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대신 써준 과제, 대학생들은 왜 '생각하는 법'을 잃어가나]

"과제는 어차피 AI가 다 해주는데, 내가 굳이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대학가에서 이런 인식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생성형 AI가 일상화된 지 불과 2~3년 만에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하는 과정 자체를 포기하는 '인

매일경제 보도 [AI가 대신 써준 과제, 대학생들은 왜 '생각하는 법'을 잃어가나]

"과제는 어차피 AI가 다 해주는데, 내가 굳이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대학가에서 이런 인식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생성형 AI가 일상화된 지 불과 2~3년 만에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하는 과정 자체를 포기하는 '인지적 항복(cognitive surrender)' 현상이 본격적으로 관측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AI 사용 연구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는 이 현상을 단순한 학습 태만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규정했다. 문제는 이것이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교육 시스템이 AI 시대에 맞게 재설계되지 못한 데서 비롯된 현상이라는 점이다.

MIT 보고서가 지적한 핵심은 '학습했다는 착각'이다. 학생들은 조금만 어려움을 겪어도 곧바로 챗봇에 답을 구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읽고 이해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실제로는 학습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배웠다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교육심리학에서 말하는 '유창성 착각(fluency illusion)'의 전형적인 사례다. 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사회적 고립이다. 보고서는 학생들이 교수 상담실을 찾거나 동료와 함께 공부하는 대신 챗봇에게 질문하면서, 학습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인지적 상호작용이 단절되고 있다고 짚었다. 학습은 본질적으로 타인과의 대화와 마찰 속에서 완성되는데, 그 통로가 AI로 대체되면서 사고의 깊이가 얕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증 데이터도 이를 뒷받침한다. 중국의 중·고등학생 2만6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AI를 활용한 학생들의 숙제 점수는 18% 올랐지만, AI를 쓸 수 없는 통제 환경에서 치른 시험 점수는 오히려 20% 떨어졌다. 숙제를 잘하는 능력과 실제 문제해결 능력 사이에 괴리가 벌어진 것이다. MIT가 지난해 발표한 별도 연구에서는 챗봇을 글쓰기 보조 도구로 쓴 사람들이 에세이를 쓴 지 몇 분 뒤 자신이 무엇을 썼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이 확인됐다. 연구에 참여한 나탈리야 코스미나 MIT 연구원은 "기억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기억 네트워크를 사실상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AI가 인지적 부담을 덜어주는 대신, 장기기억으로 전환되는 학습 과정 자체를 차단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AI를 배제하는 것이 답은 아니다. 미국 주요 대학들은 오히려 AI 활용 교육을 확대하는 추세다. 시안 베일록 다트머스대 총장은 "AI가 세상을 규정하는 시대에 AI를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하는 대학은 존재 의미를 잃게 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도 AI 없이는 어떤 분야의 최전선에 서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면 시카고대는 일부 필수 사회과학 과목에서 AI 사용을 금지했고, 로스쿨 1학년 수업에서는 휴대전화와 노트북 사용 자체를 막았다. UC버클리 로스쿨은 학점 평가용 과제의 구상·개요 작성·초안·수정·편집 전 과정에서 AI 사용을 금지했다. 초·중등에서는 규제가 더 강하다. 미국 최대 교육구인 뉴욕시는 유치원부터 8학년까지 AI 사용을 대폭 제한했고, 로스앤젤레스 교육구는 사실상 전 학년에서 챗봇 사용을 금지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정책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혼란이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는 상당수 대학이 구체적 사용 기준을 개별 교수에게 맡기면서,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부정행위인지 아무도 명확히 모르는 상태가 됐다고 전했다. 학생 인지능력에 대한 AI 영향을 연구해온 아니타 사르마 오리건주립대 교수는 AI 교육을 성교육에 비유했다. "어차피 학생들은 AI를 사용할 것"이라며 "어떻게 책임 있게 사용하도록 가르칠 것인가가 문제"라는 것이다. 금지와 허용의 이분법을 넘어, 책임 있는 사용법을 가르치는 'AI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한국 교육 현장에도 이 문제는 이미 상륙했다. 대학들은 지필고사 비중을 높이거나 AI 표절 검사 솔루션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라 임시방편에 가깝다. 정부와 교육계가 마련 중인 AI 윤리 가이드라인이 현장에 스며들려면, 단순한 사용 제한이 아니라 'AI와 함께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교수법 혁신이 병행돼야 한다. 에듀테크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AI가 학생의 답을 대신 내놓는 도구로 설계될수록 인지적 항복은 가속화된다. 반대로 학생이 먼저 생각하고 AI가 이를 확장해주는 '사고 파트너'형 솔루션, 즉 소크라테스식 문답을 유도하거나 학생의 사고 과정을 추적해 피드백을 주는 방향으로 제품 설계가 전환돼야 한다. 결국 AI 시대 교육의 승자는 AI를 가장 잘 쓰는 학생이 아니라, AI를 쓰면서도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지 않는 학생을 길러내는 기관과 기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