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창업, 양적 팽창 속 질적 전환은 요원…‘죽음의 계곡’ 해법 찾아야

대학 창업, 양적 팽창 속 질적 전환은 요원…‘죽음의 계곡’ 해법 찾아야

hani.co.kr 보도 | 4 days ago

대학 창업, 양적 팽창 속 질적 전환은 요원…‘죽음의 계곡’ 해법 찾아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대학 창업의 질적 전환을 위한 성장 사다리 구축 방안’ 보고서는 국내 대학 창업 생태계의 명암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학생과 교원이 설립한 창업 기업 수는 2011년 987개에서 2024년 2887개로 3배 가까이 급증했고, 5년 생존율도 74%에 달해 일반 창업(33.8%)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45.4%)을 크게 웃돌았다. 그러나 외형적 성장 이면의 질적 지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대학 보유 원천기술의 창업 기업 이전율은 26%로 미국(40.9%)과 영국(61.0%)에 한참 못 미쳤고, 기술 이전 후 실제 매출로 이어진 비율은 2019년 26.6%에서 2023년 19.2%로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이 같은 ‘양적 성장과 질적 정체’의 괴리는 대학 창업이 단순한 창업자 양산을 넘어 기술 사업화와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레인보우로보틱스처럼 카이스트의 원천 기술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사례도 있지만, 대다수 창업 기업은 사업 초기 ‘죽음의 계곡’은커녕 3~5년 차에 찾아오는 ‘두 번째 죽음의 계곡’에서 허덕이고 있다. 실제로 이들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창업 1년 차 1.2%에서 5년 차에는 -3.3%로 악화됐고, 부채비율은 제조 중소기업 평균(111.2%)을 크게 웃도는 159.2%에 달했다. 이는 딥테크·지식산업 특성상 제품 상용화와 시장 진입까지 장기간이 소요되면서 자금난이 스케일업 단계까지 이어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은 보고서가 주목하는 또 다른 핵심은 기술이전 계약의 비표준화와 교원 평가 시스템의 경직성이다. 학술 활동 위주인 교원 업적 평가 체계는 기술이전이나 창업 실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연구자들의 사업화 의지를 꺾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종우 한은 인구노동연구실 과장은 “기술이전·창업 실적을 업적 평가에 반영하고, 대학과 창업자 간 기술이전 계약을 표준화해 사전 공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창업 기업이 확장 단계에서 겪는 자금난 해소를 위해 공공 부문이 수요자로 나서는 동시에 지식재산권 담보 특례나 매출 연동 상환 방안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분석은 에듀테크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에듀테크 스타트업의 상당수는 대학 연구실에서 탄생한 인공지능 기반 맞춤형 학습 시스템이나 교육용 로봇, 데이터 분석 기술 등 딥테크 성격이 강하다. 이들 기술이 실제 교육 현장에 도입되어 매출로 연결되기까지는 교과 과정 인증, 교사 연수, 인프라 구축 등 일반 기술보다 더 긴 시간과 높은 진입 장벽이 요구된다. 따라서 단순한 창업 지원 정책만으로는 ‘죽음의 계곡’을 건너기 어렵다. 대학-정부-민간이 협력해 기술 이전 후에도 지속적인 사업화 지원과 규제 개선에 나서야 한다. 특히 공공 교육 시장이 창업 기업의 첫 번째 고객이 될 수 있도록 혁신 조달 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급선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대학 내 연구 문화의 전환이 필요하다. 논문 실적 중심의 평가에서 벗어나 기술 이전과 창업을 연구 성과의 주요 축으로 인정하는 ‘질적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기술이전 로열티나 지분 배분의 투명성을 높이고, 창업 교원의 휴직이나 겸직 규정을 유연하게 개선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대학 창업의 경쟁력은 단순히 기업 수가 아니라, 그 기술이 실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데 있다. 현재의 ‘양적 성장’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질적 도약’을 위한 정책적 고민과 실행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