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생도 'AX 인재'가 될 수 있을까, KT 에이블스쿨의 실험
"일본어 번역 실습 수업에서 교수님이 '인공지능(AI) 번역이 더 낫다'고 하실 때가 있었어요. 번역가를 꿈꿨는데 이대로면 경쟁력이 없겠다 싶었죠. 그래서 AI를 익혀 언어를 무기로 쓰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ddaily.co.kr 보도 | 3 days ago 문과생도 'AX 인재'가 될 수 있을까, KT 에이블스쿨의 실험
"일본어 번역 실습 수업에서 교수님이 '인공지능(AI) 번역이 더 낫다'고 하실 때가 있었어요. 번역가를 꿈꿨는데 이대로면 경쟁력이 없겠다 싶었죠. 그래서 AI를 익혀 언어를 무기로 쓰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일본언어문화를 전공한 반재혁 씨의 고백은 요즘 청년들이 느끼는 불안을 그대로 보여준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문과의 위기'라는 말이 식상해질 정도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로 바뀔 수 있을까. KT가 고용노동부와 함께 운영하는 '에이블스쿨' 9기 교육생 4명은 그 가능성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 한국어문학과 통계학을 전공한 김남훈 씨, 일본언어문화를 전공한 반재혁 씨, 로봇공학·에너지공학을 전공한 이승현 씨, 전자공학을 전공한 최수빈 씨. 서로 다른 전공을 가진 이들은 에이블스쿨에서 만나 AI 기반 물관리 시스템 '보이다(BOIDA)'를 개발했고, 지난 7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주최한 '2026 AX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들의 성공은 단순한 재능의 결과물이 아니다. KT 에이블스쿨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의 설계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21년 첫 교육을 시작해 현재까지 약 3500명의 수료생을 배출한 에이블스쿨은 정규 4년제 대학 졸업(예정)자 또는 6학기 이상 수료자를 대상으로 한다. 흥미로운 점은 지원자 중 비전공자의 비율이 절반가량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평균 연령 25.3세, 경쟁률 3대 1을 뚫고 들어온 교육생들은 6개월간 이론 40%, 프로젝트 60%의 강도 높은 교육을 소화한다. 매일 시험을 치르는 '스파르타식' 운영은 이 프로그램이 단순한 이론 교육이 아님을 방증한다.
에이블스쿨의 가장 큰 차별점은 '현직 전문가 코칭'에 있다. KT는 관련 직무 경력 평균 10년 이상의 사내 전문 강사 약 200명을 코치 풀로 운영하고 있으며, 이 중 30여 명이 프로젝트에 직접 투입돼 교육생을 밀착 지도한다. 이론 강의는 외부 전문가가 맡지만, 프로젝트는 대부분 KT 현직자가 직접 이끄는 구조다. 이는 정부 주도 교육이 갖기 쉬운 '현장 괴리'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장치로 평가된다. 교육생들이 배운 기술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커리큘럼의 유연성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통상 정부 주도 교육은 커리큘럼 변경이 까다롭지만, 에이블스쿨은 기업이 최신 기술 흐름을 반영해 과정을 조정할 재량을 부여받았다. 김수천 KT 인재실 대외교육팀장의 설명에 따르면 재작년에는 클라우드가 화두였다면, 지난해와 올해는 AI 에이전트가 중심이다. 기술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는 시대에 교육 커리큘럼이 뒤처지지 않도록 하는 이러한 설계는 에듀테크 업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교육의 지역 확산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에이블스쿨은 비대면 실시간 온라인 강의를 기본으로 광주·부산·대구·대전·제주 등 전국에 교육장을 두고 있다. 그 결과 지역과 수도권 교육생 비율이 약 1대 1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AI 교육이 서울에 집중되는 현실 속에서 지방 청년들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교육비는 국비로 지원돼 무료이며, AI 도구 사용을 위한 지원금도 제공된다. 경제적 부담 없이 최신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성과는 숫자로도 증명된다. 에이블스쿨은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K-디지털 트레이닝 해커톤'에서 2회부터 5회까지 네 차례 연속 대상을 수상했다. 취업 성과도 괄목할 만하다. KT그룹 취업률은 20% 이상이며, 취업자 중 절반이 대기업 정규직에 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 직무는 AI 개발·컨설팅뿐 아니라 IT 개발, 마케팅까지 다양하다. KT 본사를 비롯해 KT DS, KT클라우드, KT CS, 비씨카드, 지니뮤직 등 그룹사에 다수 취업했고, 외부로는 삼성전자, 포스코, 국민은행, 쿠팡, LG전자, 네이버 등에 취업한 사례가 보고됐다. 교육 종료 후에도 잡페어, 채용 설명회, 취업 컨설팅을 제공하고, 우수 수료자에게는 일부 기업 지원 시 서류 전형 면제 혜택을 주는 등 '교육-취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에이블스쿨의 사례는 한국 에듀테크 산업에 몇 가지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첫째, 'AI 인재'의 정의가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 이상 AI 인재는 컴퓨터공학 전공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문학적 사고와 AI 기술의 결합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에코콩팀의 사례에서 보듯, 기획서 작성에서 인문학적 사고가 발휘되고, 언어 전공자의 데이터 해석 능력이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는 '문과생도 AX 인재가 될 수 있다'는 KT의 주장이 단순한 마케팅이 아님을 보여준다.
둘째, 산업계의 요구를 반영한 교육 과정 설계의 중요성이다. 에이블스쿨이 정부 주도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최신 기술 트렌드를 반영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에 교육 과정 조정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는 에듀테크가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도구를 넘어, 산업 현장의 수요와 인재 양성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함을 시사한다.
셋째, 지역 균형 발전을 고려한 교육 접근성 확대다. AI 교육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현실에서 전국 단위 교육장 운영은 지방 청년들의 기술 격차 해소에 기여한다. 이는 에듀테크 기업들이 사업적 이익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에이블스쿨의 성공이 KT라는 대기업의 인프라와 자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에서, 중소 에듀테크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유사한 모델을 구축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교육생 선발 경쟁률이 3대 1에 불과하다는 점은 더 많은 청년들에게 기회가 확대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AI 인재 양성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만큼, 정부와 기업, 교육기관이 협력해 더 많은 청년이 AI 시대의 핵심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할 것이다.
KT 인재실 관계자의 말처럼 에이블스쿨은 "KT가 AX 사업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청년에게 전하고, 이를 다시 산업 현장의 성과로 잇는 인재 성장 플랫폼"이다. 기술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 아래, 현재 10기 교육생을 모집 중이다. AI 개발자 트랙과 DX 컨설턴트 트랙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이번 교육은 9월 말부터 약 6개월간 진행될 예정이다. 과연 에이블스쿨의 실험이 한국 에듀테크의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