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는 있는데 수업은 없다"—교실에 묵은 AI 교구, 누가 깨우나
"장비는 있는데 수업은 없다"—교실에 묵은 AI 교구, 누가 깨우나
aicec.kr 보도
"장비는 있는데 수업은 없다"—교실에 묵은 AI 교구, 누가 깨우나
한국 교실의 AI 교육은 '도입'에 머물러 있다. 전국 11,925개교 중 AI 교육에 참여하는 학교는 3,307곳으로 27.7%에 불과하고, 교육부는 2028년까지 AI 중점학교 2,000교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수치는 성장통의 진전처럼 읽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보유한 교구를 어떻게 수업에 녹여낼지' 묻는 목소리가 더 크다. 에듀테크 기업 AICEC가 최근 공개한 교원연수 프로그램은 이 현장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도구 소개형 특강이 아니라 학교가 이미 갖고 있는 장비를 실제로 굴리는 연수, 그 설계의 핵심을 짚어봤다.
보유 교구를 '방치 교구'에서 '수업 교구'로
AICEC가 제시한 진단은 단순명료하다. 학교가 AI·SW 장비를 사놓고도 정작 이를 수업에 활용하지 못하는 현상이 만성적이라는 점이다. 연수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불만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신규 장비 도입은 예산을 받으면 되지만, 도입 이후 '누가, 어떻게' 수업을 짤 것인가는 별개의 과제다. AICEC는 여기에 대해 연수 전에 학교가 보유한 교구를 사전 조사한 뒤, 해당 장비를 실제로 구동하는 교과 수업안을 설계해 돌려주는 방식을 채택했다. 강사가 도구를 소개하는 시간에 그치지 않고, 산출물로 '교과 수업안·학생 활동지·평가 루브릭'을 남긴다. 교육이 끝난 뒤에도 학교에 결과물이 남아야 한다는 발상이 연수의 출발선이다.
두 트랙, 한 가지 목표—격차를 줄이다
연수 프로그램의 뼈대는 '트랙 1(활용 역량)'과 '트랙 2(지도 역량)'의 이원 구조다. 트랙 1은 4~15시간 분량으로 전 교사를 대상으로 AI 활용 역량을 다룬다. 교과 수업안 작성, 활동지 설계, 평가 루브릭 제작에 AI를 적극 쓰는 법을 가르친다. 동시에 학급 AI 사용 규칙을 함께 다뤄, 수행평가에서 AI 활용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기준을 세우도록 돕는다. 트랙 2는 15~30시간 분량으로 담당 교사를 대상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보유 교구 실습 운영법, 수준별 지도, 제조사 무관 타사 교구 대응까지 다룬다. 트랙 2 수료 교사는 SW·AI 수업을 외부 강사 없이 직접 진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
이런 이원 설계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학교 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거론되는 문제, 그것은 'AI 활용 역량의 교사 간 격차'다. 모든 교사에게 동일한 강도를 요구하면 소수의 적극적 활용 교사와 다수의 정체 교사가 동시에 양산된다. AICEC는 연수 대상자 선정 단계에서부터 트랙을 분리하고, 각 트랙의 산출물을 명확히 구분했다. 격차의 원인을 '의지의 문제'가 아닌 '역할의 문제'로 보는 관점이다. 행정 업무에 AI를 적극 도입하길 원하는 교사는 트랙 1만, 실제 수업에서 SW·AI를 지도해야 하는 교사는 트랙 2까지 이수한다. 교육청·연수원·학교(전문적학습공동체) 단위로 맞춤 제안서를 보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단일 강좌가 아닌, 조직 단위의 설계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성과를 숫자로 점검하면, 직접 운영 실적 24건, 안동 초등교원캠프 트랙 1 운영, 경주정보고와의 AI 통합 교육과정 협약 체결(2026년 3월), 경북SW고 AI 해커톤 운영 사례가 대표적이다. 공급자 입장의 자기 소개가 아니라, 이 프로그램이 실제로 어떤 형태의 연수적 결합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에듀테크 시장의 좌표는 '도구'에서 '설계'로
이 사례가 한국 에듀테크 업계에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그동안 에듀테크 시장의 성장은 '도구 도입'의 폭으로 측정됐다. 하지만 교육부의 AI 중점학교 2,000교 목표, 학교 단위 AI 교육 참여율 27.7%라는 수치는 시장이 이제 '도구가 담긴 수업을 짜는 법'의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AI 활용 역량의 교사 간 격차, 도구 소개형 특강이 실제 수업 설계로 이어지지 않는 단절, 학교 보유 교구의 방치—이 세 가지 장벽은 결국 같은 뿌리에서 뻗는다. 도구를 사들인 시기에 비해, 그 도구를 굴릴 '수업 운영 설계'가 더디다는 점이다.
AICEC의 접근은 이 격차를 좁히려는 시도다. 연수 산출물을 수업안·활동지·루브릭으로 구체화하고, 학교 보유 교구를 사전 조사해 맞춤 설계한다는 발상은 결국 '에듀테크의 평가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업계 전체의 화두와 맞닿아 있다. 도구의 사용자 수, 계약 학교 수 같은 양적 지표가 중요하지만, 정작 그 도구가 수업 안에서 몇 번 작동했느냐를 보여주는 지표는 아직 미성숙하다. 향후 시장이 주목해야 할 KPI는 '도구가 교실에서 몇 회 가동됐는지', '교사 한 명이 한 학기에 몇 개의 AI 통합 수업을 설계했는지'와 같은 수업 단위의 결과값이다.
더 나아가 학급 AI 사용 규칙과 평가 루브릭을 연수 패키지에 함께 넣은 점도 눈에 띈다. AI를 수업에 도입하는 일이 기술 습득에 그치지 않고, 평가의 정의와 학생의 학습 윤리까지 재정의하는 일임을 인식시켰기 때문이다. 트랙 2를 마친 교사가 외부 강사 없이 SW·AI 수업을 운영할 수 있다는 표현은, 곧 교사가 AI 수업의 설계자이자 운영자임을 뜻한다. 도구를 산 학교가 주인이 되어야 비로소 교실이 채워진다. 이 모순을 풀어가려는 시도들이 향후 에듀테크 시장의 다음 성장축을 가리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