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인프라 1위, 교실 활용은 꼴찌…코딧 “AI 시대 교육정책, 기기 보급에서 창작으로”]

한국의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손쉽게 디지털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 그러나 정작 학교 수업에서 그 자원을 활용하는 정도는 조사 대상 43개국 가운데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스마트 기기와 네트워크는

itbiznews.com 보도 | 3 days ago [디지털 인프라 1위, 교실 활용은 꼴찌…코딧 “AI 시대 교육정책, 기기 보급에서 창작으로”]

한국의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손쉽게 디지털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 그러나 정작 학교 수업에서 그 자원을 활용하는 정도는 조사 대상 43개국 가운데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스마트 기기와 네트워크는 넘치는데 교실 안에서는 그것을 ‘쓰는’ 경험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생성형 AI가 교육 현장을 빠르게 파고드는 지금, 코딧 부설 글로벌정책실증연구원이 이 역설을 정면으로 다룬 정책 제언을 내놨다.

코딧(대표 정지은) 부설 글로벌정책실증연구원은 8일 ‘AI 시대 디지털 창작 역량 함양을 위한 초·중·고 교육 환경 정책 과제’ 이슈페이퍼를 발간했다. 연구원은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2 자료를 근거로 한국 학생의 ‘학교 밖 디지털 자원 접근 기회’가 43개국 중 1위인 반면, ‘수업 중 디지털 자원 활용도’는 43위에 그쳤다고 밝혔다. 접근성과 활용도 사이의 이 극단적 격차가 이번 이슈페이퍼의 출발점이다.

연구원이 주목한 것은 단순한 활용률 제고가 아니다. 생성형 AI의 확산으로 디지털 교육의 목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학생이 AI와 디지털 도구로 직접 결과물을 만들고, 그 결과물을 검증하고 수정하는 ‘창작 중심 학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AI를 다루는 기능적 숙련도뿐 아니라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힘, 저작권과 개인정보 보호를 고려하는 윤리적 역량까지 함께 길러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장의 과제로는 네 가지가 꼽혔다. 지역과 학교 간 디지털 창작 경험의 격차, 교원의 AI 기반 수업 설계와 평가를 뒷받침할 지원 부족, 단기 사업이나 무료 서비스에 의존하는 도구 활용이 낳는 학습 연속성 문제, 그리고 교육용 플랫폼의 개인정보·저작권·콘텐츠 안전 기준 미비다. 특히 무료 서비스 중심의 도구 활용 문제는 정책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되는 지점이다.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정책이 바뀌면 학생의 학습 경험도 끊긴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에 연구원은 세 가지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모든 교과에서 디지털 창작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교육과정과 평가체계를 구축하고, 산업 표준에 기반한 민관협력과 교원 전문성 지원을 강화하며, 개방성·안전성·지속가능성을 고려한 디지털 창작 교육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 현장에서 쓰이는 도구를 교육 현장과 연결하는 방안도 강조했다. 부산교육청이 Adobe, Google, Microsoft 등 주요 클라우드·생성형 AI 서비스와 연계해 구축한 통합 로그인 시스템 ‘PENZ’가 대표적 사례로 소개됐다.

이번 제언이 주목받는 이유는 한국 교육 디지털화의 성격이 단계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디지털 교육정책은 기기 보급과 네트워크 구축에 집중했다. 코로나19 원격수업을 계기로 스마트 기기와 학습 플랫폼이 빠르게 확산했지만, 인프라가 갖춰진 뒤에도 교실 수업의 질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PISA 2022의 접근성 1위·활용도 43위라는 수치는 그 비판을 국제 비교 데이터로 확인해 준 셈이다.

생성형 AI 시대에 이 격차는 더 큰 위험이 된다. AI 도구는 단순 소비형 콘텐츠가 아니라 학생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다. 창작 경험이 없는 학생은 AI를 ‘답을 받아 적는 도구’로만 쓰게 되고, 창작 경험이 풍부한 학생은 AI를 ‘생각을 확장하는 도구’로 활용하게 된다. 같은 기기를 손에 쥐고도 격차가 벌어지는 구조다. 연구원이 창작 경험의 지역·학교 간 격차를 주요 과제로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교원 문제 역시 단순한 연수 부족으로 환원하기 어렵다. AI 기반 수업 설계와 평가는 기존 교수법과 다른 역량을 요구한다. 학생이 AI로 만든 결과물을 어떻게 평가하고 피드백할 것인지, 저작권과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교원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학교 간 격차가 곧 교사 간 격차로 굳어질 수 있다.

송해영 글로벌정책실증연구원장은 “교육정책은 기기와 기술 보급을 넘어 모든 학생이 지역이나 학교 등의 여건과 관계없이 디지털 창작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며 “학교에서의 창작 경험이 미래 역량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안정적인 디지털 창작 도구에 대한 접근 기회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이슈페이퍼가 에듀테크 업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책의 무게중심이 ‘보급’에서 ‘경험’으로 옮겨가면 시장의 판단 기준도 달라진다. 기기와 솔루션을 얼마나 많이 공급했는지보다, 학생이 그 도구로 무엇을 만들어냈고 그 경험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가 중요해진다. 무료 서비스나 단기 사업으로 반짝 성과를 내는 모델은 설 자리가 줄어들고, 산업 표준에 맞춰 안정적으로 운영되며 교육과정과 평가에 통합될 수 있는 플랫폼이 경쟁력을 갖게 된다. 개인정보와 저작권, 콘텐츠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서비스는 애초에 학교 문턱을 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민관협력의 방향도 재정의될 전망이다. 부산교육청의 PENZ 사례처럼 글로벌 클라우드·AI 기업과 교육청이 연계하는 모델은 도구 접근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한 방식으로 주목된다. 다만 특정 기업 서비스에 대한 의존이 학습 연속성 문제를 낳지 않도록 개방성과 상호운용성을 확보하는 과제가 남는다. 결국 관건은 속도가 아니라 지속가능성이다. 기기 보급이라는 1단계를 넘어선 한국 디지털 교육정책이 창작 경험이라는 2단계로 실제로 이동할 수 있을지, 향후 교육과정 개정과 예산 편성, 교원 연수 체계 개편이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