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대, 65주년 맞아 '사람 중심 AI' 선언 — 20억 투자와 AI 마이크로디그리가 여는 새판
"AI는 인간의 성장을 돕기 위한 기술이고, 인간은 그 성장을 공동체와 나누는 존재여야 한다." 서울여자대학교 이윤선 총장이 8일 인터뷰에서 밝힌 이 한 문장은, 속도 경쟁에 치인 국내 AI 교육 흐름에 균열을 내는
donga.com 보도 | 3 days ago 서울여대, 65주년 맞아 '사람 중심 AI' 선언 — 20억 투자와 AI 마이크로디그리가 여는 새판
"AI는 인간의 성장을 돕기 위한 기술이고, 인간은 그 성장을 공동체와 나누는 존재여야 한다." 서울여자대학교 이윤선 총장이 8일 인터뷰에서 밝힌 이 한 문장은, 속도 경쟁에 치인 국내 AI 교육 흐름에 균열을 내는 선언으로 읽힌다. 개교 65주년을 맞은 서울여대는 2027학년도 인공지능전공 신설을 축으로, 4년간 20억 원 규모의 서울시 'AI 관련 학과 지원' 사업과 교육부 '대학 AI 기본교육과정 개발 지원사업'을 동시에 수행하며 '인간 중심 AX(AI 전환)' 전략을 본격화한다. 90%가 비공학 전공자인 대학이 AI 교육을 어떻게 재설계하는지, 그 실험의 전모가 주목된다.
핵심은 'AI Pathway'다. 서울여대는 교양·전공·비교과를 초급·중급·고급으로 세분화하고, 단계별로 'AI 시민'·'AI 융합실천인재'·'AI 혁신가' 인증을 부여한다. AI 관련 과목 17학점 이상 이수 시에는 총장 명의의 AI 마이크로디그리를 수여해 취업 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마이크로디그리는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 중인 짧은 학위 체계로, 구직 시장에서 전공 외 역량을 입증하는 도구로 자리잡고 있다. 서울여대가 비공학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체계를 도입한 것은, AI 시대를 '전공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구성원의 리터러시'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전공 신설과 대학원 확대도 병행된다. 내년 AI융합학부 신설로 신입생 25명을 선발하고, 소프트웨어·데이터사이언스 전공과 하나의 학부를 구성한다. 여기에 더해 대학원 개인정보보호학과가 신설되며,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의 '개인정보 보호·활용 석박사 전문인력 양성사업' 공동 연구개발 기관으로 선정된 점도 눈에 띈다. 기술·법·제도·윤리를 두루 다루는 개인정보보호 석박사 양성은 EU AI Act를 필두로 전 세계가 규제 경쟁에 진입한 현 시점에서 시의적절하다.
흥미로운 변화는 전통 강점인 인성교육의 AI 결합이다. 바롬인성교육 1학년 교양필수에 'AI와 함께하는 슬기로운 생활'이 도입됐다. 3주간 생활학습공동체에 참여하는 신입생들은 "AI가 제공한 정보를 어디까지 신뢰할 것인지", "AI의 도움을 받은 범위를 어떻게 밝힐 것인지", "사고와 학습의 주체성을 어디까지 AI에 맡길 것인지"를 토론한다. 캘리포니아대(UC)나 뉴욕대(NYU) 같은 해외 대학이 'ChatGPT 사용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가고 있는 흐름과 맥락을 같이한다. 서울여대는 단순 사용 가이드에 그치지 않고, 3·4학년 교양필수인 '바롬종합설계프로젝트'에서 학생들이 지역 문제를 직접 발굴·해결하며 AI를 활용하는 경험을 병행하도록 했다.
학과별 융합 과목 설계도 구체적이다. 식품영양학과의 '스마트 뉴트리션 사회혁신', 시각디자인전공의 'AI 크리에이티브 디자인', 언론영상학부의 'AX 미디어 설계', 글로벌ICT인문융합학부의 'AI 내러티브'까지 — 각각 전공 고유의 문제의식 위에 AI를 얹었다. 교육부는 이런 통합 모형을 '인간이해와 사회혁신을 통한 교양-마이크로전공 통합 AI 교육모형'이라 명명했다. 개발된 교육과정은 학점 교류와 K-무크를 통해 외부 대학과 일반인에게도 개방되며, 'AI와 젠더'·'AI 시대 읽기' 같은 교양 강좌가 시민 대상으로도 제공된다.
사회혁신 교육의 축도 뚜렷하다. 바롬SI(사회혁신)교육센터를 중심으로, 광운대·서울과학기술대·삼육대와 공동 운영 중인 '도시혁신프로젝트' 과목이 강원 양구군의 지역 소멸 위기 대응을 다룬다. 학생들이 현지 기업·단체와 협업하며 AI를 활용한 해결책을 만들어가는 구조다. 학사 행정 영역에서도 'AI 추천 시스템'이 구축 중이며, 데이터혁신실에서 3년간 운영해 온 교과목 추천 시스템을 고도화해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길라잡이하는 '개인별 성장 내비게이션'을 지향한다.
외국인 유학생 지원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교육부·법무부 '교육국제화역량인증제' 우수 인증대학에 선정돼 비자 절차 간소화 등 혜택을 확보했으며, 학부 기준 약 1,200명의 유학생을 위한 전 주기 지원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례가 에듀테크 업계에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첫째, AI 교육의 패러다임이 '전공 신설 경쟁'에서 '전 대학생 역량 인증 체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이크로디그리와 같은 짧은 학위 체계는 기업이 신입 채용에서 참고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로 기능하며, 이는 에듀테크 기업에게는 학습 분석·역량 인증 플랫폼의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연다. 둘째, '인간 중심 AI'라는 기치 뒤에는 사용 윤리·비판적 사고·공동체 책임이라는 교육적 가치가 있다. 서울여대가 도입한 토론 기반 인성교육과 사회혁신 프로젝트는 생성형 AI 시대에 대학이 '사고의 주체성'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모범 답안이다. 셋째, K-무크와 학점 교류로 대표되는 교육과정 개방화는 MOOC 이후의 '개방형 대학 교육' 모델을 보여준다. 일반인 대상 'AI와 젠더' 같은 강좌 공개는 평생교육 시장에서 AI 리터러시 수요를 흡수하려는 시도다.
향후 과제도 분명하다. 비공학 학생 90%의 역량 단계별 인증이 실제로 졸업 후 취업 시장에서 통용될지, 캡스톤디자인 기반 'AI 혁신가' 양성이 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역량과 얼마나 정합한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또한 마이크로디그리 제도의 학점 인정 범위와 인증 주체의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후속 작업이 따라와야 한다. 그럼에도 서울여대의 이번 실험은, AI 교육이 '도구를 잘 다루는 사람'에서 'AI와 함께 더 나은 답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국내 대학이 응답한 첫 사례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