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전 과목 AI 활용체계 만든다…교육과정 전면 재설계

“교수들이 아는 것만 가르치면 학생들은 교육을 버리게 된다.” 배충식 KAIST 총장이 24일 서울 종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던진 이 한마디는 단순한 위기론이 아니라 교육 패러다임 전환의 선언으로 읽힌다. KAI

yna.co.kr 보도 KAIST, 전 과목 AI 활용체계 만든다…교육과정 전면 재설계

“교수들이 아는 것만 가르치면 학생들은 교육을 버리게 된다.” 배충식 KAIST 총장이 24일 서울 종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던진 이 한마디는 단순한 위기론이 아니라 교육 패러다임 전환의 선언으로 읽힌다. KAIST가 내년 1학기까지 전 교과목에 AI 활용체계를 정립하는 교육개혁에 착수한다.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교육과정의 설계 원리로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다. ‘AI 프리’에서 시작해 ‘AI 활용’, 나아가 ‘AI 설계’로 이어지는 3단계 교육 체계는 국내 고등교육 기관 중 가장 과감한 시도로 평가된다.

배 총장은 취임식에서 발표한 5대 혁신 전략(AI를 넘어 모두의 AI, 혁신적 연구·창업, 효율적이고 열린 대학, 친환경과 지속가능성, 세계로 미래로)을 교육·연구·창업·행정·캠퍼스·국제화 전반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교육 부문에서 ‘모두의 AI’를 모든 학생과 연구자의 공통 역량으로 규정한 점이 눈에 띈다. 이는 AI 전공자뿐 아니라 인문사회·예술·경영 등 비이공계 학생들까지 AI 리터러시를 필수 소양으로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KAIST는 인문학과 기초과학의 기반 위에 AI 원리와 응용을 얹는 방식으로 교육과정을 재설계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교육개혁의 핵심은 ‘3단계 AI 교육 모델’이다. 1단계는 AI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 고유의 사고력과 기초 역량을 기르는 ‘AI 프리’ 교육이다. 배 총장은 인문사회 소양과 기초과학 주체성을 갖춰야 AI 시대를 주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단계는 AI를 적극 활용하는 교육으로, 전공 구분 없이 AI 도구를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단계다. 3단계는 AI를 직접 설계하고 주도하는 교육으로, AI 원천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3단계가 학년별·전공별로 단계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라는 점에서 기존의 ‘AI 교양 필수과목 신설’과는 차원이 다르다.

KAIST의 이번 조치는 국내 에듀테크 생태계에 여러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대학 교육과정 자체가 AI를 전제로 재설계된다는 점에서 에듀테크 기업들의 타깃이 ‘보조 도구 시장’에서 ‘교육과정 설계 시장’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AI 프리’ 교육의 도입은 AI 의존도를 경계하는 교육적 실험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AI 활용을 늘리는 방향과는 다른 접근법을 보여준다. 셋째, 입학부터 창업교육을 시작하겠다는 발표는 대학이 단순 지식 전달 기관을 넘어 창업 생태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연구와 창업 부문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KAIST는 AI 원천기술과 첨단 제조, 피지컬 AI 연구를 확대하고 산업과 사회 혁신으로 이어지는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기업의 위성연구실과 공동연구센터 유치를 확대하고, 기업과 함께 AI 자율랩을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창업교육은 신입생부터 대학원생까지 교육 스펙트럼을 정리해, 학자·연구자·산업 역군과 함께 창업을 하나의 진로로 인식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연구 성과가 곧 창업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대학원 교육 단계에서부터 주입하겠다는 것이다.

행정 부문에서도 AI를 활용한 디지털 원스톱 시스템 구축과 인사 절차 간소화를 예고했다. 이는 대학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AI 기술이 실제 행정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될 전망이다. 또한 기후와 에너지 분야에서 에너지 사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다른 대학이나 기관이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친환경 캠퍼스’를 만들겠다는 구상도 포함됐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AI 프리’ 교육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될지, 교수진의 AI 활용 역량이 충분한지, 전 교과목 AI 활용체계 정립이 형식적인 문서 작업에 그치지 않을지 등이 관건이다. 배 총장은 “KAIST가 세계 최고 대학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학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일정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상황이다.

KAIST의 교육과정 전면 재설계는 국내 대학 교육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AI 기술이 단순히 강의실의 보조 수단을 넘어 교육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특히 ‘AI를 넘어 모두의 AI’라는 슬로건이 시사하듯, 이번 개혁은 AI를 잘 다루는 소수 엘리트가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AI 시대의 주체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에듀테크 업계에도 중요한 신호다. 교육과정 설계 단계부터 AI가 전제되면, 콘텐츠 제공자·플랫폼 개발자·평가 시스템 구축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기회가 창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KAIST가 제시한 비전이 현실이 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교수들의 수용성, 학생들의 학습 부담, 기존 교육과정과의 충돌, 평가 방식의 변화 등이 모두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이공계 대학이 AI를 교육의 중심에 놓고 전면적인 재설계에 나선 것은, 한국 고등교육의 미래를 논하는 데 있어 더 이상 AI를 ‘옵션’으로 취급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번 개혁이 성공한다면 KAIST는 단순한 연구 중심 대학을 넘어, AI 시대의 새로운 대학 모델을 제시하는 선구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한국 에듀테크 산업의 지형도를 바꾸는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