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창업기업 5년차 적자 '늪', 양적 성장 뒤엔 '죽음의 계곡'
국내 대학 창업기업 숫자는 2011년 987개에서 2024년 2887개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창업 후 5년 생존률도 7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5.4%를 크게 웃돈다. 그러나 그늘도 짙다. 기술 이
sedaily.com 보도 | 4 days ago 대학 창업기업 5년차 적자 '늪', 양적 성장 뒤엔 '죽음의 계곡'
국내 대학 창업기업 숫자는 2011년 987개에서 2024년 2887개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창업 후 5년 생존률도 7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5.4%를 크게 웃돈다. 그러나 그늘도 짙다. 기술 이전율은 26%로 미국(40.9%), 영국(61%)에 한참 못 미치며, 창업 5년 차에는 평균 영업이익률이 마이너스 3.3%로 적자 전환한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대학 창업의 질적 전환을 위한 성장사다리 구축 방안' 보고서는 국내 대학 창업 생태계가 '양적 확장'과 '질적 부진'이라는 모순을 안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보고서는 대학 창업의 전 과정을 사업 착수, 사업화, 스케일업, 후속 투자 및 회수라는 4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별 구조적 문제를 진단했다. 첫 번째 단계인 사업 착수에서는 대학 내부 제도가 걸림돌이다. 교원 업적 평가가 논문 등 학술 활동에 치우쳐 있고, 창업 성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학생 창업 휴학제 역시 실효성이 낮아 창업 의지를 꺾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두 번째 단계인 사업화에서는 기술의 시장 연결이 막혀 있다. 국내 대학 및 공공연구기관 중 변리사를 보유한 기관은 16.9%에 불과하다. 기술 권리 보호, 가치 평가, 거래 협상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셈이다. 이 때문에 우수한 연구 성과가 특허 등록 단계에서 멈추거나, 제값을 받지 못하고 시장에 나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스케일업 단계에서 발생한다. 창업 초기 정부 지원이나 엔젤 투자로 버티던 기업이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서는 3~5년 차에 '두 번째 죽음의 계곡'을 만난다. 후속 자금 조달에 실패하면서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줄이 막혀 문을 닫는 사례가 속출한다. 한은은 "대학 창업기업이 성장 사다리를 제대로 타지 못하고 중간에서 추락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후속 투자와 회수 단계에서도 문제는 계속된다. 자금 회수 경로가 비상장주식 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고, 투자자에게 불리한 계약 구조도 만연해 있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자금 문제를 넘어 대학 창업 생태계 전체의 시스템적 결함을 드러낸다. 창업 초기 생존률이 높은 것은 정부의 각종 지원과 대학 인프라 덕분이다. 하지만 일단 '둥지'를 벗어나 본격적인 시장 경쟁에 뛰어들면, 민간 투자자와 후속 자금을 유치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게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기술 이전율이 선진국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은 대학이 가진 기술 자산이 제대로 사업화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많은 대학 기술이 사업화 전문 인력과 마케팅 채널 부재로 실험실에 갇혀 있는 셈이다.
한은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세 가지 방침을 제시했다. 첫째, 대학 거버넌스 개혁이다. 교원 평가 체계에 기술 이전과 창업 실적을 반영하고, 기술이전전담조직(TLO)을 변리사 등 전문 인력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둘째, 공공 부문의 수요자 역할 확대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대학 창업기업의 기술과 제품을 우선 구매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열어주는 전략이다. 셋째, 민간 투자 유도를 위한 '촉매형 스케일업 투자 구조' 구축이다. 공공자금과 민간 투자자의 매칭을 장려하고, 비상장주식 유통 플랫폼 내에 대학 창업기업 전용 거래 시장을 도입해 회수 경로를 다변화하자는 제안이다.
이번 보고서는 교육과 기술, 금융이 결합된 에듀테크 분야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대학 창업 생태계가 활성화되지 못하면, 그 핵심 동력인 기술 기반 교육 스타트업, AI 학습 솔루션 기업의 성장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인공지능(AI) 기반 맞춤형 학습, 가상현실(VR) 교육 콘텐츠 등 최신 에듀테크 분야는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시장 안착까지 긴 호흡이 필요하다. 이런 기업들이 5년 차 적자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연구실에서 나온 기술이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지속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절대적이다.
대학이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곳을 넘어 혁신 창업의 산실 역할을 하려면, 지금의 양적 성장 지표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생존률 74%가 자랑이 아니라, 그 이후의 5년, 10년을 견딜 수 있는 질적 성장의 토대를 마련했는지 되물어야 할 때다. 에듀테크 업계 역시 대학 창업 생태계의 '죽음의 계곡'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기술 사업화와 투자 유치를 위한 장기적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