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브로드컴의 모태는 ‘대학’…한국은 왜 ‘죽음의 계곡’을 못 넘나
구글·브로드컴의 모태는 ‘대학’…한국은 왜 ‘죽음의 계곡’을 못 넘나
khan.co.kr 보도 | 2 days ago
구글·브로드컴의 모태는 ‘대학’…한국은 왜 ‘죽음의 계곡’을 못 넘나
래리 페이지는 스탠퍼드대 박사 과정에서 검색 엔진 알고리즘을 고민하다 구글을 창업했다. 헨리 사무엘리 UCLA 교수는 제자와 함께 반도체 설계 회사 브로드컴을 세웠다. 지금 이 두 기업의 시가총액은 각각 2조 달러를 넘나든다. 미국 시총 10위권 기업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애플까지 포함하면 절반이 대학과 직·간접적인 인연을 갖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대학의 원천 기술로 창업해 시총 상위 30위 안에 든 기업이 단 한 곳도 없다. 인공지능(AI)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 이 차이는 단순한 격차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한국은행이 지난 4일 발표한 ‘대학 창업의 질적 전환을 위한 성장 사다리 구축 방안’ 보고서는 이 문제의 실체를 정량적으로 드러냈다. 국내 대학 창업 기업 수는 2011년 987개에서 2024년 2887개로 3배 가까이 늘었다. 5년 생존율도 7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45.4%)을 크게 웃돈다. 양적으로는 괄목할 성장이다. 그러나 기술 이전율은 약 26%로 미국(40.9%)이나 영국(61%)에 크게 못 미친다. 사업화에 성공한 기업조차 5년 차에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선다. 연구비 1000억원당 특허 등록 건수는 미국의 약 25배에 달할 정도로 연구 성과는 풍부하지만, 이것이 시장의 가치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한은은 이 현상을 ‘죽음의 계곡(Death Valley)’ 개념으로 설명한다. 창업 초기 자금 확보와 사업화 단계에서 투자 유치가 원활하지 않아 기술이 상용화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구간이다. 특히 딥테크 분야는 기술 실증과 시장 진입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자금 압박이 더 심하다. AI와 같은 첨단 기술일수록 연구 성과를 내더라도 실제 제품이나 서비스로 검증받기까지 수년이 소요된다. 전통적인 금융 심사에서는 초기 실적과 유형 자산이 부족한 대학 창업 기업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지식재산권(IP)을 담보로 한 자금 조달이나 매출 연동형 상환 구조 등 새로운 금융 기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듀테크 업계의 시각에서 이 문제는 더욱 절박하다. AI 기반 맞춤형 학습, 지능형 튜터링 시스템, 교육용 생성형 AI 등은 모두 대학의 기초·원천 연구에서 출발하는 딥테크 영역이다. 교육 시장은 공공 조달의 비중이 크고, 기술의 안전성과 효과성에 대한 검증 기간이 길어 ‘죽음의 계곡’이 특히 깊다. 스탠퍼드대 출신의 구글, MIT 출신의 칸아카데미 등 해외 사례와 달리, 한국의 에듀테크 스타트업은 대학 기술을 이전받아도 자금난과 시장 진입 장벽에 부딪혀 좌초하는 경우가 많다. 한은 보고서가 강조한 ‘공공부문이 수요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제언은 교육 분야에서 더 강력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 정부의 교육 조달 시스템이 대학 창업 기업의 첫 고객이 되어 기술 실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투자자 유인을 위한 ‘기술 인수 세제 인센티브’와 기업공개 외에 투자금 회수 시장 활성화 방안도 에듀테크 생태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교육 기술은 시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수익성이 검증되기까지 오래 걸려 민간 투자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분야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위험을 분담하고, 대학 내 기술이전 전담 조직을 강화해 사업화 역량을 높여야 한다.
한은 보고서는 “앞으로 대학 혁신창업 정책은 ‘더 많이 창업하게 하는 정책’을 넘어 ‘창업 이후 성장 사다리를 이어가는 정책’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창업 수를 늘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기술이 시장에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구글과 브로드컴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학의 연구 자유와 함께 창업을 지원하는 벤처 생태계, 그리고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있었다. 한국도 이제는 양적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대학의 원천 기술이 실제 산업과 교육 현장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죽음의 계곡 극복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AI+교육이라는 미래 먹거리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대학과 스타트업, 정부가 함께 설계하는 체계적인 성장 사다리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