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co.kr 보도 | 2 days ago
대학 기술지주의 새 실험…서울대기술지주, '15~20년 인내하는 자본'으로 아시아 생태계 교두보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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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기술지주의 새 실험…서울대기술지주, '15~20년 인내하는 자본'으로 아시아 생태계 교두보 꿈꾼다
[도입부] 기술 창업의 최대 난관은 늘 '시간'이었다. 딥테크 스타트업이 기술을 숙성시키고 시장의 검증을 받기까지 통상 10년 이상이 걸리지만, 민간 벤처캐피털(VC)의 투자 만기는 평균 5~7년에 불과하다. 이런 구조적 간극 속에서 서울대기술지주가 '15~20년을 견디는 자본'이라는 파격적인 정체성을 내세우며 아시아 대학 투자 생태계의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특히 최근 취임한 차인환 대표가 강조한 '대학 기반 VC의 역할론'은 단순한 투자 수익을 넘어 국가 자산으로서의 기술 육성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본문] 서울대기술지주는 오는 17일 이데일리와 공동으로 '글로벌대학벤처포럼(GUVF)'을 개최한다. 중국 칭화대학교, 홍콩과학기술대학교, 일본 도쿄대학교 등 아시아 주요 대학의 투자 기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학 기술사업화와 벤처투자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 행사의 의미는 단순한 네트워킹을 넘어선다. 서울대기술지주가 아시아 대학들이 보유한 기술을 사업화하고, 각국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파이프라인을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자처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차인환 대표는 "글로벌 생태계에서는 현장에서 오갈 수 있는 살아 있는 이야기와 사업 파트너, 투자 유치 파트너를 얼마나 자주 만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단순히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규모를 확장해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국내 대학 기술지주가 해외 투자 유치를 위한 '가교' 역할까지 확장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서울대기술지주는 2008년 설립 이후 초기 창업 기업 발굴에 주력하며 국내 대표 대학 기술지주로 자리매김했다. 2017년 첫 펀드 결성 이후 현재 16개 펀드, 1300억 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며 230여 개 벤처·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과의 배경에는 차별화된 투자 철학이 자리한다. 차 대표는 "대학은 당장의 수익성을 덜 고려하기 때문에 투자 만기가 짧은 민간 VC 대비 기술이 오랜 기간 숙성되어야 하는 딥테크 투자에 더 적합하다"고 진단했다.
그가 꼽는 핵심 차별점은 '기다림의 미학'이다. "15~20년 이상을 바라봐야 하는 기업도 많은 만큼 그 시간을 견뎌줄 수 있는 자본의 역할이 필요하다. 민간과 경쟁하기보다는 우주항공, 에너지, AI 인프라 등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지원해 국가 자산으로 키워낼 수 있는 산업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대기술지주는 최근 AI 반도체, AI 인프라·에너지, 우주항공, 에듀테크, 모빌리티 등으로 투자 관심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시장 규모가 크고 연평균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이 가능한 분야를 중심으로 기업을 발굴한다는 전략이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이다. 서울대기술지주는 리벨리온에 시드 단계부터 프리IPO까지 모든 투자 라운드에 참여하며 초기 주주로서의 신뢰를 보여줬다. 차 대표는 "비상장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시장에서 초기 주주가 계속 투자한다는 신호가 후속 투자 유치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투자 이후에는 인재 채용, 사업 파트너 연결, 후속 투자자 소개 등 성장 단계에 맞춘 맞춤형 지원을 제공한다. 이 같은 방식을 인정받아 대학기술지주회사로는 유일하게 중소벤처기업부의 '스케일업 팁스 일반형' 운영사에 선정되기도 했다. 초기 창업 단계의 팁스(TIPS)와 성장 단계의 스케일업 팁스 운영권을 모두 확보하면서 기술 스타트업의 탄생부터 성장까지 전주기를 밀착 지원하는 종합 벤처투자 기관으로 도약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투자 기업 발굴 방식에도 있다. 차 대표는 "현재의 시장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선도시장의 흐름을 먼저 살핀다. 미국 등 선진시장에서 어떤 기업과 기술이 주목받고 있는지 분석한 뒤, 국내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역으로 찾아가는 '톱다운' 방식을 취한다"고 밝혔다. 초기 기업에 투자한 뒤 5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을 바라봐야 하는 만큼 자본시장의 장기적인 흐름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서울대기술지주가 그리는 다음 단계는 국내를 넘어 아시아 대학 기술지주의 '롤모델' 구축이다. 실제로 서울대기술지주는 필리핀 소재 4개 대학교에 대학 기술지주 기반의 창업 투자 생태계 발전 방안에 대한 컨설팅 프로젝트를 아시아개발은행(ADB)으로부터 수주해 진행 중이다. 이는 한국의 대학 기술사업화 모델이 해외로 수출되는 첫 사례로, 향후 아시아 각국 대학에 한국형 스케일업 시스템을 이식하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시사점] 이번 서울대기술지주의 행보는 한국 에듀테크 및 대학 기술 생태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특히 대학이 단순한 인재 배출 기관을 넘어 '기술 창업의 인큐베이터'이자 '장기 투자자'로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교육 현장에서 탄생한 연구 성과가 창업으로 이어지고, 이를 대학이 직접 발굴해 수년간 키워내는 선순환 구조는 에듀테크 분야의 혁신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실제로 서울대기술지주는 에듀테크를 미래 투자 유망 분야 중 하나로 꼽고 있으며, 이는 AI 기반 맞춤형 교육, 디지털 교과서, 메타버스 학습 플랫폼 등 교육과 기술의 경계를 허무는 스타트업들이 장기적인 연구개발(R&D)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민간 VC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린 의사결정 구조와 낮은 보수 체계로 인한 우수 인력 유치 문제, 그리고 '대학 기술지주'라는 공공적 성격과 수익 창출이라는 투자 본연의 목적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차인환 대표가 제시한 '15~20년 인내하는 자본'이라는 비전이 단순한 슬로건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장기 투자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성과 측정 기준의 혁신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대기술지주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이는 한국의 대학 기술사업화 모델이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는 신호탄이 될 뿐만 아니라, 단기 성과주의에 경도된 한국 벤처 생태계에 '인내하는 자본'의 가치를 증명하는 중요한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