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 성장의 함정, 대학 창업의 질적 전환은 왜 더딘가

국내 대학을 기반으로 한 창업 기업이 2011년 987개에서 2024년 2887개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5년 생존율도 74%에 달해 일반 창업의 33.8%를 크게 웃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대학

hani.co.kr 보도 | 1 day ago 양적 성장의 함정, 대학 창업의 질적 전환은 왜 더딘가

국내 대학을 기반으로 한 창업 기업이 2011년 987개에서 2024년 2887개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5년 생존율도 74%에 달해 일반 창업의 33.8%를 크게 웃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대학 창업의 질적 전환을 위한 성장 사다리 구축 방안' 보고서는 양적 팽창이라는 표면적 성과를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따로 있다. 기술이전율 26%라는 수치에서 드러나듯, 대학의 혁신 기술이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는 '질적 전환'은 여전히 요원하다는 점이다.

기술이전율(기술이전 건수를 기업의 신규 기술 확보 건수로 나눈 비율)은 대학이 보유한 원천 기술이 창업 기업으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전되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한국의 26%는 미국(40.9%)은 물론 영국(61.0%)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술 이전 후 매출 발생으로 이어진 비율이 2019년 26.6%에서 2023년 19.2%로 하락했다는 사실이다. 원천 기술이 대학 밖으로 나와도 창업 기업이 이를 상용화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방증이다. 사업화에 성공한 경우조차 영업이익률이 1년 차 1.2%에서 5년 차 -3.3%로 악화되고 부채비율이 제조 중소기업 평균(111.2%)을 크게 웃도는 159.2%에 달하는 현실은 우려를 자아낸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딥테크·지식산업의 구조적 특성이 자리 잡고 있다. 연구개발(R&D) 성과를 바탕으로 하는 대학 창업은 제품 상용화와 시장 진입까지 통상 5년 이상이 소요된다. 이른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 사업 초기를 넘어 스케일업(사업 확장) 단계까지 연장되는 셈이다. 정종우 한국은행 인구노동연구실 과장은 이 구간에서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이 속출하면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 채 사장되는 원천 기술이 누적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학 창업 기업의 부채비율이 159.2%에 이르는 것은 확장 단계에서의 자금 조달이 얼마나 힘겨운지를 대변한다.

한국 대학의 창업 생태계가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는 교원 평가 체계에서도 드러난다. 현재 대부분의 대학은 학술 활동과 연구 논문 실적을 교원 평가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고 있다. 기술이전이나 창업 실적은 부차적 요소에 머무른다. 이는 연구자가 자신의 기술을 사업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한다. 기술이전 계약의 비표준화도 걸림돌이다. 지분율, 로열티, 수수료 등 기술이전 조건이 대학과 창업자 간 개별 협상에 맡겨지면서 거래 비용이 높아지고 투명성이 떨어진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가 축적되면서 기술의 사업화 사슬이 끊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분석을 더 깊이 들어가면, 대학 창업 생태계는 양적 확장에 집중된 정책의 부작용을 드러낸다. 그간 정부는 창업 기업 수를 늘리는 데 주력해 왔지만, 이 기업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지에 대한 질적 관리 체계는 취약했다. 2011년부터 2024년까지 창업 기업 수가 3배 증가했지만 기술이전율이 정체된 것은 양적 성장과 질적 성숙 사이의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과 영국의 사례는 기술이전율 제고를 위한 시스템적 접근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두 국가는 대학 내 기술이전 전담 조직의 전문성을 높이고, 연구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를 정착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종우 과장이 제안한 개선 방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우선 교원 업적 평가에 기술이전·창업 실적을 반영할 것을 주문했다. 이는 대학 문화 자체를 연구 중심에서 기술 사업화 중심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또한 대학과 창업자 간 기술이전 계약을 표준화하고 이를 사전에 공개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거래의 투명성을 높여 기술이전을 활성화하자는 취지다. 사업 확장 단계에서는 공공부문이 초기 수요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조언도 눈에 띈다. 지식재산권 담보 특례나 매출 연동 상환 방안을 도입해 창업 기업이 '두 번째 죽음의 계곡'(3~5년 차 자금난)을 극복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듀테크 생태계, '죽음의 계곡'을 넘어서려면

대학 창업의 질적 전환 문제는 에듀테크 업계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에듀테크는 인공지능, 데이터 분석, 가상현실 등 첨단 기술과 교육의 접점에 서 있는 대표적인 딥테크 분야다. 대학 연구실에서 탄생한 기술이 교육 현장의 실제 제품과 서비스로 이어지기까지는 오랜 개발 기간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기술 이전율과 사업화 성공률이 낮은 현재의 구조에서는 혁신적인 에듀테크 기술이 시장에 안착하기 어렵다.

에듀테크 창업 기업이 '죽음의 계곡'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술이전 과정의 투명성 확보와 함께 대학 내 창업 지원 체계의 전면적 개편이 필요하다. 연구자가 자신의 기술을 창업으로 연결할 때 발생하는 인센티브 부족 문제는 학점이나 연구비 지원을 넘어 승진과 정년 보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동시에 대학-기업 간 기술이전 계약의 표준화는 에듀테크 스타트업이 불필요한 법률적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공공부문의 선도적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교육부와 각급 교육청이 에듀테크 창업 기업의 초기 수요자로 나서는 방안은 '두 번째 죽음의 계곡'을 극복하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공공 조달 시장에서 에듀테크 제품을 우선 도입하거나, 실제 학교 현장에서의 실증 테스트를 지원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는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창업 기업이 시장 검증을 받고 스케일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다.

대학의 혁신 기술이 경제적 부가가치로 전환되는 사슬을 온전히 구축하는 것은 에듀테크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과제다. 논문 한 편으로 끝나는 연구가 아닌, 교실과 학습자의 삶을 바꾸는 기술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양적 성장 중심 정책이 질적 성숙을 향해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기술이전율 26%는 그 출발점이 될 충분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