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AI 탈활용'이라는 교육적 역설

생성형 인공지능이 리포트를 대신 쓰고, 코딩을 대신 짜고, 복잡한 판단까지 대신 내려주는 시대. 교육 현장에서 가장 뜨거운 질문은 더 이상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AI가 대신 생각하는 세상에서 인

매일경제 보도 | 1 week ago 생각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AI 탈활용'이라는 교육적 역설

생성형 인공지능이 리포트를 대신 쓰고, 코딩을 대신 짜고, 복잡한 판단까지 대신 내려주는 시대. 교육 현장에서 가장 뜨거운 질문은 더 이상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AI가 대신 생각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사고력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가 최근 출간한 신간 'AI 탈활용 교수법'은 이러한 고민에 대해 하나의 분명한 방향키를 제시한다. AI의 맹목적 사용이 아니라, 인간이 주체적으로 AI 사용의 경계와 조건을 설계하는 '탈활용(un-use)'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이는 단순히 AI를 멀리하라는 기존의 '비사용(no-use)' 논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접근이다. AI가 필연적으로 자리 잡을 미래 사회에서, 우리 교육이 지켜야 할 인간 고유의 인지적 영역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가 이 책의 핵심 골격이다.

박 교수의 진단은 냉철하다. AI가 학습의 전 과정을 대체하는 '학습 외주화(outsourcing)' 현상은 이미 보편화됐다. 과제를 AI에 맡기고 결과물만 제출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문제 해결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와 인지적 갈등이 제거되면서, 뇌과학적으로 학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지적 부채(cognitive debt)'가 누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성적 하락의 문제가 아니다. 복잡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 추론하고 해결책을 도출하는 고차원적 사고 회로가 발달하지 않은 채, AI의 답변에 의존하는 인지적 약물 의존증과도 같은 상태를 야기한다. 박 교수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AI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한 '오프라인 사고 훈련'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디지털 환경이 제공하는 편의를 잠시 차단하고, 오직 자신의 뇌만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경험이 오히려 AI 시대에 더욱 귀중한 능력이 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탈활용'이 무조건적인 사용 금지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 개념은 AI 사용의 '주체성'에 초점을 맞춘다. 즉, 언제 AI를 사용할지, 어떤 문제에 대해 AI의 도움을 받을지, 그리고 AI가 제시한 결과물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검증할지에 대한 의사결정 권한을 교사와 학습자가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순 정보 검색이나 데이터 정리는 AI에 위임하되, 논리적 추론이 필요한 문제 해결이나 창의적 발상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인간의 사고를 우선시하는 수업 설계가 필요하다. 이는 AI를 도구로 보는 기존의 테크노필리아적 접근을 넘어,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극복할 책임을 기술에 전가하지 않겠다는 교육철학의 선언으로 읽힌다.

이러한 논의는 평가 방식의 전면적인 재설계로 이어진다. 현재의 평가 시스템은 AI가 손쉽게 모방할 수 있는 지식 재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 교수는 AI 시대의 평가가 '과정'과 '메타인지'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학생이 어떤 사고 과정을 거쳐 답에 도달했는지, AI의 도움을 받았다면 그 결과물을 자신의 관점에서 얼마나 비판적으로 재구성했는지를 평가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포트폴리오 평가나 구술 시험, 그리고 실시간 토론과 같은 상호작용적 평가 방법의 중요성을 재부각시킨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박 교수가 2024년 저서 '생성 AI 시대 최고의 교수법' 이후 300회 이상의 강연을 통해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를 직접 청취했고, 이번 신간이 이론적 제안이 아닌 실제 수업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실천적 지침서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이 책이 에듀테크 업계에 던지는 시사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교육 기술 시장은 지금까지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학습 성과를 내는 AI 튜터링 시스템 개발에 열을 올려왔다. 그러나 'AI 탈활용 교수법'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기술의 효율성이 인간의 인지 발달을 저해하는 역설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완벽한 튜터'의 이미지가 오히려 학습자의 자기 효능감과 내적 동기를 파괴할 수 있다는 지적은, 에듀테크 기업들이 제품 설계 단계에서부터 '인간의 사고력 보존'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함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앞으로의 에듀테크는 AI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방향보다는, AI가 학습자의 사고를 대체하지 않도록 '인지적 안전장치'를 내장한 설계 철학이 요구될 전망이다. 박 교수가 제안하는 탈활용 개념은 단순히 교수법의 변화가 아니라, 기술 발전의 방향 자체를 인간의 존엄성과 인지적 자율성이라는 가치 아래 재조정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교육 현장의 언어로 옮긴 것이라 할 수 있다. AI의 시대에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AI의 지능이 아니라, AI에 사고를 위임하는 데 익숙해진 인간의 무의식적 타성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