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pl.co.kr 보도 | 3 days ago
일본의 선택에서 읽는 에듀테크의 방향키: 가르칠 것은 가르치되, 맡길 것은 가르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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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선택에서 읽는 에듀테크의 방향키: 가르칠 것은 가르치되, 맡길 것은 가르치지 않는다
한국 교육계에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일본 문부과학성이 2030년을 목표로 내놓은 새로운 교육과정 개편 초안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생성형 AI의 특성과 한계를 가르치는 ‘AI 리터러시’ 교육을 국가 교육과정에 공식 도입하는 동시에, 정작 국가가 검정하는 디지털 교과서에는 게임·만화 등 오락적 요소를 제한하고 생성형 AI 기능 탑재에 초강수를 두는 ‘이중 전략’을 택했다. 학생들의 AI 활용 능력을 키우는 것과, 기술이 교육의 본질을 잠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판단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 도입의 속도 조절을 넘어, 에듀테크 생태계의 가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본식 해법으로 읽힌다.
일본 문부과학성 산하 교과서 심의기구가 최근 제시한 디지털 교과서 검정 기준 초안의 골자는 명확하다. 과학 실험 절차를 보여주는 영상, 가정과 조리 과정, 외국어 발음 음성, 고전 작품 속 의복과 풍경을 보여주는 영상처럼 종이책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콘텐츠는 디지털 교과서의 일부로 적극 인정한다는 것이다. 반면 오락성이 강한 게임과 만화, 방대한 백과사전식 자료, 단순 반복 연습문제, 글과 정지화면 내용을 반복 설명하는 영상은 제한 대상에 포함시켰다. 영상 콘텐츠의 전체 수량에도 상한을 두는 방안이 검토되는 등 ‘디지털 때문에 학습 효과가 떨어지는 경우’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특히 생성형 AI 기능을 디지털 교과서에 직접 탑재하는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한다. AI가 생성하는 정보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국가 검정 교과서에서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국가적 책임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기술적 유연성을 분리해서 사고하는 셈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학생 대상 AI 교육은 대폭 확대된다. NHK가 보도한 중앙교육심의회의 차기 교육과정 개편 논의에 따르면 초등학교는 3학년 이상의 ‘종합적 학습의 시간’에 새로운 ‘정보 영역’을 신설한다. 학생들은 이 시간에 기본적인 데이터 정리와 미디어 리터러시, 생성형 AI의 특성과 한계를 배우게 된다. 프로그래밍과 로봇 조작 등 정보기술 활용 교육도 강화된다. 중학교는 현재의 정보·기술 관련 교육을 확대한 새로운 ‘정보·기술과’를 신설하고 수업시수도 크게 늘린다. 학생들은 AI를 활용한 간단한 애플리케이션 제작부터 허위정보의 위험성까지 배우게 된다. 화분에 센서를 설치해 토양이 마르면 알림을 보내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실습이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됐다. 흥미로운 점은 정보교육 확대에도 불구하고 전체 수업시수는 현재의 틀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일본어와 수학 등 기존 교과의 일부 시간을 조정해 정보교육에 배분하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더하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덜어내는’ 구조적 개편을 택한 것이다. 새 교육과정은 2030년도부터 본격 시행되며, 정보교육은 2028년도부터 단계적으로 앞당겨 시행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선택은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라 교육철학의 문제다. NHK가 소개한 학교 현장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생성형 AI를 수업에 활용하는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AI를 왜 사용하는지, 어떤 목적으로 활용하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일부 학생이 과제를 빨리 끝내기 위해 처음부터 AI에 의존하는 사례가 확인됐고,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이 교과서와 자료를 먼저 읽고 자신의 생각을 만든 뒤 AI를 활용해야 한다며 “AI는 답이 아니라 사고의 재료”라고 강조했다. 여름방학 초등학생 대상 AI 체험 프로그램에서도 학생들이 AI가 제시한 답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고쳐 쓰는 과정을 경험하도록 설계했다. AI가 항상 정확하거나 적절한 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확인하게 한 것이다. 일본 정책의 핵심은 ‘AI를 많이 쓰는 교육’이 아니라 ‘AI를 어떻게 쓸지 가르치는 교육’으로 방향을 잡은 데 있다.
이번 일본 사례가 한국 에듀테크 업계에 주는 시사점은 남다르다. 한국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디지털 기초소양과 정보교육을 강화하고, 2025년부터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국회와 현장에서의 논쟁은 주로 ‘도입 시기’와 ‘학교 현장의 수용성’에 집중돼 있고, 정작 교과서에 어떤 콘텐츠가 들어가야 하는지, 생성형 AI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일본이 보여준 ‘교육적 필요성이 확인된 콘텐츠만 국가가 인정하고, 나머지는 학교와 교사의 재량에 맡기는’ 2원화 전략은 한국의 AI 디지털 교과서 정책에 분명한 기준점을 제시한다. AI 교육의 경쟁력은 교실에 얼마나 많은 기술을 집어넣었느냐가 아니라, 학생이 AI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질문하고 판단하며 활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일본은 정책으로 증명하고 있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빠를수록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교육 본연의 질문은 더욱 무거워진다. 일본의 선택은 에듀테크가 나아가야 할 방향키가 기술이 아닌 교육에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