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학가에서 생성형 AI 사용이 사실상 보편화됐지만, 정작 대학의 제도적 대응은 학생 행동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영국 고등교육정책연구소(HEPI)가 최근 발표한 '2026 학생 생성형 AI 설문조사'(HEPI 보고서 199)에 따르면, 영국 학부생의 95%가 어떤 형태로든 AI를 사용하고 있으며 94%는 평가 과제를 위해 생성

hepi.ac.uk 보도 영국 대학가에서 생성형 AI 사용이 사실상 보편화됐지만, 정작 대학의 제도적 대응은 학생 행동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영국 고등교육정책연구소(HEPI)가 최근 발표한 '2026 학생 생성형 AI 설문조사'(HEPI 보고서 199)에 따르면, 영국 학부생의 95%가 어떤 형태로든 AI를 사용하고 있으며 94%는 평가 과제를 위해 생성형 AI를 활용한다고 답했다. 조사는 2025년 12월 영국 풀타임 학부생 1,054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2024년 첫 조사 이후 3년 만에 AI는 낯선 실험 도구에서 학업의 기본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학생들의 AI 활용 속도와 대학의 지원 사이에 벌어진 격차다. AI 사용률이 95%에 달하는 반면, 소속 대학이 AI 사용을 장려한다고 느끼는 학생은 37%에 그쳤고, 대학이 AI 도구를 제공한다고 답한 비율은 38%에 불과했다. 학생 10명 중 6명 이상이 스스로 AI를 찾아 쓰는 동안, 대학은 여전히 규제와 허용 사이에서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흥미롭게도 러셀그룹 소속 대학 학생들은 39%가 "대학이 AI 사용을 장려한다"고 답해 전년의 26%에서 크게 올랐다.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제도적 수용이 시작됐지만, 전체로 보면 여전히 소수에 그친다.

평가 방식의 변화도 감지된다. 학생 65%가 AI 대응 차원에서 평가 방식이 크게 바뀌었다고 인식했다. AI가 생성한 텍스트를 평가 과제에 직접 포함한다고 밝힌 학생 비율은 12%로, 2025년 8%, 2024년 3%에서 꾸준히 상승했다. 표절 문제와 얽히기 쉬운 수치지만, 단순한 '부정행위 증가'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대학이 AI 활용 역량 자체를 평가에 반영하기 시작하면서 학생들이 AI 산출물을 과제에 명시적으로 통합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학생들은 부당한 부정행위 의혹을 받을까 봐 불안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사용이 일상화될수록 '어디까지가 허용인가'를 둘러싼 기준의 불투명성이 새로운 불안 요인으로 떠오른 셈이다.

학생 경험에 대한 평가는 양분됐다. 응답자의 49%는 AI가 대학 생활을 개선했다고 봤다. 시간을 절약하고, 이해를 돕고, 즉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주된 이유였다. 반면 소수는 AI가 경험을 악화시켰다고 답하며 형평성 훼손, 자기 역량 약화, 사회적 고립, 취업 전망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정서적 사용이다. 약 15%의 학생이 동반자 역할, 조언, 외로움 해소를 목적으로 AI를 쓴다고 밝혔다. 학습 도구를 넘어 정서적 지지 체계로 AI가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역량 교육의 공백도 드러났다. 학생 68%는 AI 역량이 오늘날 사회에서 필수적이라고 믿었지만, 교수진이 미래 진로를 위한 AI 역량을 길러준다고 느끼는 비율은 48%에 머물렀다. 인문·예술 계열 학생들이 특히 지원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AI를 잘 쓰는 능력이 취업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상황에서, 전공별로 교육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이번 조사는 2026년 대학가가 '양극화된 AI 지형'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대학이 AI를 장려한다는 응답(37%)과 장려하지 않는다는 응답(36%)이 팽팽했고, AI 때문에 더 외로워졌다는 학생(20%)과 덜 외로워졌다는 학생(21%)도 비슷했다. 전통 자료를 선호한다는 응답(33%), AI와 전통 자료를 균형 있게 쓴다는 응답(29%), AI 자료를 선호한다는 응답(37%) 역시 고르게 갈렸다. 단일한 'AI 세대'가 존재한다는 통념이 흔들리는 대목이다.

에듀테크 업계에 이 보고서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첫째, 수요는 이미 포화 상태다. 학생 확보를 위한 'AI 도입' 자체는 더 이상 차별점이 되지 못한다. 관건은 활용의 질과 책임 있는 사용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다. 둘째, 대학의 미충족 수요가 시장 기회로 남아 있다. AI 도구 제공률 38%, 교수진의 역량 교육 지원 48%라는 낮은 수치는 곧 성장 여력이다. 다만 단순한 챗봇 접근권 제공을 넘어, 평가 설계와 학문적 정직성 관리, 정서적 사용에 대한 윤리 가이드를 묶은 통합 솔루션이 요구된다. 셋째, 인문·예술 계열 등 지원 사각지대를 겨냥한 전공 맞춤형 콘텐츠가 새로운 경쟁 축이 될 전망이다.

결국 2026년의 질문은 "학생이 AI를 쓰는가"가 아니라 "대학이 그 사용을 얼마나 책임 있게 이끄는가"로 이동했다. 학생들은 이미 다음 단계로 걸어 들어갔지만, 제도는 여전히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격차를 먼저 좁히는 대학과 기업이 향후 고등교육 AI 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