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환 "딥테크 창업이 저성장 돌파구…아시아 최고 대학 VC 만들겠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해법으로 '딥테크 창업'이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IT 서비스나 플랫폼 혁신을 넘어 반도체, AI, 바이오, 에너지 등 깊이 있는 기술 기반의 창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

sedaily.com 보도 | 2 days ago 차인환 "딥테크 창업이 저성장 돌파구…아시아 최고 대학 VC 만들겠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해법으로 '딥테크 창업'이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IT 서비스나 플랫폼 혁신을 넘어 반도체, AI, 바이오, 에너지 등 깊이 있는 기술 기반의 창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른 것이다. 최근 서울대학교기술지주의 신임 대표로 선임된 차인환 대표는 이 같은 흐름의 중심에 서겠다며, 도쿄대·칭화대·홍콩과기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시아 최고의 대학 벤처캐피털(VC)로 성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차인환 대표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출발해 핀테크 분야 인수합병(M&A)과 법인 설립 경험을 쌓은 이력이 있다. 2019년 서울대기술지주에 합류해 투자본부장 등을 역임한 뒤 유홍림 총장이 주재한 이사회에서 대표로 선임됐다. 전임 목승환 대표가 중소벤처기업부 창업벤처혁신실장으로 이동한 뒤 후임을 맡게 됐다. 증권과 투자, M&A를 아우르는 다양한 경력을 갖춘 인물이 대학기술지주의 핵심을 장악함으로써 향후 투자 전략의 실용성과 글로벌 확장성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대기술지주는 현재 16개 펀드, 1300억 원의 자산을 운용하며 230여 개 벤처·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주요 투자 포트폴리오에는 AI 반도체 설계기업 리벨리온, 핀테크 기업 트래블월렛, 의료기기 스타트업 브라이토닉스이미징, 위성개발 기업 퓨어스페이스, 레이더 기반 모빌리티 기업 어썸레이 등이 있다. 차인환 대표는 특히 리벨리온에 50억 원을 투자한 사연을 공개하며, 글로벌 대기업이 장악한 AI 반도체 시장에서 대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해 '가장 먼저 들어가 끝까지 함께한다'는 투자 원칙을 지켜왔다고 귀띔했다. 시드 단계부터 프리IPO 단계까지 장기적으로 동행하는 이른바 '체이닝 투자' 방식이 대학기술지주의 차별화된 투자 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차인환 대표가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은 것은 단연 '장기 모험자본' 확충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초기 창업 지원은 상당히 확대됐지만, 시리즈 A와 시리즈 B 단계를 지나는 '죽음의 계곡(데스밸리)'을 건널 자금과 지원책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진단이다. 딥테크가 성과를 내기까지는 보통 10년 이상이 걸리지만, 국내 벤처펀드의 운용 기간은 대부분 7~8년에 그친다. 정부 지원 사업에서 1~3년 단위로 성과를 확인하려는 관행 때문에 딥테크의 본질과 동떨어진 단기 지표가 관리되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반도체·AI·바이오·에너지와 같은 국가전략기술을 단기 회수형 자금으로 키울 수 없다는 점에서 10년 이상 장기 펀드에 대한 정책자금 출자 확대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서울대기술지주는 2030년까지 펀드 수를 26개, 자산 규모를 3000억 원으로 확대하고 투자 기업을 350곳까지 늘린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미 서울대 공대와 서울대병원 구성원들의 출자를 받아 이들 기관에서 탄생한 창업기업에 투자하고, 수익을 다시 후속 투자에 투입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연기금과 모태펀드, 성장금융, 동문 네트워크를 대상으로 한 자금 유치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일본 도쿄대 VC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약 9000억 원 규모로 성장한 사례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제시한 것도 눈길을 끈다.

차인환 대표는 특히 교수 창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서울대에서만 매년 30~40개의 교원 창업기업이 승인을 받고 있지만, 교수가 반드시 CEO이거나 최대주주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교수는 최고기술책임자(CTO)로 기술 개발에 전념하고, 전문경영인이 사업과 조직 운영을 맡는 분업 구조가 훨씬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자가 자신의 기술을 고객과 투자자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평가 기준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이 작아서 실패하는 경우는 많지만, 시장이 커서 실패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 창업자의 가설이 틀렸을 때 이를 신속하게 인정하고 방향을 바꿀 수 있는지가 창업 성패를 가른다는 점도 짚었다.

미래 유망 투자 분야로는 AI 반도체와 메모리, 전력·냉각 등 AI 인프라를 우선 꼽았다. 여기에 로보틱스, 자율 제조, 차세대 배터리, 소형모듈원전(SMR), 전력망 최적화 기술까지 투자 영역을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차인환 대표의 눈으로 보면 AI 확산의 최종 병목은 결국 에너지이며, 한국의 제조 역량과 AI가 만나는 지점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할 기업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학기술지주 운영 모델의 수출도 본격화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프로젝트를 통해 필리핀국립대학 등 현지 4개 대학에 기술지주 모델을 이식하는 컨설팅을 진행 중이며, 인도 4개 대학에도 인도공과대학(IIT) 같은 창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자문이 시작됐다.

차인환 대표의 발언은 단순히 한 대학 기술지주의 성장 전략을 넘어, 한국 딥테크 창업 생태계 전반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초기 창업 지원은 양적으로 확대됐지만 '죽음의 계곡'을 건너는 데 필요한 장기 모험자본과 후속 투자 생태계는 여전히 취약하다. 7~8년 운용 주기에 갇힌 벤처펀드 구조와 1~3년 단위 정부 성과 평가 관행은 본질적으로 10년 이상의 시간을 요구하는 딥테크의 투자 사이클과 충돌한다. 2030년까지 26개 펀드, 3000억 원 규모를 목표한 서울대기술지주의 구체적 로드맵은 정부와 공공기관이 펀드 운용 기간을 10년 이상으로 확대하고 정책자금을 적극 출자해야 한다는 정책적 메시지를 내포한다.

더 나아가 차인환 대표가 제시한 'AI의 최종 병목은 에너지'라는 관점은 한국이 반도체·디스플레이에서 쌓아온 제조 경쟁력과 AI를 융합해 새로운 산업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략적 비전을 보여준다. 필리핀과 인도 대학에 기술을 수출하는 대학기술지주 모델의 해외 이식은, 국내에서 검증된 산학협력 모델이 글로벌 표준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교수가 CTO에 머물고 전문경영인이 CEO를 맡는 분업 구조와, 창업자가 자신의 가설 오류를 빠르게 인정하고 방향을 수정하는 '피벗(pivot)' 능력에 대한 강조는, 기술력만으로 승부하는 딥테크 시대를 맞아 창업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역량을 환기시킨다. 한국 에듀테크와 딥테크의 미래는 이러한 장기 자본의 확보, 산학협력 모델의 고도화,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이라는 세 가지 축이 얼마나 빠르게 정렬되느냐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