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 에듀테크 정책 아카데미가 던진 질문: "무엇이 효과가 있는지 증명하라"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4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인공지능 글로벌 에듀테크 정책 아카데미'에 약 20개국 정책 담당자와 개발협력 파트너, 산업계 인사 150여 명이 모였다. 주한영국대사관과 영국 외무·영연방·개발부(F

머니투데이 보도 | 39 minutes ago 글로벌 AI 에듀테크 정책 아카데미가 던진 질문: "무엇이 효과가 있는지 증명하라"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4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인공지능 글로벌 에듀테크 정책 아카데미'에 약 20개국 정책 담당자와 개발협력 파트너, 산업계 인사 150여 명이 모였다. 주한영국대사관과 영국 외무·영연방·개발부(FCDO), 영국문화원이 참여한 이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AI가 교육에 가져올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들여다봤다. 화두는 명확했다. AI를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근거로 도입하고 어떻게 책임 있게 확산할 것인가였다. 한국은 이 논의에서 '실험실'이자 '참조 사례'로 소환됐다.

행사의 주제는 'AI와 교육·역량 개발의 미래: 정책에서 대규모 실행까지'였다. 참가자들은 AI가 실질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 초래할 수 있는 위험과 불평등, 책임 있는 활용을 위한 안전장치와 기반 여건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잭 민티 주한영국대사관 디지털 참사관은 "AI는 학습을 향상시키고 교사를 지원하며 청년들이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대비하도록 돕는 중요한 기회"라면서도 "AI가 실질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를 신중하게 선택하는 동시에 위험을 관리할 강력한 안전장치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기회론과 규제론을 동시에 강조한 발언으로, 이번 아카데미의 기본 톤을 대변했다.

가장 무거운 경고는 세계은행에서 나왔다. 크리스티안 보데비히 세계은행그룹 교육·역량개발 국장은 "AI가 제공하는 기회는 크지만 도입은 반드시 근거에 기반해야 한다"며 "무엇이 효과가 있는지,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드는지, 누구에게 효과가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각국 교육 당국이 AI 도구를 앞다퉈 도입하면서 정작 효과 검증은 뒤로 밀리는 현실을 정면으로 겨냥한 발언이다. 보데비히 국장은 AI가 바꾸는 것이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와 경쟁력, 특히 청년과 취약계층의 기회 확대 문제라고 규정했다. 에듀테크를 교육 정책이 아니라 고용·불평등 정책의 프레임으로 다시 읽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형평성과 포용성은 프로그램 전반을 관통한 핵심 의제였다. 참가자들은 AI 기반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뿐 아니라 네트워크 연결성, 인프라, 비용, 언어, 장애, 성별, 디지털 역량, 제도적 역량 등의 장벽으로 소외될 수 있는 사람들을 함께 살폈다. 사무엘 아델라 마스터카드 재단 중등교육·진로전환 담당 수석국장은 "청년들은 AI 기반의 미래에 적응할 준비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역량과 기회를 가져야 한다"며 "교육 체계가 AI의 가능성을 학습에서 존엄하고 보람 있는 일자리로 이어지는 보다 포용적인 경로로 전환하도록 지원할 기회"라고 말했다. 기술 접근성 격차가 곧 노동시장 진입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참가자들이 한국의 경험에 주목한 대목도 눈에 띈다. 이들은 한국 기관 현장을 방문하고 관계자들과 교류하며 정책과 인프라, 교원 역량, 디지털 서비스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결합되는지 확인했다. 이를 각국 상황에 적용할 방안을 논의하는 세션도 이어졌다. 정제영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원장은 "이번 정책 아카데미는 단순히 AI를 도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각국의 상황과 우선순위에 부합하는 책임 있고 지속 가능한 접근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줬다"며 "한국의 디지털 교육은 성공과 도전을 거치며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해 왔고, 이러한 경험이 각국이 저마다의 길을 설계하는 데 유용한 참고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의 경험이 참조 모델로 부상한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한국은 디지털 교과서, 교육행정 정보시스템,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논의까지 교육 디지털 전환의 전 주기를 압축적으로 통과했다. 동시에 교원의 업무 부담, 학생 간 격차, 데이터 프라이버시 논란 같은 부작용도 먼저 겪었다. 개도국과 선진국 정책 담당자들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성공 사례만이 아니라 시행착오의 기록까지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KERIS가 축적한 정책·인프라·교원 역량의 결합 모델은 개별 솔루션이 아니라 시스템 단위의 수출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이번 아카데미가 확인한 것은 한국 모델의 우월성이 아니라 이식 가능성이다. 각국의 제도적 역량과 인프라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의 방식을 그대로 옮기는 접근은 실패하기 쉽다.

이번 행사가 에듀테크 업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냉정하다. AI 교육 도구의 가치는 기능의 화려함이 아니라 증거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효과의 크기, 비용 대비 성과, 수혜 집단과 소외 집단의 구분, 확장 시 발생하는 교원 역량 및 인프라 병목까지 데이터로 제시하지 못하는 제품은 공공 조달과 개발협력 자금의 문턱을 넘기 어려워진다. 세계은행과 마스터카드 재단 같은 개발금융 주체가 '근거 기반 도입'을 명시적으로 요구한 것은 시장의 평가 기준이 바뀌고 있음을 뜻한다. 앞으로 에듀테크 기업의 경쟁력은 모델 성능이 아니라 현장 검증 데이터와 형평성 설계 역량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축적한 디지털 교육 전환의 경험은 이 기준에 부합하는 검증 자산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 경험을 데이터와 표준으로 정리해 국제 사회에 제공할 수 있느냐다. 서울에서 열린 이번 아카데미는 그 가능성과 함께, 증거 없이는 확산도 없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