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 없는 AI 교실, 효율의 이면에 드리운 불평등의 그림자
2026년 8월 12일, 서울에서 개막한 '2026 에듀플러스위크' 박람회는 단순한 신기술 전시의 장을 넘어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하는 자리였다. AI 기반 서·논술형 평가 솔루션과 학교생활기록부 자동 작
ptsn.co.kr 보도 규범 없는 AI 교실, 효율의 이면에 드리운 불평등의 그림자
2026년 8월 12일, 서울에서 개막한 '2026 에듀플러스위크' 박람회는 단순한 신기술 전시의 장을 넘어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하는 자리였다. AI 기반 서·논술형 평가 솔루션과 학교생활기록부 자동 작성 기술이 현장에서 공개되며, 인공지능이 더 이상 선택적 보조 도구가 아니라 교육 운영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는 순간을 목격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기술적 진보의 이면에는 규범의 공백과 교육 불평등 심화라는 구조적 과제가 도사리고 있다. 기술이 교육의 본질적 목적에 종속되지 않은 채 효율성만을 추구할 경우, 그 결과는 결국 교육 현장의 혼란과 사회적 격차 확대로 귀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박람회에서 가장 주목을 끈 것은 평가 생태계의 근본적 전환이었다. 공개된 AI 기반 영어 글쓰기 평가 솔루션 '허밍고'는 교사의 주관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표준화된 정량적 지표를 신속하게 생성하는 방식으로, 대량 평가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국내 한 교육청의 파일럿 테스트에서는 1,000편 이상의 논술 답안을 단시간 내에 채점하는 데 성공했으며, 채점 결과의 일관성도 인간 평가자 간 합의율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평가의 타당성에 있다. 문장 구조와 논리 전개의 정합성은 측정 가능하더라도, 창의성과 독창성 같은 질적 요소를 알고리즘이 어떻게 공정하게 판단할 것인지는 여전히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국제적으로도 OECD 회원국들이 2020년대 초반부터 AI 보조평가를 실험해 왔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최종 판정은 인간 평가자의 검토를 거치는 이중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기술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맹신하기보다는, 평가의 맥락적 해석과 판단의 최종 책임을 인간에게 두는 방식이 표준으로 정착된 것이다.
학교생활기록부 자동화 역시 교사 업무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박람회에서 선보인 '하마룸'과 개인화 교육 솔루션 '임팩트 스페이스'는 학생의 학습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생기부 초안 작성과 맞춤형 학습 경로 제안을 자동으로 지원한다. 교사들의 행정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지만, 동시에 '기록의 알고리즘화'가 내포하는 편향의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동 문장 생성 시스템이 특정 표현을 과잉 반복하거나, 학습 데이터의 편향이 소수 집단 학생의 평가에 불리하게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한국어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알고리즘이 온전히 포착하지 못할 경우, 학생의 성장 과정을 왜곡된 방식으로 기록할 위험도 존재한다. 이는 기술 설계 단계에서부터 윤리적 검토가 병행되어야 할 사안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시장 성장 속도와 규범 정비의 불일치다. 교육부는 2023년 에듀테크 산업이 2026년 11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발표한 바 있다. 실제로 이번 박람회에 참가한 기업 수와 출품된 솔루션의 규모는 이러한 성장세를 실감케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규제 체계와 표준이 기술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람회에 출품된 다수의 솔루션이 학생 개인정보 수집과 학습자 프로파일링을 전제로 하고 있음에도, 현행 개인정보보호법과 초·중등교육법 체계 내에서 이를 어떻게 허용하고 통제할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상태다. 산업적 이해관계가 빠르게 형성되는 상황에서 규범의 지연은 학교 현장의 법적·윤리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한 교육법 전문가는 "AI의 교육적 활용에 관한 별도의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기 전까지는 각 학교가 자체 기준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어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교육 불평등의 재편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는 과제다. 디지털 기기 보급과 네트워크 인프라의 격차는 지역과 계층 간 교육 경험의 차이를 확대할 위험이 크다. 정부의 디지털 기기 보급 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지만, 가정의 디지털 환경과 교사의 디지털 숙련도 차이는 학생의 AI 기반 학습 수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에듀테크 도입이 교실의 표준이 될수록, 준비가 취약한 학교와 가정은 상대적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기기 보급의 문제가 아니라, 교사 연수와 교육 콘텐츠의 질, 그리고 가정환경의 지원 역량까지 포함하는 복합적 과제다.
교사의 역할 재정립 역시 피할 수 없는 숙제다. 박람회 현장에서 김현철 인공지능전략위원회 교육 TF 리더는 "AI가 단순한 기술 변화를 넘어 문명적 전환을 가져오고 있으며, 기술 개발자와 교육 실천자가 만나 새로운 교육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술 도입이 교사의 전문성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교사의 역할을 단순한 '기술 감독자'로 축소하면, 학생 지도와 교육적 판단의 질이 저하될 위험이 크다. AI 판단에 대한 교사의 최종 책임을 법적·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교육과정 속에서 교사 연수를 체계화하는 방안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번 에듀플러스위크가 에듀테크 업계에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기술의 잠재적 이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규범과 평가 기준, 그리고 책임 소재를 동시에 설계하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AI 도구의 확산으로 행정 효율과 평가 처리 속도가 개선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평가의 표준화, 기록의 알고리즘화, 학습 경로의 데이터화가 교육 시스템의 운영 원리를 바꾸는 과정에서, 대학 입시와 직업교육 체계의 신호 체계까지 재편될 전망이다. 11조 원 시장의 성장은 기술 공급자에게 기회이지만, 공공정책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요구한다. 어떤 교육을 기계에 맡길 것인지, 어떤 판단을 인간 교사에게 남길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기술 도입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 박람회는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