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맞춤수업, 교사 인식과 현장 사이 '나팔바람'
한국 초등학교 교사 10명 중 8명 이상은 인공지능(AI)이 학생 수준에 맞춘 학습자료를 만드는 데 유용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같은 높은 기대와 달리, 실제 AI를 활용해 수업자료를 조정하거나 학생별 맞춤 지원을
edpl.co.kr 보도 | 5 days ago AI 맞춤수업, 교사 인식과 현장 사이 '나팔바람'
한국 초등학교 교사 10명 중 8명 이상은 인공지능(AI)이 학생 수준에 맞춘 학습자료를 만드는 데 유용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같은 높은 기대와 달리, 실제 AI를 활용해 수업자료를 조정하거나 학생별 맞춤 지원을 실천하고 있다는 응답은 40%대에 그쳤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분석한 TALIS 2024 초등 결과는 '인식은 높고 활용은 낮다'는 한국 교실의 AI 도입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KEDI의 황은희 박사가 OECD의 교수·학습 국제조사(TALIS) 2024에 참여한 국내 초등교사 3,123명의 응답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AI가 학생의 학습 진척 모니터링 및 평가에 유용하다는 응답은 86.1%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 협력학습 지원 84.4%, 학생 수준에 맞춘 학습자료 조정 82.7%, 특수교육 학생 지원 78.5%, 수업 설계 및 개선 76.7% 순이었다.
하지만 인식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비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학습 진척 모니터링·평가 활용은 32.2%에 불과했고, 협력학습 지원 44.3%, 학습자료 조정 41.5%, 특수교육 지원은 10.4%에 그쳤다. 수업 설계 개선만이 56.2%로 비교적 높은 활용도를 보였다. 인식과 실제 활용 사이의 괴리는 특히 특수교육 영역에서 극심했다. 특수교육에 대한 AI 유용성 인식 78.5% 대비 실제 활용 10.4%는 TALIS 평균 활용률 42.5%보다 무려 32.1%포인트 낮은 수치로, 한국 교사가 특수교육 영역에서 AI를 거의 활용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AI 활용 경험 자체는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수업이나 학생 학습 지원에 AI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49.0%로 TALIS 평균 36.9%보다 12.1%포인트 높았다. 가장 많이 활용한 분야는 실제 상황과 유사한 실습 지원(63.4%)이었고, 학생·학부모 의사소통(45.0%), 학습 참여·성과 자료 분석(44.1%), 과제 평가(40.4%) 등이 뒤를 이었다. 즉, 교사들이 AI를 활용은 하지만 그 영역이 수업 본질보다는 행정·보조적 업무에 머물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활용을 가로막는 장벽도 뚜렷했다. AI를 활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필요한 지식과 기술 부족'(71.1%)이었고, 'AI로 가르쳐야 한다는 확신 부족'(57.6%), '학교의 디지털 도구·자료 부족'(55.0%), '새로운 기술 적용 부담'(49.0%)이 그 뒤를 이었다. 학교에서 AI 활용을 금지한다는 응답은 5.2%에 불과해, 접근 제한보다는 교사 개인의 역량 부족과 심리적 부담, 학교 인프라 부족이 핵심 장애물로 분석된다.
KEDI의 이쌍철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이 교육과정과 정책을 통해 학생 맞춤형 수업과 창의력·문제해결력 함양을 강조해왔지만, 실제 교실에서는 여전히 교사 중심·내용 전달 중심 수업이 강하다고 진단했다. 학생의 사전 지식과 요구에 맞춰 수업을 조정하는 '적응적 수업 전략'의 종합 실천 정도는 한국 68.0%로 TALIS 평균 87.9%보다 현저히 낮았다. 학생 요구에 따라 다른 학습자료를 제공한다는 응답은 한국 50.8%, TALIS 평균 76.0%였고, 수업 방식을 조정한다는 응답은 한국 52.0%, TALIS 평균 89.9%로 큰 격차를 보였다.
다만 긍정적인 변화도 포착됐다. 학생이 자신의 학습과정을 평가하도록 한다는 응답은 62.3%로 TALIS 평균 56.9%보다 높았고, 2018년 38.1%와 비교해 크게 증가했다. 이는 평가 영역에서 학생 주도적 학습이 확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연구위원은 이러한 현상의 구조적 원인으로 중앙집권적 교육과정과 지필평가 중심 구조, 사실상 자동 진급하는 학년제, 학교장 리더십, 개인 단위 교원연수와 순환전보 등을 제시했다. 그리고 "AI에 대한 높은 기대를 실제 맞춤형 수업으로 연결하려면 기기 보급과 기능 연수를 넘어 교육과정·평가제도, 교사의 수업 자율성, 학교 조직과 업무 여건을 함께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3일 오후 청주오스코에서 한국교육행정학회, 한국교원교육학회 등과 함께 TALIS 2024 초등결과를 논의하는 정책포럼을 개최한다.
에듀테크 업계가 주목할 지점은 '인식과 활용의 괴리'가 단순한 디지털 리터러시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육 시스템의 구조적 특성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다. AI 도구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교사가 수업 설계와 평가에서 실질적 자율성을 갖지 못하면 활용은 '실습 자료 만들기'나 '학부모 연락문 작성' 같은 주변적 업무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국내 에듀테크 기업들은 그동안 'AI 맞춤학습 플랫폼', '자동 평가 시스템' 등 교실 현장에 깊이 개입하는 솔루션을 앞다퉈 출시해왔다. 하지만 이 데이터는 시장이 성숙해질수록 제품의 기술적 완성도보다 더 중요한 변수가 있음을 일깨운다. 교사들이 '내 수업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지 않으면, 어떤 도구도 교실 깊숙이 스며들지 못한다.
결국 정책적 과제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AI 활용 연수를 교원 연수 체계에 의무화하고 '맞춤형 수업 설계' 역량을 평가하는 것이다. 둘째, 지필평가 중심에서 다원적 평가 체제로 전환해 학생별 진도에 맞는 학습이 가능하도록 평가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셋째, 순환전보 주기와 학교 조직 문화를 개선해 특정 학교·학년에 AI 활용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에듀테크 시장이 '도구 경쟁'에서 '수업 혁신의 촉매'로 진화하려면, 개발자와 정책 결정자 모두 교실 안팎의 조건을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번 KEDI 분석에서 분명하게 읽힌다. 기술이 앞서고 시스템이 따라오지 못하는 지금, 한국 교육은 AI 시대에 걸맞은 '교실 문화의 재설계'라는 더 큰 숙제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