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교육청, 12년 통합 계정 ‘펜즈’ 도입…교실 디지털 환경의 판을 바꾸다

교사 한 명이 수십 개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기억해야 하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부산시교육청이 9월 1일부터 부산지역 전체 초·중·고등학교에 클라우드와 생성형 AI를 한 번에 연결하는 통합 로그인 플랫폼 ‘펜즈(P

jeonmae.co.kr 보도 | 1 week ago 부산시교육청, 12년 통합 계정 ‘펜즈’ 도입…교실 디지털 환경의 판을 바꾸다

교사 한 명이 수십 개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기억해야 하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부산시교육청이 9월 1일부터 부산지역 전체 초·중·고등학교에 클라우드와 생성형 AI를 한 번에 연결하는 통합 로그인 플랫폼 ‘펜즈(PENZ)’를 전면 도입한다고 밝혔다. 학생은 입학부터 졸업까지 12년간 단일 계정을 유지할 수 있고, 교직원은 전보 시에도 계정을 그대로 쓸 수 있다. 단순한 로그인 통일을 넘어 학교 디지털 환경의 근본적인 재편이 시작된 것이다.

펜즈는 그동안 학교 현장을 괴롭혀 온 ‘계정 파편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구글 클래스룸, MS 365, 어도비, 캔바 등 교육용 클라우드와 AI 도구마다 별도의 가입과 인증 절차가 필요했던 현실을 한 번의 통합 인증으로 묶어낸 것이다. 부산시교육청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의 학적 정보와 펜즈가 실시간 연동되기 때문에 학생 계정 생성과 진급 처리가 자동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교사가 학년 말마다 일일이 아이디를 발급하고 자료를 백업하던 수고는 이제 시스템이 대신한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12년 계정 일관성’이다. 기존에는 학생이 전학하거나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마다 새 계정을 발급받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학습 기록과 과제, 포트폴리오가 단절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에듀테크 업계에서는 이를 ‘학습 연속성(learning continuity)’ 문제라 부르며, 학생 데이터의 단절이 맞춤형 학습과 학습 분석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해 왔다. 펜즈가 이 문제를 행정 단위에서 해결한 것은 의미가 크다. 데이터가 학생을 따라가는 구조, 이른바 ‘학생 중심 데이터 아키텍처’의 첫 사례가 지역 단위에서 구현된 셈이다.

펜즈의 서비스 범위는 클라우드 로그인을 넘어 생성형 AI까지 포괄한다. 부산시교육청은 “교사와 학생이 안전하게 AI 교육을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고 강조했으며, 김석준 부산시교육감도 “학교 현장의 디지털 도구 접근성을 높이는 계기”라고 말했다. 다만 부산교육연구정보원이 안내하는 서비스 목록에 어떤 AI 모델이 포함되는지, 교육청 차원에서 학습 데이터의 활용 범위와 프라이버시 가드레일은 어떻게 설계됐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공개는 아직 부족해 보인다. 12년간 누적되는 학생 데이터를 다루는 만큼, 정보보호위원회 차원의 안전성 진단과 외부 감사 체계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운영 측면에서도 변화가 엿보인다. 부산교육연구정보원은 시스템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관리자·정보부장 교사·계정 담당자를 대상으로 4차례 맞춤형 설명회를 연다. 학교 현장에서 새로운 도구가 도입될 때 가장 큰 저항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누가 어떻게 관리하느냐’에서 발생한다. 펜즈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 기반이라 부산 소속 교직원·학생만 이용 가능하다는 폐쇄형 구조다. 이 때문에 보안과 데이터 주권 측면에서는 강점이 있지만, 외부 에듀테크 스타트업이 부산 시장에 진입하려면 교육청 승인을 받아야 하는 진입 장벽도 함께 높아진다. 플랫폼과 생태계가 동시에 커질 수 있는 구조인지에 대해서는 향후 검증이 필요하다.

한편 부산시교육청이 ‘펜즈’ 구축을 발표하자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게시판에는 환영 글이 이어졌다. 현장의 기대감이 공식 채널을 통해 자발적으로 표출된 것은 드문 일이다. 교사들이 체감하는 ‘계정 관리 부담’은 그동안 정책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어두운 영역인데, 펜즈가 그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렸기에 가능한 반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에듀테크 업계 관점에서 이 사건은 단순한 지방 교육청의 시스템 도입 뉴스가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학교 디지털 전환은 ‘도구 도입’ 중심이었다. 태블릿 PC, 전자칠판, AI 학습 앱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아이디와 데이터는 더 잘게 쪼개졌다. 펜즈는 이 흐름을 거꾸로 뒤집어 ‘하나의 계정으로 모든 도구를 묶는’ 통합 인증·통합 데이터 구조를 시도했다. 서울시교육청의 ‘나이스 대체 플랫폼’ 논의, 교육부가 추진하는 ‘교육 디지털 전환’ 로드맵과도 맞물리면서, 향후 다른 광역시·도로 교육청이 유사 모델을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펜즈의 진짜 시험대는 9월 1일 개통 이후 얼마나 오래,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영되는가다. 12년이라는 긴 호라이즌을 가진 만큼 시스템의 확장성과 보안 업데이트, 그리고 새로운 에듀테크 서비스와의 연동 속도가 관건이 될 것이다. 부산에서 시작된 ‘한 계정, 12년, 모든 도구’의 실험이 한국 교육 디지털 전환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지, 업계의 시선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