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창업의 역설: 생존은 잘하지만, 성장은 못하는 한국의 기술 사업화]
국내 대학 창업기업의 5년 생존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75%에 달한다는 한국은행의 최신 보고서가 주목받고 있다. 2011년 987개에 불과하던 대학 창업기업 수가 2024년 2887개로
biz.heraldcorp.com 보도 | 1 day ago [대학 창업의 역설: 생존은 잘하지만, 성장은 못하는 한국의 기술 사업화]
국내 대학 창업기업의 5년 생존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75%에 달한다는 한국은행의 최신 보고서가 주목받고 있다. 2011년 987개에 불과하던 대학 창업기업 수가 2024년 2887개로 세 배 가까이 증가한 점도 고무적이다. 그러나 생존율과 양적 성장 뒤에는 냉혹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창업 5년 차를 기점으로 영업이익이 적자로 전환되고, 대학이 보유한 원천기술이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는 기술이전율은 26%에 그쳐 미국(40.9%)이나 영국(61%)에 크게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데이터는 한국의 대학 창업 생태계가 '생존'이라는 1차 관문은 성공적으로 통과했지만, '성장'이라는 2차 관문에서 심각한 구조적 결함을 드러내고 있음을 시사한다. 단순히 창업을 장려하는 양적 팽창 정책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혔다는 방증이다.
보고서가 지적한 핵심 문제점은 창업 과정 전반에 걸친 자금 흐름의 단절, 이른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 두 차례 발생한다는 점이다. 첫 번째 죽음의 계곡은 초기 사업화 단계에서 찾아온다. 대학 교원의 창업 참여를 유인할 충분한 인센티브 부재와 창업 실패 시 개인에게 전가되는 높은 비용 부담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두 번째이자 더 치명적인 죽음의 계곡은 스케일업 단계에서 발생한다. 창업 5년 차부터 비용 증가율이 매출 증가율을 추월하면서 기업들은 자금난에 직면한다. 초기 생존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속 투자 유치에 실패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의미다.
특히 인공지능(AI), 로봇, 반도체 등 딥테크 분야의 창업기업들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이들 기업은 기술 검증과 사업화에 장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투자 유치가 어려운 기간이 일반 기업보다 훨씬 길다. 기술의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투자자들의 리스크 회피 성향이 강해지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셈이다. 이는 한국의 벤처투자 생태계가 장기적 안목보다 단기적 수익성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후속 투자와 자금 회수 단계에서도 문제는 이어진다. 한국은 기업공개(IPO)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인수합병(M&A) 시장은 활성화되지 못했다. 일반지주회사 벤처캐피탈(CVC)에 대한 다층적 규제가 M&A 수요자를 줄였고, 이는 IPO 이전에 중간 회수 경로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투자자들이 엑시트(Exit) 경로를 확보하지 못하면 신규 투자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 가지 축을 제시했다. 첫째, 대학 거버넌스 개혁을 통한 제도적 유연성 확보다.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재도전이 가능한 안전망을 구축하고, 교원들이 적극적으로 창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성과 보상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공공부문이 초기 수요자 역할을 적극 수행해야 한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혁신 기술 도입을 통해 딥테크 기업이 안정적인 매출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의 기능이 필요하다. 셋째, 민간 투자를 유도하는 촉매형 스케일업 투자 구조 구축이다. 기술보증 심사 시 지식재산권(IP)을 담보 가치로 인정하는 특례 신설이나, 전략적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 합리화 방안이 대표적인 예시로 꼽힌다.
이번 분석은 단순히 대학 창업이라는 협의의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기술 생태계 전체의 근본적인 질환을 드러낸다. 세계적 수준의 기초 연구 역량과 우수한 인재 풀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시키는 중간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잘 만드는 것'과 '잘 파는 것' 사이의 간극을 메울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혁신이 절실한 시점이다.
에듀테크 업계는 이러한 분석을 더욱 예리하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국내 에듀테크 스타트업들도 대학 창업기업이 겪는 어려움과 동일한 궤적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AI 튜터, 맞춤형 학습 플랫폼, 메타버스 기반 교육 콘텐츠 등 고도의 기술력과 장기간의 연구개발(R&D)이 필요한 에듀테크 분야의 특성상, 기술 검증과 시장 진입 사이의 '비용 폭탄'은 더욱 가혹하게 다가올 수 있다. 특히 교육 시장은 공공 조달과 민간 소비자 시장으로 이분화되어 있어, 초기 매출 확보 자체가 쉽지 않은 구조다.
현재 국내 에듀테크 생태계 역시 창업 초기 단계의 정부 지원이나 엔젤 투자에 집중되어 있고, 이후 스케일업 단계에서의 후속 투자 유치는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다. '두 번째 죽음의 계곡' 앞에서 많은 에듀테크 기업들이 기술을 보유하고도 사업화에 실패하는 안타까운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행 보고서가 제시한 촉매형 투자 구조나 공공부문의 선도적 수요 창출 방안은 에듀테크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래 교육의 핵심 동력으로 주목받는 에듀테크가 단순한 유행이나 정책적 수혜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창업 이후의 '성장 메커니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단순한 생존율 지표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기술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지금 한국 에듀테크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다. 대학과 기업, 정부와 민간 자본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진정한 성장 사다리' 없이는, 기술 강국이라는 수사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위험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