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3강의 꿈, 고교 수학의 빈틈이 흔든다
2028학년도 대입 개편을 앞두고 이공계 교육 현장에 비상등이 켜졌다. 국내 4대 과학기술원의 한 교수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과기원만이라도 신입생 입학 전형에 수학Ⅱ를 반영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했지만 수
sedaily.com 보도 AI 3강의 꿈, 고교 수학의 빈틈이 흔든다
2028학년도 대입 개편을 앞두고 이공계 교육 현장에 비상등이 켜졌다. 국내 4대 과학기술원의 한 교수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과기원만이라도 신입생 입학 전형에 수학Ⅱ를 반영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고 털어놓은 것은 단순한 불만 토로가 아니다. 미적분을 바탕으로 공학의 기초를 가르쳐야 하는 이공계 대학들이 제대로 된 전공 수업 운영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정부가 'AI 3강'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내걸었지만, 정작 그 기반이 되는 수학 교육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문제의 발단은 2028학년도 수능 수학 개편안이다. 현재 수능 수학 선택과목인 미적분과 기하는 새 체계에서 대수, 미적분Ⅰ, 확률과 통계만 출제되면서 사실상 수능 범위에서 사라진다. 수열의 극한과 다양한 함수의 미분·적분을 다루는 미적분Ⅱ와 이차곡선·공간도형·벡터를 포함한 기하는 더 이상 수능 출제 범위에 들지 못한다. 물론 미적분Ⅰ이 남아 있어 미적분의 완전한 소멸은 아니지만, 문제는 선택과목의 위상이 사라진다는 데 있다. 수능에 출제되지 않는 과목은 아무리 전공 공부에 필수적이라 해도 학생들이 이수할 유인이 급격히 떨어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수능 출제 범위에서 빠진 과목들의 이수율이 급감한 선례는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이런 상황에 일부 상위권 대학의 입학 전형 담당자와 이공계 교수들은 전공 공부에 필요한 고등학교 심화 과목을 대입 전형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방안을 교육 당국에 제안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최근 과기원만이라도 대입에서 심화수학을 반영하는 방안을 교육 당국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정통부는 올 4월 '인공지능(AI) 시대, 이공계 인재의 기초학력 위기 진단 및 역량 강화 방안 마련' 연구용역을 공고하고 고교 수학·과학 과목 이수와 대학 신입생의 기초학력 및 학업 성취 사이의 관계를 조사 중이다. 고등학교 심화 과목 이수의 필요성을 실증적으로 검토하고 대학의 기초학력 보완 방안까지 제안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다. 대입 제도는 학생과 학교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수년 전에 확정되는 구조라 전형 체계를 단기간에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교육 당국 역시 대입에서 심화수학의 영향력이 커지면 학생들의 학습 부담과 사교육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놓지 못하고 있다. 대학별 반영 확대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교육 과열에 대한 교육 당국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입시 정책이 수년 전 미리 결정되는 만큼 지금 와서 제도를 개선하기 어렵다는 점도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AI 3강'이라는 목표 앞에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정부가 내건 AI 3강은 단순히 AI 기술을 활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AI 모델과 알고리즘,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는 원천 기술 인재가 있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목표다. 그리고 그 인재 양성의 바탕에는 미적분과 선형대수, 확률·통계 등 수학이 자리한다. AI 분야뿐 아니라 양자, 우주 등 AI 이후 선점해야 할 기술 시장의 인재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고등학교에서 덜 배운 수학을 대학에 와서 다시 가르치면서 수만 명의 첨단 인재를 신속히 양성하겠다는 정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초 학력의 공백을 대학이 메워야 하는 구조는 결코 효율적이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이번 논의는 단순한 입시 제도의 문제를 넘어 한국 에듀테크 생태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과 수리적 사고력을 겸비한 융합 인재다. 그런데 정작 그 토대가 되는 수학 교육이 흔들리면, AI 교육 콘텐츠와 플랫폼을 개발하는 에듀테크 기업들의 시장 전망에도 먹구름이 드리울 수밖에 없다. 수학 기초 학력이 약화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정교한 AI 튜터링 시스템이 도입된다 해도 그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보면, 이는 에듀테크 기업들에게 고교 심화 수학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적응형 학습 솔루션 개발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개인별 학습 수준에 맞춰 미적분과 기하의 빈틈을 메워줄 수 있는 AI 기반 교육 서비스의 수요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와 과기정통부가 서둘러 한자리에 앉아 현행 제도를 보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단순히 입시 제도를 손질하는 차원을 넘어, AI 시대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과제로 인식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교 교육과정과 대학 교육의 연계성을 강화하고, 수학 기초 학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그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에듀테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업계의 고민과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