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heraldcorp.com 보도 | 10 hours ago
“입학부터 코스닥까지”…4대 과기원이 그리는 딥테크 창업의 새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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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부터 코스닥까지”…4대 과기원이 그리는 딥테크 창업의 새 지도
[도입부] 구글과 메타, 그리고 중국의 딥시크. 세계 IT 산업의 지형을 바꾼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모두 대학 캠퍼스의 실험실과 기숙사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캠퍼스발 혁신’이 단순한 아이디어 사업을 넘어 로봇, AI, 바이오, 우주항공 같은 첨단 기술을 무기로 한 딥테크 창업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KAIST, UNIST, GIST, DGIST로 대표되는 4대 과학기술원이 자리한다. 이들 기관은 더 이상 창업을 학생들의 ‘선택적 활동’으로 두지 않고, 입학부터 글로벌 진출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지원 체계를 구축하며 교육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고 있다.
[본문 1] 4대 과기원의 창업 지원 전략은 각 기관의 정체성에 따라 뚜렷한 차별화를 보인다. KAIST는 ‘입학부터 창업’이라는 슬로건 아래 교육과정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신입생 시절부터 기업가정신을 접하고 문제를 발견하는 훈련을 시키며, 실제 창업에 나설 경우 창업휴학 기간을 확대하고 창업실습을 학사학위논문 대체 요건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는 창업을 ‘학업의 방해물’이 아닌 ‘교육의 연장선’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물로 탄생한 기업들의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KAIST 기계공학과 연구실에서 창업한 디든로보틱스는 자석발을 이용해 선박 내부의 수직 벽면과 곡면을 이동하는 사족보행 로봇을 개발해 국내외 조선사 3곳과 판매계약을 체결했다. 여성 과학자 4명이 설립한 이너시아는 유기농 생리대에서 출발해 여성 헬스케어 기업으로 도약하며 매출을 2022년 약 2억 5천만 원에서 지난해 약 198억 원으로 80배 가까이 끌어올렸다.
UNIST는 ‘창업 사다리’ 모델을 통해 연구실의 기술과 학생 아이디어를 실제 기업으로 연결하는 데 집중한다. 예비창업 단계의 실험실 기술 사업화를 지원하는 ‘울산 창업 L시리즈’부터 초기 사업화, 투자유치, 해외시장 진출까지 기업의 성장 단계에 맞춘 맞춤형 지원이 특징이다. 최근 5년간 52개의 학생 창업기업을 배출했으며, 최대 8개 학기의 창업휴학과 창업 경험의 졸업 학점 인정은 학생들이 학업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안전망을 제공한다. UNIST 출신 김시화 대표가 설립한 패션 커머스 플랫폼 ‘바인드’는 회원 300만 명을 확보하고 약 100억 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유치에 성공하며 이 모델의 실효성을 입증했다.
[본문 2] 4대 과기원의 창업 지원이 단순히 ‘창업자 양성’에 그치지 않고 ‘생존 가능한 기업’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DGIST는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을 선택했다. 2015년 3개 사를 시작으로 누적 55개 기업을 설립했지만, 단순 숫자보다 시장에서 살아남는 딥테크 기업 육성에 방점을 찍는다. 이를 위해 초기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DGIST-Tech’와 민간투자 연계형 프로그램인 ‘DGIST-TIPS’를 운영하며 창업팀의 자금난 해소에 직접 대응한다. DGIST 수업에서 시작된 배양육 스타트업 ‘씨위드’는 한국인의 해조류 섭취 문제에서 출발해 줄기세포와 스캐폴드, 배양액을 직접 생산하는 기업으로 진화했다. 초정밀 핸드트래킹 글러브를 개발한 ‘퀘스터’는 피지컬 AI 시대의 핵심 데이터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으로 글로벌 시장을 노리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GIST에서 나왔다. 학부생들이 창업한 AI 뇌 영상 분석 기업 ‘뉴로핏’이 지난해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 것이다. 이는 국내 4대 과기원 학생창업 사상 최초의 코스닥 입성이라는 의미를 넘어, 대학생 창업이 ‘생존’을 넘어 ‘성공적인 엑시트’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지표다. GIST는 창업교육과 모의창업에서 시작해 시제품 제작, 멘토링, 투자유치로 이어지는 단계별 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우수 창업팀에게는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현지화 컨설팅과 글로벌 액셀러레이팅, 해외 VC 네트워크 연결까지 제공한다. 무인 비행선 기반 성층권 통신 플랫폼을 개발하는 ‘이카루스’는 GIST의 항공우주 분야 창업 생태계가 단순한 아이디어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인프라를 겨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사점] 4대 과기원의 창업 지원 시스템 변화가 에듀테크 업계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첫째, 대학 교육의 성과 지표가 논문과 특허에서 ‘시장 검증’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창업을 권장하는 수준을 넘어, 교육과정과 학사제도, 평가 기준 자체를 혁신의 흐름에 맞게 재설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창업휴학 기간 확대와 창업실습의 학점·논문 대체는 ‘창업과 학업의 이분법’을 해체하고, 실전적 문제 해결 능력을 학문적 성취와 동등하게 평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둘째, 이들 기관의 지원이 단순한 아이디어 사업이 아닌 딥테크 창업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은 한국 교육의 미래 방향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로봇, AI, 바이오, 우주항공 등 고난도 기술 영역의 창업은 단기간의 수익보다 장기적인 기술 우위를 확보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는 글로벌 경쟁에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딥테크 창업은 기술 개발에 오랜 시간과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현재의 지원 체계가 실제로 ‘생존 가능한 기업’을 얼마나 많이 배출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에듀테크 업계는 이러한 과기원의 움직임에서 교육과 기술의 결합이 단순한 도구 개발을 넘어, 인재 양성 시스템 자체의 혁신으로 이어질 때 진정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KAIST가 신입생 때부터 창업 교육을 도입하고, UNIST가 졸업 요건에 창업 경험을 인정하며, GIST가 학생 창업 기업의 코스닥 상장을 이끌어낸 과정은 교육의 최종 목표가 ‘지식의 전수’가 아니라 ‘가치의 창출’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4대 과기원이 구축한 ‘입학-교육-창업-투자-글로벌 진출’의 생태계가 한국 고등교육 전반으로 확산될지, 그리고 이 생태계가 얼마나 많은 글로벌 혁신 기업을 탄생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