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교실에서 사라지는 '돌봄' — 기술 효율성 너머 교육이 끝까지 지켜야 할 것
인공지능이 학생의 수준을 분석하고, 교사의 행정까지 거드는 시대가 왔지만, 그래서 교육이 더 사람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학습 성취도 위로 정교해지는 알고리즘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한 가지 질문을 더 선명하게 마주하게
ohmynews.com 보도 | 2 days ago AI 시대, 교실에서 사라지는 '돌봄' — 기술 효율성 너머 교육이 끝까지 지켜야 할 것
인공지능이 학생의 수준을 분석하고, 교사의 행정까지 거드는 시대가 왔지만, 그래서 교육이 더 사람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학습 성취도 위로 정교해지는 알고리즘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한 가지 질문을 더 선명하게 마주하게 됐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대신할 수 없는 교육의 자리, 도대체 어디인가.' 심성보 교수의 저서 AI 시대의 돌봄교육학은 그 물음에 '돌봄'이라는 단어로 답을 건넨다.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더 중요해지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약함에 책임 있게 응답하는 힘. 이 책은 돌봄을 개인의 친절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 나아가 민주주의의 사회적 원리로 다시 세운다. 그리고 그 철학을 교실 안팎으로 끌어내려,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실천의 언어로 바꾼다.
책의 출발점은 명확하다. 교육은 지식 전달과 돌봄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학생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믿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내용도 제대로 스며들기 어렵다. 저자는 '아이의 삶과 마음을 외면한 채 지식만 전하는 교육은 온전한 교육이 아니다'라고 못박는다. 이러한 주장은 그동안 한국 교육 현장에서 돌봄이 방과후 서비스나 특별활동의 부속물로 취급돼온 관행을 정면으로 묻는다. 가르침과 돌봄은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성장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셈이다.
저자는 홀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관계 속의 존재로서의 인간을 바라보는 여섯 사상가를 차례로 끌어온다. 존 듀이는 교육을 공동의 경험을 나누고 민주적으로 문제를 푸는 과정으로 본다. 넬 나딩스는 돌봄을 추상적 원칙이 아니라 내 앞에 선 한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에 응답하는 구체적 만남으로 끌어내린다. 미셸 푸코의 '자기 돌봄'은 자신을 지배하는 권력과 규범을 따져보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주체로 서는 과정을 뜻한다. 한나 아렌트는 돌봄을 함께 살 '공통의 세계'를 책임지는 정치 행위로 확장하고,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 앞에서 피할 수 없는 윤리적 책임을 강조한다. 악셀 호네트는 사랑과 권리, 연대로 이어지는 상호 인정을 통해 돌봄을 사회의 구조적 언어로 자리매김한다. 저마다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이들은 사람을 관계의 존재로 본다는 점에서 만난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돌봄은 부드럽고 따뜻한 감성이 아니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불평등한 제도를 바꾸며 무너진 공동체를 다시 세우라고 요구하는 실천이자 정치의 윤리다.
특히 눈여겨볼 지점은 돌봄의 위기를 개별 서비스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진단한다는 점이다. 가족과 공동체가 무너지고, 돌봄이 상품이 되며, 돌봄노동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는 현상이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경쟁을 앞세우는 사회가 가난과 질병, 외로움마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풍토를 비판하면서, '돌봄이 가난해지면 관계와 공동체가 가난해지고, 끝내 민주주의까지 가난해진다'라고 경고한다. 저자가 제시한 캐나다인 강사의 사례는 인상적이다. 6개월 일하고 두 달 여행하는 삶의 방식을 낯설게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공공 돌봄 제도를 신뢰하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는 점을 짚는다. 제도의 완전성보다 제도를 신뢰할 수 있는지가 사람들의 현재 삶을 바꾼다는 통찰은, 한국 사회의 노후 불안과 돌봄 공백을 돌아보는 단초가 된다.
돌봄교육학이 한국 교육 현장에 던지는 가장 현실적인 과제는 '교사의 희생'을 '공동의 책임'으로 전환하라는 요구다. 학교 안에는 학습 부진과 마음의 위기, 장애와 빈곤, 가정의 어려움과 관계 갈등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 모든 무게가 교사 한 사람의 헌신으로 떠안겨지면 돌봄은 곧 소진의 다른 이름이 된다. 저자는 '돌봄교육학이 교사에게 더 많이 희생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라고 분명히 선을 긋고, 학교와 지역사회, 복지·상담·의료기관, 지방정부와 국가가 책임을 나누는 '돌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생맞춤통합지원과 지역사회 통합돌봄 같은 정책을 돌봄교육학의 관점에서 다시 읽어내면서도, 정보 수집과 위험 등급 분류에 머무는 행정 체계는 자칫 학생을 관리와 감시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고 경계한다. 지원 대상이 되기 이전에 자기 삶에 관해 말하고 결정할 권리를 가진 주체라는 인식, 즉 아동의 참여권이 통합지원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책이 최종적으로 그리는 비전은 '돌봄사회'다. 돌봄받는 일이 실패나 수치로 여겨지지 않고, 돌보는 일이 값싼 노동이나 개인의 희생으로 취급되지 않는 사회. 학교는 이러한 돌봄사회를 미리 살아 보고 연습하는 곳이어야 한다. 학생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서로의 고통에 응답하는 시민으로 자라나는 과정 자체가 교실 안의 핵심 학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듀테크의 관점에서 이 책이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AI 맞춤형 학습 솔루션과 학습분석 데이터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것이 학생을 점수와 위험 등급의 데이터로 환원하는 도구로만 작동한다면 교육의 본질을 오히려 위협한다. 기술은 돌봄 없는 교육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학생의 얼굴과 목소리를 더 잘 듣고 관계를 맺도록 돕는 도구로 설계되어야 한다. AI 시대의 교육 경쟁력은 알고리즘의 정밀함이 아니라, 그 기술을 매개로 학생과 교사, 학교와 지역사회가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돌봄교육학이 제시하는 길은 기술과 인간의 영역을 나누는 경계선이 아니라, 기술을 인간다움의 교육 안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연결선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