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교과서보다 빠른 현실…일본 교육과정 개정안이 던지는 시험대

일본 문부과학성이 지난 8월 31일 발표한 차기 학습지도요령(교육과정) 개정안 초안은 정보·기술 교과를 넘어 전 과목에 인공지능(AI) 활용을 확산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그러나 외국어 과목에서 AI를 회화 파트너로

mainichi.jp 보도 | 18 hours ago AI 교과서보다 빠른 현실…일본 교육과정 개정안이 던지는 시험대

일본 문부과학성이 지난 8월 31일 발표한 차기 학습지도요령(교육과정) 개정안 초안은 정보·기술 교과를 넘어 전 과목에 인공지능(AI) 활용을 확산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그러나 외국어 과목에서 AI를 회화 파트너로 적극 활용하라고 권장하면서도, 수학에서는 “AI에 흔들리지 않는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수학적 소양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사회과에서는 “AI를 사용하더라도 최종 판단은 학생 스스로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같은 문서 안에서 AI를 ‘도구’이자 ‘경계 대상’으로 이중적으로 다루는 셈이다. 문부과학성 담당자는 “AI를 현명하게 사용하면 이점이 있지만, 생각 없이 무분별하게 쓰게 둘 수는 없다. 일부 표현은 경고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번 개정안은 단순한 교과 과정 변화가 아니라, AI 시대에 학교 교육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본식 답안이자, 교사들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시험하는 도전장으로 읽힌다.

이번 개정안의 가장 큰 구조적 변화는 중학교의 ‘정보·기술’ 교과와 초등학교의 ‘정보 영역’ 수업 시수를 대폭 늘리면서도, 전체 연간 수업 시수는 유지한 점이다. 즉 다른 과목의 수업 시간을 줄여 새 교과에 배정한 것이다. 문부과학성은 그동안 여러 과목에 분산돼 있던 정보 관련 내용을 새 교과로 통합해, 다른 과목의 교육 내용을 불필요하게 축소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에서는 현재 산수에서 가르치던 프로그래밍과 국어에서 배우던 타자 입력을, 중학교에서는 수학의 데이터 정리·분석과 영상 미디어 활용을 새 과목으로 옮긴다. 이는 정보 교육을 별도의 ‘특별 과목’이 아니라 전 교과의 기반 소양으로 재편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주목할 점은 AI 관련 내용을 학습지도요령 본문이 아닌 ‘해설서’에 담기로 한 결정이다. 문부과학성 담당자는 “학습지도요령이 한 번 개정되는 동안 교과서는 약 세 번 바뀐다. AI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는 본문에 모든 것을 적지 않는다. 수정이 쉬운 해설서에 포함해 지도 내용을 바꾸기 쉽게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학교 교육은 매일 갱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거대한 교육과정 개정 주기(약 10년)와 AI 기술의 혁신 주기(수개월) 사이의 괴리를 현실적으로 인정한 발언이다. 2022년 등장한 챗GPT를 기점으로 AI는 이미 학교 현장에 침투했고, 2030년 이후 새 교육과정이 전면 적용될 시점에는 AI의 진화 수준과 학교에서의 활용 방식, 위험성까지 모두 달라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이를 의식해 ‘본문’보다 유연한 ‘해설서’를 선택했고, 이는 교육과정 설계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사한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시험대는 교사들에게 놓였다. 정보·기술 교과가 아닌 국어나 사회,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들도 AI를 염두에 둔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AI 이해도와 활용 능력이 수업의 질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도쿄의 한 공립 중학교 남성 관리자는 마이니치신문에 “국어와 사회 교사들도 AI를 고려한 수업을 해야 한다. 교사 자신의 AI에 대한 관심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고, 학교에 따라 접근 방식의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교사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교육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일본의 한 연구에 따르면 교사들의 디지털 활용 능력은 연령과 학교급에 따라 편차가 크며, 특히 50대 이상 교사들의 경우 AI를 수업에 통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비율이 높다. 이번 개정안이 성공하려면 교사 연수와 지원 체계가 병행돼야 하지만, 일본 문부과학성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아직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

신슈대학의 사토 카즈노리 준교수는 전직 초등학교 교사이자 중앙교육심의회 작업반 전문 위원으로서 “AI 리터러시를 포함한 정보 활용 능력이 차기 교육과정에 자리 잡은 것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우려를 표했다. AI가 발전할수록 인간 고유의 사고력과 판단력이 더 중요해지는 역설 속에서, 학교가 AI의 단순 사용자가 아니라 비판적 사용자를 길러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는 것이다. 일본의 이번 개정안은 AI를 교육의 ‘주제’가 아니라 교육의 ‘환경’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다. AI 시대의 교육은 더 이상 정보 교과 하나의 몫이 아니며, 모든 교사가 AI의 가능성과 위험을 동시에 이해하고 학생들을 안내해야 한다는 점을 공식화한 셈이다. 한국 교육계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한국은 2025년부터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추진 중이지만, 교사들의 디지털 역량 강화와 교육과정 재설계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일본이 학습지도요령 개정을 통해 보여준 ‘AI의 일상화’와 ‘교사의 재교육’이라는 두 축은, AI 교육이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교육 철학과 교사 전문성의 문제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AI는 교과서처럼 몇 년에 한 번 갱신되는 대상이 아니라, 매일 갱신되어야 하는 교육 현장의 조건이 되었다. 그 조건 앞에서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오른 것은 다름 아닌 교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