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교실 혁명, 정책 해커톤에서 답을 찾다
"질문은 함께, 해법은 우리 손으로." 한국교원대학교 교원연수관에 걸린 이 문구는 9월 5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AI 시대 교육대전환 정책 해커톤'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정부가 정책을 만들고 현장에 하달하는
ohmynews.com 보도 | 1 day ago AI 교실 혁명, 정책 해커톤에서 답을 찾다
"질문은 함께, 해법은 우리 손으로." 한국교원대학교 교원연수관에 걸린 이 문구는 9월 5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AI 시대 교육대전환 정책 해커톤'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정부가 정책을 만들고 현장에 하달하는 기존 방식 대신, 교사와 정책 전문가, 연구자, 에듀테크 관계자 약 200명이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정책 대안을 만드는 참여형 설계 모델이 시도된 것이다. 이 행사는 AI 시대 학교 교육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현장의 고민이 정책 언어로 승화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번 해커톤은 기조강연과 오픈스페이스 토론, 전문가 멘토링, 정책 제안서 작성과 발표로 이어지는 구조로 짜였다. 첫날 기조강연에 나선 세 전문가는 서로 다른 시선으로 AI 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안승문 전 국가교육위원회 AI시대교육특별위원장은 기술적 활용을 넘어 지구촌 변화 속에서 한국 교육이 나아갈 큰 지도를 펼쳤고, 이민석 국민대 교수는 "AI 시대 교육의 혁명이 필요하다"며 학교의 기본 구조 자체를 재질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벽 교수는 1967년 산업화, 1997년 정보화에 이어 2027년 AI화를 또 하나의 변곡점으로 보고, 교육이 '지식 기반'에서 '지혜 기반'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이터에서 정보, 지식, 직관을 거쳐 지혜로 이어지는 계단은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보다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하며 의미를 만드는 인간 고유의 역량이 중요해졌음을 시사했다.
흥미로운 점은 토론 방식이었다. 참가자들은 전문가의 설명을 듣는 수동적 청중이 아니었다. 각자 현장에서 느낀 문제를 포스트잇에 적고,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의제를 만들었다. 교사는 교실 경험을, 정책 담당자는 제도적 언어를, 연구자는 학술적 관점을 보태며 포스트잇 하나가 질문이 되고 토론을 거쳐 정책 제안으로 발전했다. 공식 일정이 오후 9시에 끝났지만 여러 모둠이 밤 11시까지 남아 문장 하나를 놓고 토론을 이어갔다는 대목은 이 문제에 대한 참가자들의 진지함을 방증한다.
둘째 날 발표에서는 'AI 쓰지 마'라는 통제에서 'AI와 어떻게 협력할까'라는 질문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현장의 목소리가 구체적 정책안으로 드러났다. 한 모둠은 AI가 학생보다 더 매끄러운 글을 쓰는 시대에 결과물 평가가 가능한지 문제를 제기하며, 학생이 AI의 답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근거를 설명하는 과정을 평가하자고 제안했다. 정답 중심 평가에서 논증과 질문, AI 활용 기록까지 정답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는 과정중심 평가로의 전환을 요구한 것이다. 또 다른 모둠은 'AI-NETS'라는 이름으로 학생 학습 데이터를 활용한 진단과 맞춤형 지원을 결합하되, 마지막 단계에서 교사가 AI 생성 기록을 검토해 승인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AI가 교사의 행정 업무를 덜어주면서도 학생 성장 정보를 더 촘촘하게 파악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가장 눈길을 끈 제안은 교원 AI 역량을 단계적으로 인증하는 'AI교원자격인증제(EACC)'였다. 예비교원부터 현직교원까지 AI 역량 수준을 몇 단계로 나누고, 일정한 연수와 실천을 마친 교사에게 자격을 부여해 인센티브와 연계하는 방식이다. 이는 AI 연수를 일회성 이수로 그치게 하지 않고 교사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학생 측면에서는 '학교급별 디지털·AI 최소 수행역량 보장' 제안이 나왔다. 초등학교에서는 로그인·타자·파일 저장 같은 기초 능력, 중학교에서는 클라우드와 공동문서 활용, 고등학교에서는 비판적 AI 활용으로 이어지는 성장 구조를 만들어, 시험과 서열화가 아니라 모든 학생이 AI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공교육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한 14모둠은 '교사의 AI 연수 혁신'을 제안했다. 현재 AI 연수가 새 기능을 소개하는 데 치우쳤고, 교과와 학교급, 숙련도가 다른데도 획일적으로 제공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 모둠은 연수의 방향을 'AI를 배우는 연수'에서 'AI 시대에 가르치는 법을 배우는 연수'로 전환하고, 국가 수준의 교원 AI 교육역량 표준과 교과·학교급·숙련도에 따른 선택형 연수, 강의실 연수보다 교실 적용을 강조한 '30% 연수+70% 실천' 모델을 제안했다. 이는 교육부가 추진 중인 교원 디지털 역량 강화 정책과도 맞닿아 있어, 현장의 목소리가 실제 정책 설계에 반영될 가능성을 높인다.
이번 해커톤이 에듀테크 업계에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첫째, AI 교육 정책의 방향이 기술 도입에서 교사의 수업 설계 역량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AI 도구를 소개하는 데 그치는 에듀테크 기업의 접근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교사가 AI를 활용해 수업을 재설계하고 학생의 사고 과정을 평가하는 방식을 지원하는 솔루션이 필요하다. 둘째, 과정중심 평가와 AI 활용 기록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학습자의 문제 해결 과정을 추적하고 분석하는 러닝 애널리틱스 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셋째, 교사 연수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일회성 특강 대신 교사의 숙련도를 진단하고 단계별 성장을 지원하는 장기적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질문은 함께, 해법은 우리 손으로'라는 구호는 단순한 행사 슬로건을 넘어, AI 시대 교육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교실의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교사 자신이며, 정책은 그들의 고민을 담을 때 비로소 현장에서 살아 움직인다. 이번 해커톤에서 나온 제안들이 실제 정책으로 구현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정책과 현장이 만나는 새로운 시도가 시작됐다는 점, 그리고 AI를 두려워하거나 금지하는 대신 협력하는 방법을 교사 스스로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한국 교육의 미래를 밝게 하는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