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예산 385억, 학교에 도착한 뒤의 풍경

지난 4일 충남 아산의 한 초등학교 강당. 140명의 학생들이 조를 나눠 AI 드로잉, 로봇축구, 자율주행 레이싱, 스마트팜 시뮬레이션 등 10개의 프로그램을 오가며 체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외부 강사와 운영진은 분

ohmynews.com 보도 | 1 day ago AI 예산 385억, 학교에 도착한 뒤의 풍경

지난 4일 충남 아산의 한 초등학교 강당. 140명의 학생들이 조를 나눠 AI 드로잉, 로봇축구, 자율주행 레이싱, 스마트팜 시뮬레이션 등 10개의 프로그램을 오가며 체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외부 강사와 운영진은 분주하게 움직였고, 태블릿과 로봇 장비가 강당 구석구석에 배치됐다. 한 학교의 체험행사 치고는 이례적으로 큰 규모였다. 현장을 찾은 기자가 담당 교사에게 준비 과정을 묻자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저희는 신청만 했어요." 프로그램 기획부터 장비 구입, 강사 섭외까지 학교가 직접 나서야 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이 학교는 신청서 한 장을 제출했을 뿐이었다. 교육청 직속기관이 프로그램과 장비, 인력을 갖춘 채 학교로 찾아온 것이다.

이 장면은 최근 급속도로 확산되는 AI 교육 정책의 단면을 보여준다. 교육부는 지난 3월 전국 1141개교를 '인공지능(AI) 중점학교'로 선정하고, 2026년부터 3년간 총 385억 원의 특별교부금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학교당 단순 계산으로 약 3400만 원 규모다. AI 중점학교로 지정되면 초등학교는 정보 관련 교육 시간을 기존 34시간에서 68시간 이상으로, 중학교는 68시간에서 102시간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융합 교육과정 운영과 AI 윤리교육, 교원 전문성 강화, 지역사회 연계 역할까지 요구된다. 교육부는 이 같은 학교를 2027년 1500개교, 2028년 2000개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문제는 예산이 학교에 도착한 다음부터다. 담당 교사는 지원금을 받아 계획을 세우고, 프로그램과 업체를 알아보고, 강사를 섭외해야 한다. 물품 구입과 계약 절차를 밟고 학급 일정을 조정하며 공간을 마련하고 기기를 설치한다. 사업이 끝나면 예산 정산과 운영 결과 보고까지 마쳐야 한다. 교육부가 AI 중점학교에 요구하는 교육과정 운영, 교원 연수, 학생 체험활동, 지역 확산은 모두 결국 '누군가의 업무'가 된다. 정책 자료에는 3400만 원의 지원이 기록되지만, 그 돈을 실제 교육으로 전환하는 교사의 시간과 노력은 예산서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신창초등학교에서 확인한 '찾아가는 AI·SW 체험교실'은 이런 학교의 부담을 덜어주는 또 다른 방식이다. 충남교육청교육과정평가정보원이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은 올해 총 42건이 접수돼 13건이 선정됐다. 9월부터 11월까지 학교로 직접 찾아가거나 지역 거점에서 운영되며, 참가 예정 인원만 약 1만 명에 달한다. 학생뿐 아니라 지역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포함되어 있다. 핵심은 개별 학교가 장비를 갖추고 교사가 프로그램을 새로 개발하는 대신, 교육청과 직속기관이 보유한 인력·장비·프로그램을 여러 학교가 공동 활용하도록 지원한다는 점이다.

AI 교육 확대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학교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누가 함께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중요해지고 있다. AI 중점학교처럼 학교가 교육과정을 직접 설계해야 하는 영역이 있는 반면, 고가의 장비와 다수의 인력, 복잡한 운영이 필요한 체험교육은 전문기관이 지원하는 편이 효율적일 수 있다. 모든 AI 교육을 학교 단위 사업으로 해결하려는 접근은 담당 교사의 업무 과중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학교의 역량과 여건에 따라 교육 격차를 키울 위험도 있다.

교육격차 해소라는 측면에서도 지원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AI 교육의 기회를 넓힌다는 것은 모든 학교에 동일한 예산을 지원하는 것 이상의 일이다. 어느 학교에 다니든 학생이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경험하도록 공공의 교육 자원을 나누는 방식이 더 실질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교육청이 가진 전문성과 인프라를 활용해 학교로 찾아가는 서비스형 교육 모델은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소규모 학교나 농어촌 학교에 특히 유용하다.

최근 에듀테크 업계의 화두는 '학교 현장 안착'이다. 정부가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추진하고 각 시도교육청이 AI 교육 인프라를 확충하면서, 기술 공급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 수업에서 교사가 활용할 수 있는 지원 체계와 학교의 행정 부담을 덜어주는 운영 모델이 함께 갖춰져야 기술이 교육 효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신창초등학교의 사례는 에듀테크 기업과 교육청이 협력해 학교를 지원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도 보여준다. 일회성 장비 납품이나 콘텐츠 제공을 넘어, 프로그램 운영과 인력 파견, 행정 지원을 포함한 토탈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AI 교육이 일회성 체험에 머물지 않고 교육과정 안에 자리 잡으려면 학교 자체의 교육과정 설계와 교사의 전문성이 필수적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학교가 떠안게 해서는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학교에 무엇을 더 줄 것인가와 함께, 무엇을 덜 맡길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예산이 나왔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예산이 학교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느냐다. 신창초 강당에서 확인한 것은 새로운 로봇이나 화려한 AI 기술이 아니라, 교육청이 학교를 지원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AI 교육 정책이 확대될수록 이 '또 하나의 방식'이 더 많은 학교에, 더 다양한 형태로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