AI 활용의 적절성’이라는 점이 논의 과정에서 드러났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 사례는 AI 리터러시를 ‘도구 사용법 교육’으로 축소하지 않고, 비판적 사고, 정보 평가, 윤리적 판단, 그리고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학생들이 단순히 ‘AI를 잘 쓰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AI가 만든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언제 AI를 사용하고 언제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또한 ‘공동 설계’ 과정 자체가 하나의 교육적 경험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학생들이 프레임워크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AI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점검하고, 다른 전공의 학생들과 토론하며 다양한 관점을 접하는 기회를 얻었다. 즉, 최종 산출물인 ‘프레임워크’뿐만 아니라 ‘설계 과정’ 그 자체가 AI 리터러시를 키우는 교육적 장치로 작동한 셈이다.

에듀테크 산업에 주는 교훈: ‘사용자 설계’에서 ‘공동 창조’로

이번 영국 대학의 사례는 에듀테크 산업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국내외 에듀테크 기업들은 AI 기반 학습 도구를 개발하면서 ‘사용자 중심 디자인(User-Centered Design)’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학습 데이터를 수집해 알고리즘을 개선하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생들은 여전히 AI 시스템이 제공하는 ‘맞춤형 학습 경로’의 수동적 수혜자일 뿐, 시스템의 설계 원리나 윤리적 기준을 결정하는 데는 참여하지 못한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공동 설계 모델은 에듀테크 기업들이 학생들을 단순한 사용자가 아닌 ‘공동 창조자(co-creator)’로 대우할 때, 제품의 수용성과 교육적 효과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생성형 AI가 교육 시장에 급속히 확산되면서, 윤리적 가이드라인과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이 커지는 지금, 그 기준을 교사나 기업이 아니라 학습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접근법은 차별화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향후 전망을 살펴보면, AI 리터러시 교육은 단순한 ‘도구 활용법’에서 ‘AI 시대의 시민 의식’으로 그 영역이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이 AI의 사회적 영향력, 편향성, 개인정보 보호, 저작권 문제 등을 이해하고, 자신의 학습과 삶에 AI를 어떻게 통합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핵심 역량으로 부상할 것이다. 이번 사례처럼 학생을 설계의 주인공으로 세우는 접근법은, AI가 만들어낼 불확실성에 가장 잘 대비하는 방법일 수 있다. 교수자와 학생이 함께 AI의 윤리적 사용에 대한 규범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어쩌면 어떤 프레임워크보다 강력한 교육적 효과를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