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미디어의 중남미 진출, '데이터 주권' 내건 AI 교육 외교의 실험]

국내 에듀테크 기업 아이스크림미디어가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국제관용평화의회(IPTP) 중남미·카리브 지역회의에 참석해 한국의 교육 모델과 AI 기술을 결합한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교육 수출이 단순한 솔루션 판

greened.kr 보도 | 2026-09-30 [아이스크림미디어의 중남미 진출, '데이터 주권' 내건 AI 교육 외교의 실험]

국내 에듀테크 기업 아이스크림미디어가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국제관용평화의회(IPTP) 중남미·카리브 지역회의에 참석해 한국의 교육 모델과 AI 기술을 결합한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교육 수출이 단순한 솔루션 판매를 넘어 의회 외교의 장으로 옮겨가는 흐름이 감지된다. 특히 교육데이터의 처리 장소와 이용 주체를 각국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공개 석상에서 밝힌 점은, 글로벌 에듀테크 시장에서 데이터 주권 논쟁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라 주목된다.

현준우 아이스크림미디어 대표는 지난 23일 파라과이 국회 양원합동회의장에서 '교육과 평화 구축을 위한 인공지능'을 주제로 기조발표를 진행했다. 이번 회의는 '평화를 위한 인공지능: 중남미·카리브의 미래를 위한 교육, 관용과 포용'을 주제로 23일과 24일 이틀간 파라과이 국회에서 열렸으며, 중남미·카리브 지역 국회의장과 의원, 교육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IPTP는 관용과 평화 증진을 목표로 각국 의회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국제기구로, 통상 기업이 접근하기 어려운 의회 외교 채널을 아이스크림미디어가 활용한 셈이다.

현 대표는 한국이 지속적인 교육투자로 인재를 길러내고 경제·사회 발전을 뒷받침해온 경험을 소개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AI 시대에도 교사의 전문성과 판단이 교육의 중심에 있어야 하며, 기술은 교사가 학생 지도와 소통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원칙도 함께 제시했다. 발표에서는 국내 디지털 교육 플랫폼 '아이스크림S'의 콘텐츠·수업 지원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한 AI 에듀테크 수업 플랫폼 '루미티치(LumiTeach)'가 구체적 사례로 소개됐다. 교사가 자신의 자료를 AI로 수업 활동으로 재구성하고, 학생들이 이를 통해 답과 생각을 표현하며 참여하는 방식이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기술 적용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된 원칙들이다. 현 대표는 AI 교육 기술을 각국에 적용할 때 교육과정과 언어, 문화, 학교 인프라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나아가 교육데이터의 처리 장소와 이용 주체를 각국이 직접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현지 인력이 기술을 운영·개선할 역량을 갖추는 것도 협력의 원칙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글로벌 AI 교육 시장에서 데이터가 사실상 플랫폼 기업에 집중되는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교육데이터는 미성년자의 학습 이력과 행동 패턴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일반 데이터보다 민감도가 높고, 각국의 개인정보보호 규제도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다. 기업이 진출 초기부터 데이터 주권을 협상 테이블에 올린 것은 규제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발표 후 질의응답에서는 한국의 교육재정 구조와 제한된 예산에서의 투자 우선순위, 각국 여건에 맞는 AI 교육 도입 방안 등을 놓고 의견이 오갔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AI 교육 도입의 비용 대비 효과가 핵심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교육재정 운영 경험이 이들에게 실질적인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질의응답은 단순한 기술 소개를 넘어 정책 컨설팅에 가까운 성격을 띠었다.

아이스크림미디어의 이번 행보는 올해 잇단 해외 교육 행사 참여의 연장선에 있다. 회사는 올해 들어 영국 BETT 2026, 미국 ISTE, 싱가포르·오만·베트남의 교육 행사 등에서 AI 에듀테크 솔루션을 소개해왔다. 유럽과 북미, 동남아, 중동에 이어 중남미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며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실적 측면에서도 이러한 해외 확장의 여력은 확인된다. 아이스크림미디어는 올 상반기 매출 925억원, 영업이익 239억원을 기록해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64.5% 증가했다. 에듀테크 업계 전반이 성장 정체를 겪는 상황에서 두 자릿수 후반의 영업이익 증가율은 주목할 만한 성과다. 현재 허주환·현준우 각자대표 체제로, 허 대표가 콘텐츠·서비스 사업을, 현 대표가 경영관리와 신사업을 맡고 있다.

이번 발표가 에듀테크 업계에 던지는 시사점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교육 수출의 문법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콘텐츠와 플랫폼을 패키지로 판매하는 방식이 주류였다면, 최근에는 의회와 교육당국을 상대로 한 정책 협력이 진출의 전제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각국의 교육 제도와 규제 환경이 제각각인 만큼, 제도권과의 신뢰 구축이 사업 성패를 좌우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것이다. 둘째, 데이터 주권이 글로벌 에듀테크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교육데이터의 국외 이전을 제한하는 국가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데이터 처리의 통제권을 현지에 넘기는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수익성에 불리할 수 있으나 장기적 진출의 전제 조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AI는 교사를 대체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국제 무대에서도 통용되는 공통 언어가 되고 있다. 기술 결정론에 대한 반작용으로 교사의 전문성을 강조하는 담론이 확산하는 가운데, 이 원칙을 먼저 제시하는 기업이 신뢰를 얻는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다만 남은 과제도 적지 않다. 중남미 지역은 한국과 언어·문화적 거리가 멀고, 국가별 교육 인프라 격차도 크다. 현지 인력의 기술 운영 역량을 키우는 일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영역이다. 데이터 주권 원칙을 실제 계약과 시스템 구조로 구현하는 과정에서도 비용과 책임 소재를 둘러싼 협상이 필요하다. 아이스크림미디어가 제시한 원칙들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협력 모델로 구체화될 수 있을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다. 현 대표는 "교육 협력은 각국의 교육적 필요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한국의 교육 경험과 AI 기술을 바탕으로 현지 교사·교육당국과 각국의 환경에 맞는 협력 방안을 함께 찾겠다"고 말했다. 글로벌 에듀테크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기술 수출자'를 넘어 '교육 협력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아이스크림미디어의 중남미 실험이 그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