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계곡’ 두 번 건너는 한국 대학 창업…에듀테크 혁신의 ‘성장 사다리’는 어디에
‘죽음의 계곡’ 두 번 건너는 한국 대학 창업…에듀테크 혁신의 ‘성장 사다리’는 어디에
fnnews.com 보도 | 1 day ago
‘죽음의 계곡’ 두 번 건너는 한국 대학 창업…에듀테크 혁신의 ‘성장 사다리’는 어디에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는 대학 창업 생태계의 냉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양적으로는 창업 기업 수가 10여 년 새 3배 가까이 늘었지만, 질적으로는 안정적인 성장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두 차례의 죽음의 계곡’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원천기술이 경제적 부가가치로 연결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구조는 에듀테크를 비롯한 딥테크 창업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학 창업 기원의 글로벌 혁신 기업이 한국에서 탄생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단계별 제약 요인과 해법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본문 1]
보고서는 대학 창업이 겪는 첫 번째 장벽을 ‘사업착수 단계’에서 찾는다. 대학 내 교원 업적 평가가 논문 실적과 연구비 수혜 규모에 편중되면서 창업을 장려할 유인이 극히 부족하다. 창업에 실패할 경우 개인이 모든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구조 역시 문제다. 정책금융과 보증제도가 대표자 개인보증 관행에 의존하고 있고, 신용회복이나 채무자회생 절차가 이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리스크는 연구자들이 과감하게 창업에 도전하는 것을 가로막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어지는 ‘사업화 단계’에서는 기술이전 전담조직(TLO)의 전문성 부족이 또 다른 걸림돌이다. 2023년 기준 대학 및 공공연구기관의 특허 활용률은 27.0%에 그쳤고, 변리사를 보유한 기관 비중은 16.9%에 불과하다. 권리 보호, 가치 평가, 거래 협상 역량이 취약해 시장과 기술이 연결되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여기에 산학협력단, 창업지원단, 기술지주회사, TLO 등이 분절적으로 운영되면서 창업자는 같은 정보를 여러 조직에 반복 제출해야 하는 비효율을 감수해야 한다. 이른바 ‘첫 번째 죽음의 계곡’인 초기 투자 단계에서 시드 펀드나 엑셀러레이터 연계 서비스가 미흡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두 번째 죽음의 계곡은 기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하는 ‘스케일업 단계’에서 기다린다. 시리즈 A 이후 후속 투자가 집행되지 않아 사업 고도화에 실패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국은행이 창업 유경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최근 3년간 외부 자금조달에 실패했다는 응답이 46.3%에 달했다. 원인으로는 복잡한 신청 절차, 높은 평가 기준, 투자자 연결 경로 부족 등이 꼽혔다. 정종우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과장은 “딥테크 및 실험실 기반 창업은 기술검증(PoC), 시험·인증, 규제 적합성 확보, 초기 수요처 발굴, 글로벌 시장 진입 등 단계마다 다른 유형의 자금과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며 “현행 지원 체계는 초기 설립 지원에 편중돼 있어 중간 단계에서 자금이나 시장 연결이 끊기면 혁신 효율성이 급감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후속투자·회수 단계’에서도 문제는 이어진다. 기업공개(IPO) 비중이 2017년 21%에서 2025년 37%로 급증하면서, 매각보다 자금 회수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구조로 변모했다. 반면 인수·합병(M&A)을 통한 매각 비중은 같은 기간 47%에서 49%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정 과장은 “코스닥의 낮은 상장 요건이 IPO 유인을 제공했지만,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보유에 대한 다층적 규제가 M&A 수요를 제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자금 회수 경로가 좁아지면서 재투자 선순환 구조가 약화되고, 이는 다시 초기 단계 창업자가 투자 유치에 실패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본문 2]
이 같은 구조적 문제는 에듀테크 분야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에듀테크 스타트업은 기술 개발과 동시에 교육 현장의 규제, 학교 현장과의 연계, 교사와 학습자의 수용성 등 다양한 변수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기술검증 단계에서부터 시범 적용, 품질 인증, 공공 조달 시장 진입까지 각 단계마다 맞춤형 자금과 전문적인 네트워크가 절실하다. 그러나 현행 지원 체계는 초기 창업 지원에 방점이 찍혀 있어, 기술이 시장에서 검증되고 상용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극’을 메워주지 못한다.
실제로 에듀테크 분야에서도 대학 연구실에서 개발된 원천기술이 사업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사장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인공지능 기반 개인화 학습 시스템, 적응형 평가 도구, 가상현실(VR) 실험실 등 혁신적인 기술들이 초기 자금 부족이나 제도적 장벽에 부딪혀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기술이전율이 미국(40.9%)이나 영국(61.0%)에 비해 크게 낮은 한국의 현실은, 단순히 기술의 우수성만으로는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더욱 심각한 점은 대학 내 창업을 담당하는 교원과 직원 수가 2011년 약 700명에서 2024년 약 2200명으로, 창업 기업 수가 같은 기간 987곳에서 2887곳으로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질적 성과는 정체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기술이전율은 26% 내외에 머물고, 사업 확장 단계에 진입할수록 비용 증가율이 매출 증가율을 앞지르며 적자로 전환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양적 팽창이 질적 고도화를 동반하지 못한 결과다.
여기에 더해 초기 단계에서 정책금융을 받은 기업들이 ‘마중물’ 이후 민간 투자자와의 연결에 실패하는 이른바 ‘데스 밸리(죽음의 계곡)’ 현상이 반복된다. 초기 정부 지원금으로 기술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후속 투자 유치에 필요한 사업 계획 수립이나 시장 검증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해 벤처캐피털의 문을 두드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행 조사에서도 자금조달 실패 원인으로 ‘투자자 연결 경로 부족’이 13.4%를 차지했다. 이는 단순히 자금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와 네트워크의 비대칭성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 한국은행의 진단은 에듀테크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학 창업 생태계가 진정한 혁신의 장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양적 확대를 넘어, 단계별 맞춤형 성장 사다리를 구축하는 질적 전환이 필수적이다. 보고서가 제시한 3대 원칙—대학 거버넌스 개혁, 공공부문의 수요자 역할, 민간 투자 유도—은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핵심 과제다.
먼저 사업화 단계에서는 TLO의 전문화와 역할 분리형 모델 도입이 시급하다. 기술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고, 잠재적 수요자와 연결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더불어 공공부문이 적극적인 수요자로 나서 테스트베드를 제공하고, 혁신 조달 제도를 통해 초기 시장을 창출해주는 ‘수요 측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스케일업 단계에서는 대체금융 활성화와 함께, 규제 샌드박스나 패스트트랙을 도입해 기술의 시장 진입 속도를 높이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회수 단계의 경우 M&A 시장 활성화가 핵심이다. 일반 지주회사의 CVC 보유 규제를 완화하고, 기술 인수 기업에 세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동시에, ‘인수 후 혁신 중단’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 기간 기술 활용 또는 후속 R&D를 조건으로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정책 수단들이 단절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대학 창업이 ‘원천기술의 사장()’이 아닌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에듀테크는 기술과 교육이 만나는 접점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분야다. 대학 연구실의 혁신적 아이디어가 교실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정교하고 입체적인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단순히 창업 수를 늘리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각 단계의 ‘죽음의 계곡’을 건널 수 있는 튼튼한 사다리를 놓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한국에서도 ‘에듀테크의 애플’이 탄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