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교실, 생성형 AI 앞에 선 채 ‘혼란의 벽’에 부딪히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미국 최대 두 학군이 새 학기를 앞두고 생성형 AI 사용을 전면 제한하는 초강수를 두자 전국 교실이 술렁이고 있다. 콜로라도주 덴버 공립학교는 챗GPT를 전면 금지하는 대신 교육용 AI 플랫폼

usatoday.com 보도 | 2 days ago 미국의 교실, 생성형 AI 앞에 선 채 ‘혼란의 벽’에 부딪히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미국 최대 두 학군이 새 학기를 앞두고 생성형 AI 사용을 전면 제한하는 초강수를 두자 전국 교실이 술렁이고 있다. 콜로라도주 덴버 공립학교는 챗GPT를 전면 금지하는 대신 교육용 AI 플랫폼 매직스쿨(MagicSchool)은 허용하는 이중적 잣대를 적용한다. 같은 교실에서도 학생이 스마트폰으로 챗GPT를 켜는 순간 ‘부정행위자’가 되고, 교사가 승인한 교육용 AI에 접속하는 순간 ‘선도적 학습자’가 되는 아이러니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전역이 주마다, 심지어 학군마다 제각각인 AI 규제의 모자이크 속에서 교육 현장은 ‘이 도구를 쓰는 것이 과연 배움인가, 속임수인가’라는 근본적 질문 앞에 서 있다.

이번 조치의 발단은 뉴욕시의 조란 맘다니 시장이 지난 2일 발표한 ‘생성형 AI 유예(moratorium)’ 정책이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챗GPT 등 일반 생성형 AI 도구 사용을 전면 중단하고, 고등학생 중 5%에게만 5개 파일럿 프로그램을 허용하는 내용이 골자다. 모든 고등학생에게는 AI 리터러시 수업을 의무화해 ‘AI에 의존하기 전에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가르치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맘다니 시장은 “기술 산업은 AI 기반 조기 교육이 불가피하고 필수적이라고 믿게 만들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불과 이틀 뒤인 3일, 로스앤젤레스 통합학군도 모든 학생의 학군 기기 내 AI 사용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2024년 이 학군이 자랑스럽게 공개했던 ‘선구적’ 생성형 AI 챗봇 ‘에드(Ed)’의 참패와 무관치 않다. 개인화된 연습 문제를 제공하고 가족과 모국어로 소통하겠다며 야심 차게 출범했던 에드는 협력사와의 내홍 속에 몇 달 만에 서비스가 중단된 바 있다.

이처럼 거대 학군들이 AI를 외면하는 선택을 한 배경에는 ‘무엇이 옳은지 아무도 모른다’는 교육계의 근본적 불안이 자리한다. 스탠퍼드대 생성형 AI 교육 허브의 크리스 아그뉴 소장은 “학군이 가이드라인을 만들 때 물어야 할 질문은 AI가 학습 성과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무조건적인 금지는 해답이 아닐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제시하는 프레임은 명확하다. “젊은이들에게 어떤 역량을 길러줄 것인가, 그 역량을 키우는 학습 경험은 무엇인가, AI가 그 경험을 돕는지 방해하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교육적 설계보다 기술에 대한 공포가 규제를 앞서가고 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주(state)마다, 학군마다 다른 ‘AI 규제 패치워크’다.

더 큰 혼란을 부추기는 것은 교육용 AI와 일반 상용 AI 간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덴버의 사례처럼 일부 학군은 매직스쿨 같은 교육 특화 플랫폼을 허용하면서 정작 학생들이 손쉽게 접근하는 챗GPT는 금지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인다. 한 6학년 수학 교사는 “교실에서 매일 어떤 식으로든 AI를 사용한다”고 말하지만, 그가 사용하는 도구와 학생이 폰으로 쓰는 도구가 어떻게 다른지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교육청은 많지 않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AI를 활용해 수업 계획을 세우고 학부모와 소통하는 데는 긍정적이면서도, 학생의 과제 제출물에 AI가 개입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 곧바로 부정행위로 간주하는 이중 잣대가 팽배하다. 에세이 첨삭을 위해 AI를 쓰는 것은 지도인가, 대필인가. 수학 개념을 설명받는 것은 학습인가, 회피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규제만 앞서 가는 셈이다.

이번 미국의 혼란은 한국 에듀테크 업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은 2025년부터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추진하며 세계적으로도 가장 적극적인 AI 교육 정책을 펼치는 국가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미국의 사례가 보여주듯, 기술 도입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평가 체계의 재설계’다. AI가 숙제를 대신 해주는 시대에 결과물만으로 학생의 역량을 평가하는 기존 방식은 곧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문제 풀이 과정에서의 사고력, AI와 협업하는 능력, 산출물에 대한 비판적 검증력이 새로운 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또한 뉴욕시가 채택한 ‘AI 리터러시 의무 교육’은 한국 교육과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히 AI 도구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AI가 생성한 정보의 신뢰성을 판별하고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인식하는 비판적 사고 교육이 보다 근본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앞둔 한국이 미국의 혼란을 ‘구경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덴버가 교육용 AI는 허용하면서 챗GPT를 금지한 선택은, 규제의 초점이 ‘도구의 종류’가 아니라 ‘학습 목표와의 정합성’에 맞춰져야 함을 방증한다. 뉴욕과 LA의 전면 금지가 기술 발전의 흐름을 거스르는 후퇴인지, 학생 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지는 시간이 지나야 판가름 날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AI를 둘러싼 교육 정책이 더 이상 ‘기술 부서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철학의 문제’로 격상됐다는 점이다. 어떤 도구를 쓰고 말 것이냐가 아니라, AI 시대에 어떤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라는 질문에 한국 교육계도 답을 찾아야 할 때다. 무작정 금지하는 것도, 무비판적으로 도입하는 것도 아닌 제3의 길—학습 목표를 정점에 두고 AI의 역할을 설계하는 접근—만이 혼란을 넘어선 교육 혁신의 유일한 통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