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이 서울로 부른 19개국 교육정책 담당자들, 한국 에듀테크의 '수출 실전 무대'가 열리다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4일까지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이례적인 국제 교육 연수가 열렸다. 세계은행 교육·역량개발 글로벌 프랙티스가 영국 외무영연방개발부 등과 공동 주최한 'AI 시대의 글로벌 에듀테크 정책 아카

platum.kr 보도 | 5 days ago 세계은행이 서울로 부른 19개국 교육정책 담당자들, 한국 에듀테크의 '수출 실전 무대'가 열리다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4일까지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이례적인 국제 교육 연수가 열렸다. 세계은행 교육·역량개발 글로벌 프랙티스가 영국 외무영연방개발부 등과 공동 주최한 'AI 시대의 글로벌 에듀테크 정책 아카데미'다. 에티오피아, 캄보디아, 케냐, 키르기스스탄 등 19개국 교육부 관계자와 한국 교육부,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관계자 등 15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주목할 지점은 이 자리에 국내 에듀테크 스타트업들이 직접 참여해 자사 서비스를 시연했다는 사실이다. 국제기구의 정책 연수 무대가 한국 기업의 실질적인 비즈니스 접점으로 기능한 셈이다.

이번 행사는 세계은행이 개발도상국 교육 정책 담당자를 한국으로 초청해 진행한 연수의 일환으로 열렸다. 2일과 3일에는 기업 부스가 운영됐고, 참가 기업 9곳 가운데 에누마 코리아와 프리윌린이 각각 자사 대표 서비스를 선보였다. 에누마는 인터넷 연결 없이도 작동하는 기초학습 프로그램 '에누마스쿨'을 소개했다. 학습자 수준에 맞춰 문해력과 수리력 교육을 제공하는 이 프로그램은 코이카와 협력해 2022년 인도네시아에 진출했고, 올해 6월까지 800여 개 초등학교와 교육기관에 도입됐다. 이용 학생은 3만 5,000여 명에 달하며, 도입 학교의 61%가 지리적 여건과 교육 인프라가 열악한 소외 지역에 위치한다. 에누마 인도네시아 법인은 2023년부터 인도네시아 초·중등교육부의 민관협력 파트너로 참여해 올해 7월 표창을 받았고, 같은 달 유니세프의 '블루유니콘 포트폴리오'에 선정돼 탄자니아에서 학교 밖 청소년 대상 12주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프리윌린은 수학 교육 서비스 '스쿨플랫'을 시연했다. 교사의 수업 설계와 학생별 맞춤 학습을 동시에 지원하는 구조로, 2025년 기준 17개 시도교육청 산하 3,641개 학교에서 교사 1만 2,000여 명과 학생 350만여 명이 누적 이용했다. 현장에서는 학생별 개별화 콘텐츠와 교사가 직접 만든 콘텐츠를 병행 활용하는 방식, 다른 언어권으로의 확장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됐다. 특히 프리윌린이 지난해부터 진행해 온 우간다 수학 교육 지원 사업이 화제가 됐다. 세계은행과 아프리카 지역 교육 관계자들이 현지 운영 경험을 구체적으로 질문했고, 수학 학습 지원과 교사 교육 등의 협력 가능성을 논의했다. 프리윌린은 부스에서 무료 개방형 학습 서비스 '오픈플랫'도 함께 소개했다.

이번 행사가 지니는 의미는 단순한 기업 홍보 이상이다. 세계은행의 정책 연수는 통상적으로 각국 교육부의 의사결정권자를 대상으로 한다. 즉 이 자리에 참석한 19개국 관계자들은 자국 교육 정책과 예산 집행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들이다. 한국 스타트업이 이들을 상대로 자사 서비스를 직접 시연했다는 것은, 향후 공공조달과 국가 단위 도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연결고리를 확보했다는 뜻이다. 에누마가 인도네시아에서 코이카 협력을 발판으로 정부 부처의 공식 파트너 지위와 유니세프 포트폴리오 편입까지 이어낸 경로는 개발도상국 진출의 전형적인 성공 모델로 평가된다. ODA(공적개발원조)와 민간 에듀테크가 결합하는 방식이 실제 성과로 검증된 것이다. 프리윌린의 우간다 사업 역시 아프리카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3일에는 재정경제부와 세계은행이 '한-세계은행 협력기금 연례 성과 공유 행사'를 함께 열어, 정부 차원의 협력 채널과 민간 기업의 현장 경험이 한자리에서 맞물렸다.

에누마 코리아의 김현주 사업본부장은 문해력과 수리력 같은 기초학습역량은 물론 아이들이 미래를 살아갈 때 필요한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을 길러주는 것을 차별점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권기성 프리윌린 대표는 한국을 넘어 더 많은 나라의 학생과 교사에게 좋은 교육의 기회를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 기업의 발언은 공통적으로 '한국 시장을 넘어선 확장'을 지향한다. 국내 에듀테크 시장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성장 동력이 해외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사례는 한국 에듀테크 업계에 몇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국제기구와의 협력 채널이 실질적인 수출 경로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세계은행, 유니세프, 코이카 등 다자간 개발 협력 기구와의 연계는 개별 기업이 단독으로 개척하기 어려운 개발도상국 시장에 진입하는 효과적인 우회로다. 둘째, 인프라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작동하는 기술적 견고함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에누마스쿨이 인터넷 연결 없이도 구동된다는 점은 전력과 통신 인프라가 불안정한 지역에서 결정적인 강점이다. 셋째, 단순한 콘텐츠 수출을 넘어 교사 교육과 정책 자문까지 아우르는 패키지형 접근이 요구된다. 프리윌린이 우간다에서 수학 학습 지원과 교사 교육을 병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향후 한국 에듀테크의 해외 진출은 AI 기반 개인화 학습 역량과 공공 개발협력 자금을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은행이 굳이 서울을 연수 장소로 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교육기술의 위상을 반영한다. 다만 이번 만남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참가국과의 후속 협의를 제도화하고 성과를 추적하는 체계가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