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창업기업, 생존율은 OECD 최고인데 왜 5년 차에 적자로 돌아서는가
대학 창업기업, 생존율은 OECD 최고인데 왜 5년 차에 적자로 돌아서는가
biz.heraldcorp.com 보도 | 4 days ago
대학 창업기업, 생존율은 OECD 최고인데 왜 5년 차에 적자로 돌아서는가
한국 대학에서 창업한 기업 10곳 중 7~8곳이 5년 이상 살아남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생존율인 45.4%를 크게 웃도는 75%다. 대학 창업 기업 수도 2011년 987개에서 2024년 2887개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겉으로 보면 한국의 대학 창업 생태계는 선진국을 압도하는 성과를 내는 듯 보인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대학 창업의 질적 전환을 위한 성장사다리 구축 방안’ 보고서는 이와 반대되는 암울한 현실을 보여준다. 창업 5년 차를 넘기면서 영업이익이 적자로 전환하는 기업이 급증한다는 것이다. 매출 증가율을 비용 증가율이 추월하면서 수익성이 무너지는 패턴이 반복된다. 게다가 대학이 보유한 원천기술이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는 ‘기술이전율’은 26%에 그쳐 미국(40.9%)이나 영국(61%)에 한참 못 미친다. 대학이라는 혁신의 요람에서 탄생한 기술이 상업화의 관문에서 좌초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창업 과정을 사업착수, 사업화, 스케일업(확장), 후속투자·회수 등 네 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별로 구조적 제약이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가장 큰 문제는 사업화와 스케일업 단계에서 나타난다. 초기 투자 유치가 어려운 이른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넘긴 창업 기업들이 후속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서 두 번째 죽음의 계곡에 빠진다는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AI)·로봇·반도체 등 딥테크 분야의 창업 기업은 기술 검증과 사업화에 걸리는 기간이 길어 투자받기 어려운 시기가 더 오래 지속된다.
사업 착수 단계의 문제도 만만치 않다. 창업에 실패할 경우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큰 데다 대학 교원들이 창업 활동을 지원할 충분한 성과 인센티브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됐다. 교수들이 학생 창업을 돕거나 자신이 직접 기술을 사업화하려 해도 제도적 보상이 부족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후속투자·회수 단계에서는 한국의 자본시장 구조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자금 회수 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기업공개(IPO) 비중이 창업 선진국보다 높은 반면, 인수·합병(M&A) 시장은 활성화되지 못했다. 일반지주회사가 운영하는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에 대한 다층적 규제가 M&A 수요 집단을 줄였고, IPO 이전에 중간 회수할 수 있는 경로도 제한적이다.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이 장기간 자금을 묶여 있어야 하는 부담을 지면서 초기 단계의 투자 의욕이 꺾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 가지 축을 제시했다. 첫째는 대학 거버넌스(지배구조) 개혁이다. 제도적 경직성을 해소하고 창업 실패 시 안전망을 정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둘째는 공공부문이 수요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맡아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딥테크 창업 기업의 초기 제품을 구매하거나 실증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시장 진입을 도울 수 있다는 발상이다. 셋째는 민간 투자를 유도하는 방안이다. 특히 기술보증 심사에 지식재산권(IP)을 담보 가치로 반영하는 특례를 신설하고, 공공자금과 민간투자자를 연결하는 ‘촉매형 스케일업 투자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보고서가 주목받는 이유는 대학 창업의 양적 성장이 질적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원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 있다. OECD 최고 수준의 생존율이라는 겉모습에 가려진 내실의 부재를 정확히 짚어낸 셈이다. 실제로 국내 대학 창업 기업 중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기술이전율이 낮다는 것은 대학 연구실에서 나온 혁신 기술이 창업이라는 통로를 통해 제대로 사업화되지 못하고 사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에듀테크 업계에서도 이 같은 문제는 그대로 적용된다. 최근 AI 튜터링 플랫폼, 개인화 학습 시스템, 메타버스 기반 교육 콘텐츠 등 에듀테크 분야의 대학 창업이 늘고 있지만, 대부분이 기술 검증과 초기 시장 형성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교육 시장은 B2C(기업-소비자)보다 B2G(기업-정부)나 B2B(기업-기업) 성격이 강해 납품과 실증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정부의 에듀테크 실증 사업이나 공공 교육기관의 도입 의사 결정이 느린 탓에 창업 기업들은 시장 진입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자금이 바닥나는 패턴이 반복된다.
또한 에듀테크 분야의 경우 기술 자체보다는 교육 현장의 니즈와 서비스 디자인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대학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이 실제 학교나 학원에서 활용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과의 연계, 교사 연수, 데이터 프라이버시 이슈 등 여러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이 때문에 단순히 기술이전율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기술을 실제 교육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사업화 역량’과 ‘현장 적응형 서비스’를 함께 키울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이번 한국은행 보고서는 대학 창업 생태계가 단순히 창업 기업 수를 늘리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진정한 혁신은 기술이 사업화로 연결되고, 그 사업화가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로 이어질 때 완성된다. 특히 에듀테크 분야는 기술 개발과 교육 현장 적용 사이의 간극이 큰 만큼, 창업 기업이 이 간극을 메울 수 있도록 정부와 대학, 민간 투자자가 함께 나서야 한다.
우선 대학의 거버넌스 개혁이 시급하다. 교원들이 창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성과 평가 체계를 바꾸고, 창업 실패에 따른 부담을 덜어주는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공공부문이 에듀테크 창업 기업의 가장 큰 수요자가 돼야 한다.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이 혁신적인 에듀테크 솔루션을 적극 도입하고, 이를 실증할 수 있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민간 투자 측면에서는 IP 담보 대출이나 촉매형 투자 구조 도입이 에듀테크 창업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에듀테크 기업은 초기에는 수익 모델이 불확실하지만 보유한 기술과 콘텐츠의 가치가 높은 경우가 많다. 이 기술을 담보로 한 금융 지원이 가능해지면 창업 기업의 자금 조달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IPO 외에 M&A 등 다양한 회수 경로를 활성화해야 한다. 글로벌 에듀테크 시장에서는 대형 IT 기업이나 교육 전문 기업이 유망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에서도 대기업의 에듀테크 분야 전략적 투자와 M&A를 촉진할 수 있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대학 창업 기업이 ‘죽음의 계곡’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문제는 대학 창업의 질적 전환이다. 생존율이 높다고 자만할 일이 아니다. 생존한 기업들이 어떻게 수익을 내고, 그 수익이 다시 연구개발과 혁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그 출발점이 어디여야 하는지 명확히 제시했다. 이제는 정부, 대학, 투자자, 창업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실천 방안을 구체화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