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대학의 야심찬 실험…AI·디자인이 깃든 인문학, 수도권-지방 넘어 다시 태어난다]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의 강연아 교수가 사업단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8일 기자회견 자리에 섰다. 그의 옆에는 국립공주대, 동의대, 이화여대, 한동대의 총장·부총장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대한민국 인문학 교육의 판을

fnnews.com 보도 | 17 hours ago [5개 대학의 야심찬 실험…AI·디자인이 깃든 인문학, 수도권-지방 넘어 다시 태어난다]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의 강연아 교수가 사업단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8일 기자회견 자리에 섰다. 그의 옆에는 국립공주대, 동의대, 이화여대, 한동대의 총장·부총장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대한민국 인문학 교육의 판을 다시 짜겠다는 의지가 담긴 자리였다. 5개 대학이 손을 잡고 AI와 디자인을 인문사회 학문에 이식하는 'HUSS 미래디자인 컨소시엄'을 본격 가동한다는 선언이었다.

인문학 위기라는 말이 수년째 반복되는 가운데, 이번 협력은 단순한 대응책이 아니다. 인문학의 본령인 '사유와 비판' 위에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근육을 붙이겠다는 실험이다. 문제는 과연 인문학의 본질과 기술의 논리가 충돌 없이 융합될 수 있느냐에 있다.

이번 협약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첫째, 학점 교류 기반의 공동 수업이다. 참여 대학 학생들은 소속 대학에 관계없이 다른 학교가 개설한 AI·디자인 결합 인문학 과목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다.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의 융합인문사회과학부, 이화여대의 디자인 전공, 한동대의 기술 기반 인문학 트랙, 국립공주대와 동의대의 지역 기반 인문사회 강점을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는 구상이다. 다른 대학에서 이수한 과목도 본인 대학의 정식 학점으로 인정받아 학생들의 학사 일정에 직접 반영된다.

둘째, 시설과 자원의 상호 개방이다. 각 대학이 보유한 첨단 교육 시설과 학습 자원을 회원 대학 학생들도 함께 활용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개별 대학에 갇혀 있던 교육 자산을 공동 자산으로 전환하는 시도다.

셋째, 정규 강의를 넘어서는 실무 프로젝트와 현장 체험 프로그램이다. 단순한 이론 융합이 아니라, 기업과 지역사회의 실제 문제를 학생 팀이 직접 해결해보는 프로젝트형 학습(PBL)을 병행한다. 인문학 전공자가 기술적 도구를 익힌 뒤 이를 현실 문제 해결에 투입하는 전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교육부가 한국연구재단과 함께 밀고 있는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사업(HUSS)'은 2020년대 들어 한국 인문학의 디지털 전환을 겨냥한 핵심 플래그십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인문학의 존재 가치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거세지던 시점에 출발한 이 사업은, 인문학이 도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과 결합할 때 새로운 가능성을 갖는다는 전제 위에 설계됐다.

이번 '미래디자인' 트랙은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띈다. AI와 디자인이라는 두 키워드를 인문학에 명시적으로 결합시켰기 때문이다. 기존 HUSS 사업이 인문학-자연과학 융합, 인문학-공학 융합 등 다양한 방향을 탐색해왔다면, 이번 컨소시엄은 보다 세분화된 교육 모델을 시도한다.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방법론과 인문학적 비판적 사고, AI 기반 데이터 분석 역량을 한 교육 안에 묶어내겠다는 청사진이다.

또한 수도권 중심 대학과 지방 거점 국립대학이 동등한 파트너로 참여한다는 점에서도 상징성이 크다. 그동안 한국 고등교육은 수도권-비수도권 간 교육 자원 불균형이라는 오랜 과제를 안고 있었다. 학점 교류와 공동 수업은 이러한 구조적 격차를 줄이기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국립공주대와 동의대가 참여함으로써, 인문사회 융합 교육이 수도권 학생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전달된다.

다만, 평가해야 할 지점도 적지 않다. 학점 인정의 구체적 절차와 학점 이수 상한, 학사 시스템 간 호환성 문제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또한 5개 대학의 교육 철학과 운영 방식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기에, 단순히 강좌를 개설하고 교환하는 수준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공동' 교육과정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향후 관건이다. 실무 프로젝트의 경우 기업과 지역사회와의 연결망을 어느 대학이 어떻게 주도할 것인지, 학생 평가의 공정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거버넌스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

이번 5개 대학 컨소시엄의 시도는 한국 에듀테크 업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AI와 인문학의 결합은 기술 교육 시장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 그동안 에듀테크 시장은 코딩 교육, AI 리터러시, 디지털 역량 강화 등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여기에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라는 니치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단순히 AI를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만들어내는 사회·윤리적 변화를 비판적으로 읽어내고 새로운 가치를 설계할 수 있는 인재. 이는 에듀테크 기업들이 콘텐츠를 설계할 때 단순 기술 습득을 넘어 비판적 사고와 인문학적 프레임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제시한다.

둘째, 대학 간 교육 자원의 공유는 에듀테크 플랫폼의 새로운 활용처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5개 대학이 서로의 강좌를 공유하고 학점을 인정하는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디지털 학습관리시스템(LMS), 실시간 원격 수업 인프라, 학점 뱅킹 시스템 등의 기술적 토대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요구는 곧 대학 교육용 SaaS, 학점 교류 플랫폼, 원격 협업 도구 등 B2B 에듀테크 시장에 새로운 수요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셋째, 디자인 씽킹과 AI를 결합한 프로젝트형 학습은 에듀테크 콘텐츠의 방향성에도 변화를 요구한다. 강의형 콘텐츠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설계·실험하는 학습 경험 중심의 도구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뮬레이션, AI 기반 멘토링, 협업 저작 도구 등과의 결합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확대됐다.

마지막으로, 이번 컨소시엄의 성패는 향후 한국 인문학 교육 패러다임의 방향을 가를 시험대가 될 것이다. 기술과 인문학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는 모델이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느냐는 물음은,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계와 사회 전반이 함께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이다. 5개 대학이 그 해법을 보여줄 수 있을지, 향후 1~2년이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