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콘퍼런스'는 끝났다…네덜란드서 열리는 '언콘퍼런스'가 던지는 질문

2026년 10월, 네덜란드 브레다(Breda)에서 열리는 한 이색 행사가 유럽 고등교육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브레다 응용과학대학(BUas)과 미국 중앙플로리다대학(UCF)이 공동 주최하는 'Teaching and

media-and-learning.eu 보도 | 2 days ago '듣는 콘퍼런스'는 끝났다…네덜란드서 열리는 '언콘퍼런스'가 던지는 질문

2026년 10월, 네덜란드 브레다(Breda)에서 열리는 한 이색 행사가 유럽 고등교육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브레다 응용과학대학(BUas)과 미국 중앙플로리다대학(UCF)이 공동 주최하는 'Teaching and Learning with AI in Europe'이 그것이다. 이 행사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AI와 교육을 주제로 한다는 점 때문이 아니다. '언콘퍼런스(Unconference)'라는 파격적인 형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약 300명의 대학 관계자, 교수, 연구자, 정책 입안자들이 모여 '유럽 고등교육지역(EHEA)'에서 AI의 역할을 논의하되, 발표를 듣고 끝나는 수동적 참여가 아니라 참가자들이 의제를 직접 만들고 대화를 주도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발표 듣기' 대신 '함께 만들기'… 언콘퍼런스가 선택된 이유

전통적인 학술 콘퍼런스는 연단 위의 발표자와 청중의 수동적 경청이라는 위계적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다. 반면 브레다 행사는 '대화 중심 세션'과 '협업 워크숍'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 이는 AI가 교육 현장에 던지는 질문이 더 이상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과 맞닿아 있다. AI 시대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소수의 전문가가 제시하는 해답이 아니라, 현장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고민하고 실험을 통해 만들어가야 할 '과정'에 가깝다는 것이다.

행사에서 다루는 주제는 교수법, 디지털 학습, 온라인 교육, 학문적 무결성(academic integrity), 교수설계, 평가 방식, AI와 접근성, 그리고 고등교육이 직면한 윤리적·제도적 질문까지 포괄한다. 특히 '학문적 무결성'과 '평가'가 의제에 포함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 전 세계 대학들은 과제 표절과 시험 부정행위라는 기존의 틀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단순히 AI 사용을 금지할 것인지, 아니면 AI를 활용한 학습을 어떻게 공정하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무엇을 위해 교육하는가'…근본적 질문을 던진 오프닝 패널

행사의 오프닝 패널 주제는 '무엇을 위해 교육하는가(What Are We Educating For?)'이다. 브레다 응용과학대학, 옥스퍼드대학의 'AI in Education' 연구 허브, 탐페레 응용과학대학(핀란드)의 연사들이 패널로 참여한다. 이 주제는 AI 기술의 활용법을 논의하기 이전에, 교육의 본질적 목적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지식 전달자로서의 교수자의 역할이 AI로 대체될수록, 고등교육이 길러내야 할 인간의 역량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폐막 기조연설은 오스트리아 FH JOANNEUM 응용과학대학의 비르기트 필립스(Birgit Phillips) 교수가 맡는다. 그녀는 AI 거버넌스(governance)와 AI 리터러시, 그리고 AI가 더 이상 예외가 아닌 일상이 된 세계에 맞춰 고등교육을 재설계하는 방안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필립스 교수의 연설 주제는 AI 기술 자체보다 '제도와 규범의 재정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이 행사가 단순한 도구적 접근을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행사는 미국 대학의 유럽 진출이라는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공동 주최 측인 UCF는 미국 내에서 'AI for All' 이니셔티브를 운영하며 AI 교육 확산에 앞장서 온 기관이다. UCF가 유럽 대학과 손잡고 '유럽판' 행사를 기획한 것은, AI 교육이 더 이상 특정 국가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의제임을 방증한다. 특히 유럽연합(EU)이 AI법(AI Act)을 통해 규제 체계를 선도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 고등교육 현장의 대응을 직접 확인하려는 미국 측의 전략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에듀테크 업계에 주는 의미와 향후 전망

이번 브레다 행사는 에듀테크 업계에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AI 교육 시장이 '도구 공급'에서 '제도 설계'로 무게 중심을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에듀테크 기업들은 AI 튜터링, 자동 채점, 학습 분석 등 기술 기반 솔루션을 앞세워 시장을 공략해 왔다. 그러나 이제 대학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AI를 교육과정에 통합하고 평가 체계를 재설계하며 교수자와 학생의 AI 리터러시를 함양하는 종합적인 컨설팅에 가깝다. 행사의 주제가 '도구 사용법'이 아닌 '거버넌스'와 '교육 목적'에 맞춰진 것은 이러한 수요 변화를 반영한다.

둘째, 언콘퍼런스 형식의 부상은 에듀테크 제품 개발 방식에도 변화를 요구한다. 교사와 교수가 일방적으로 제품을 전달받는 기존의 공급자-소비자 관계가 무너지고, 현장의 니즈가 제품 설계에 직접 반영되는 공동 창조(co-creation) 모델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브레다 행사에서 교수자, 연구자, 정책 입안자들이 함께 의제를 만들고 논의하는 방식은, 에듀테크 기업들이 사용자와 소통하는 방식에도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이 행사가 유럽 고등교육지역(EHEA) 전체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볼로냐 프로세스(Bologna Process)로 대표되는 유럽의 고등교육 통합 노력은 학위 인정, 학생 교류, 질 보장 체계의 공통 기준을 마련해 왔다. AI 시대의 교육 혁신 역시 개별 국가나 대학 차원이 아닌 유럽 차원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이 행사의 배경에 깔려 있다. 이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AI 교육 정책이 개별 대학의 자율적 시도에만 맡겨질 경우, 기관 간 격차와 교육의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6년 10월 브레다에서 열릴 이 행사는 단순한 학술 교류를 넘어, AI 시대 고등교육의 방향을 모색하는 실험의 장이 될 전망이다. '무엇을 위해 교육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은 비단 유럽만의 과제가 아니다. AI가 교육의 풍경을 빠르게 재편하는 지금, 이 질문은 한국의 대학과 에듀테크 업계에도 낯설지 않은 화두다. 브레다에서 시작될 대화의 향방을 지켜보는 것은, AI와 교육의 미래를 고민하는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유효한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