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리터러시, 이제 ‘선택’이 아닌 ‘의무’다 — EU AI법 제4조가 교육계에 던지는 화두

2026년 본격 시행을 앞둔 유럽연합(EU)의 인공지능법(AI Act)이 전 세계 에듀테크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강력하면서도 가장 모호한 조항’으로 꼽히는 제4조(AI 리터러

ai-act-law.eu 보도 | 1 week ago AI 리터러시, 이제 ‘선택’이 아닌 ‘의무’다 — EU AI법 제4조가 교육계에 던지는 화두

2026년 본격 시행을 앞둔 유럽연합(EU)의 인공지능법(AI Act)이 전 세계 에듀테크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강력하면서도 가장 모호한 조항’으로 꼽히는 제4조(AI 리터러시)는 AI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모든 주체에게 직원 교육 의무를 부과한다.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법적 구속력을 지닌 이 조항은 AI 시대의 새로운 ‘교육권’과 ‘책임’의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한국 교육 현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U AI법 제4조는 AI 시스템의 제공자(Provider)와 도입·운영자(Deployer)에게 소속 직원 및 AI 시스템 운영에 관여하는 모든 인력의 ‘AI 리터러시(AI literacy)’ 함양을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교육 대상이 개발자에 국한되지 않고 시스템을 실제로 사용하고 관리하는 모든 이해관계자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둘째, 교육 내용이 단순히 기술적 사용법을 넘어 해당 인력의 기술 지식, 경험, 교육 수준, 그리고 AI가 적용되는 맥락을 고려한 맞춤형 설계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셋째, AI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간접적으로 최종 사용자에 대한 배려까지 포함한다.

이 조항의 법적 성격을 면밀히 살펴보면, EU 입법자가 의도적으로 ‘결과’보다는 ‘노력 의무’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항은 “특정 개인의 AI 리터러시 수준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즉, 모든 직원이 AI 박사가 될 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각 조직이 AI 리스크를 이해하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조성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는 ‘과실 책임’의 개념보다는 ‘주의 의무’의 개념에 가깝다. 만약 AI 시스템으로 인해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이 직원 교육을 소홀히 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과실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제4조는 향후 AI 관련 민사·행정 분쟁에서 과실 판단의 중요한 잣대가 될 전망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 조항이 AI 교육의 ‘형평성’ 문제를 공식적으로 거론했다는 사실이다. 제4조 2항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와 회원국이 특히 중소기업(SMEs)의 의무 이행을 지원하도록 규정한다. 대기업은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구축할 역량이 있지만,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AI 리터러시 교육을 위한 별도의 예산과 전문가를 확보하기 어렵다. 이러한 구조적 격차를 법률가들이 인지하고 지원 체계를 마련하도록 한 것은, AI 교육이 ‘기업의 자발적 사회공헌’이 아닌 ‘국가적 차원의 인프라 구축’ 영역으로 편입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AI 격차가 기술 격차가 아닌 교육 격차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의 반영이다.

그러나 이 조항이 현실에서 작동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AI 리터러시’의 정의가 법령 어디에도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제4조 3항은 유럽 AI 위원회(AI Board)가 ‘유럽 역량 프레임워크(European competence frameworks)’를 고려해 공통 목표를 설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는 권고적 성격에 그친다. 결국 각 기업과 교육기관이 자체적으로 기준을 세워야 하는 상황에서, 해석에 따른 교육 수준의 편차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은 1시간짜리 온라인 인식 교육을 이수하면 ‘리터러시 함양’으로 간주할 수 있지만, 다른 기업은 실습 중심의 수개월 과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유럽 각국 규제당국이 이 조항을 어떻게 해석하고 집행할지에 따라 실효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셈이다.

이러한 EU의 움직임은 한국 교육계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은 2025년부터 AI 디지털교과서를 초등학교 3~4학년과 중학교에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에듀테크를 공교육에 통합하려는 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정작 AI를 가르칠 교사들의 ‘AI 리터러시’ 수준은 여전히 제각각이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의 조사에 따르면 상당수 교사가 AI 디지털교과서의 작동 원리와 한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수업에 적용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EU가 기업에 부과한 의무를 한국 정부는 교사와 교육행정가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더 근본적으로는, AI 리터러시 교육의 대상을 ‘AI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한정할 것인지, ‘AI의 영향을 받는 사람’으로 확장할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남는다. EU법은 전자를 중심으로 규정하면서도 후자를 ‘고려’하도록 했다. 그러나 생성형 AI 시대에는 학생이 AI 도구를 직접 만지지 않더라도 AI가 생성한 콘텐츠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따라서 AI 리터러시는 직업적 역량을 넘어 시민의 기본 소양으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EU가 제4조를 통해 기업에 요구한 것은 단순한 규정 준수가 아니라, AI가 사회 전반에 스며든 상황에서 모든 구성원이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거버넌스 설계의 출발점이다.

결국 AI 리터러시 의무화는 AI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뒤처져 있는 인간의 이해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안전장치’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것을 운영하고 감독하는 인간이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예상치 못한 오류나 편향을 적시에 발견할 수 없다. EU는 이를 인지하고 법적 장치를 통해 AI 교육을 개인의 자기계발 영역에서 조직의 생존 전략이자 국가의 경쟁력으로 격상시켰다. 한국도 AI 강국을 넘어 AI ‘책임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 보급률이 아닌, 기술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인적 역량의 저변을 확대하는 정책적 고민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AI 리터러시가 ‘권장 사항’에서 ‘의무 사항’으로 전환되는 글로벌 흐름 속에서, 한국 교육이 취할 선택이 곧 미래 AI 시대의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