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억 예산과 제로 교사: 한국 AI 교육의 '현실 공백']
한 학교에서는 태블릿으로 AI 코딩 수업을 진행하고, 바로 옆 학교에서는 칠판에 알고리즘을 그린다. 같은 교육과정인데 교실마다 풍경이 다른 이유, 교육부는 묻지 않고 있다. 정부는 2026년 초·중·고 AI 교육을
tech42.co.kr 보도 [385억 예산과 제로 교사: 한국 AI 교육의 '현실 공백']
한 학교에서는 태블릿으로 AI 코딩 수업을 진행하고, 바로 옆 학교에서는 칠판에 알고리즘을 그린다. 같은 교육과정인데 교실마다 풍경이 다른 이유, 교육부는 묻지 않고 있다. 정부는 2026년 초·중·고 AI 교육을 본격화하며 1,141개 중점학교에 특별교부금 385억 원을 배정했다. 학교당 평균 3,400만 원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정작 그 교육을 이끌 교사가 현장에 없는 모순이 드러났다. 4개교 중 3곳은 AI 전담 교원이 배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2025년 초·중등학교 디지털 전환 현황 및 AI교육 인식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유효 응답 186개교 중 AI 전담 교원이 있는 학교는 50개교에 그쳤다. 73.1%에 해당하는 136개교는 전담 교원이 전혀 없는 '제로(0)' 상태였다. 학교급별로 보면 초등학교 배치율이 17.6%로 가장 저조했고, 중학교 37.9%, 고등학교 36.4% 순이었다. 특수학교 4곳은 전부 전담 교원이 부재했다. 이 데이터는 교육부가 강조하는 "AI 교육 기회 균등"이라는 기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저학년일수록, 특수교육 현장일수록 AI를 가르칠 인력이 없다는 뜻이기에, 정책의 사각지대는 가장 기본적인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예산은 내려갔으나 가이드라인은 비었다]
정부의 예산 투입은 거창했지만, 학교가 받았다는 것은 사실상 "방치"였다. 한 중학교 교사는 교육부 워크숍에서 "AI 구독료 대신 학생 교육 활동에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참고하라는 사례가 너무 부실해 결국 교사들이 알아서 만들라는 식"이라고 토로했다. 교육과정과 성취기준이 제시되지 않은 채 예산만 내려온 구조적 공백이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킨 것이다. 충남 서천초등학교 송근상 교사는 "AI 원리를 가르친다는 건지, 프로그래밍을 가르친다는 건지, 교육 도구로 활용하라는 건지, 개념조차 정리되지 않았다"며 정책의 모호함을 지적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역시 "정부의 AI 교육 정책은 중구난방"이라는 비판 제기하며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교육활동의 골격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조사에서 현장 교사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지원은 '체계적 AI 교육과정 및 성취기준 마련'이었지만, 이를 마련해줄 주체는 부재했다. 교사 연수(29.7%)와 예산 편성(25.2%)에 비해 교재 확보는 7.2%에 불과해, 자체 교재 개발 여력조차 부족하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게다가 186개교 중 53.8%인 100개교가 "AI 교육 실습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 규칙이 없다"고 답했다. 73%는 교육청 차원의 규칙 마련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학생들이 가장 민감한 데이터에 노출되는 교육 현장이, 그 데이터를 보호할 제도적 울타리 없이 운영되고 있다.
[지역 격차 3.4배: 같은 교육과정, 다른 교실]
복수 학교 담당 구조는 인력 부족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웠다.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5년 9월 기준 정보교사 463명이 두 개 학교를, 151명이 세 개 학교를 맡고 있었다. 도서·산간 지역에서는 한 교사가 최대 9개교까지 떠맡은 사례도 확인됐다. 전북에서는 6개 학교를 동시에 담당하는 교사가 10명에 달했다. 이는 일과 시간과 물리적 동선을 생각하면 사실상 제때 제대로 된 수업을 제공하기 어려운 구조다.
경기도는 중·고 정보교사 배치율이 114.1%로 가장 높았고, 강원은 33.9%로 가장 낮았다. 같은 해 같은 달 기준, 도시와 지방의 격차는 3.4배에 달했다. 전남 36.0%, 전북 40.1%, 경북 42.1% 등 지방 거점 지역들이 40%대에 머무른 반면, 수도권 중심의 경기도는 100%를 넘겼다. 강원의 경우 중학교 배치율은 27.3%, 일반고는 45.6%에 불과했다. 같은 나라, 같은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는 명제는 이미 균열이 갔다. 특정 지역 학교의 학생들은 교사가 돌아오지 않는 날이 반복되면서, AI 교육의 문 앞에서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다.
[학생은 앞서가고, 교사는 불안해한다]
정책과 현장보다 학생들의 일상은 훨씬 빠르게 움직인다. 여성가족부 '2024년 청소년 매체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 1만 7,140명 중 49.9%가 생성형 AI를 이용해본 경험이 있었다. 학년별로 보면 초등학생 18.4~36.2%, 중학생 40.9~54.9%, 고등학생 71.3~77.5%로, 고학년일수록 이용률이 급격히 치솟았다. 미국 교육기업 체그(Chegg)의 15개국 대학생 조사에서 한국 대학생의 AI 사용률은 84%에 달했다. 2023년 23%에서 2년 만에 61%포인트나 뛰어올라, 조사 대상국 중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학교 시스템은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의 'AI 인덱스 2026'에 따르면, 미국 중·고등학교 중 AI 정책을 갖춘 곳은 50%에 그쳤다. 그나마 정책이 있다고 답한 미국 교사 중 "학교 정책이 명확하고 포괄적이다"고 답한 비율은 단 6%뿐이었다. OECD의 교수·학습 국제조사(TALIS) 2024에서 한국 교사의 수업 AI 활용률은 42.7%로 평균 36.3%를 웃돌았지만, 이 수치는 활용의 양이 아니라 활용 의 빈도를 뜻할 뿐이다. 동시에 한국 교사 83.4%는 "학생들이 타인의 자료를 자신의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했고, 74.7%는 "학생 개인정보 보호 위협", 71.6%는 "부적절하거나 부정확한 내용 추적"에 각각 우려를 표했다. 교사들이 AI를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것보다, 가르쳤을 때 생길 문제를 더 크게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존 격차 위에 AI가 얹혔다]
공교육이 빈자리를 드러내는 동안, 사교육 시장은 거센 흐름으로 응답했다. 통계청과 교육부의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작년 사교육비 총액은 29조 2천억 원으로 전년 대비 7.7% 증가했다. 사교육 참여율은 역대 최고치인 80.0%에 도달했다. 학령인구가 1.5% 감소했는데도 총액이 늘었다는 사실은, 학생 1인당 교육비가 실제로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AI 과외, AI 학습 코치, AI 코딩 학원 등 새로운 교육 서비스가 사교육 시장을 채우는 동안, 공교육은 예산은 받았지만 가르칠 사람을 구하지 못한 결과를 그대로 안게 됐다.
[KEDI 분석과 격차의 실체]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분석은 디지털 격차가 그대로 학습 격차로 직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초등학생의 디지털 리터러시는 잠재 프로파일 분석(LPA) 결과 '우수', '일반', '잠재취약', '취약'의 4집단으로 명확히 분리됐다.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2 자료 분석에서, 국내 중등학교 학생들은 읽기·수학·과학 모든 과목에서 학업 성취 수준이 높을수록 디지털 자원의 학습적 활용도도 높았다. 교원 39인 심층면담에서도 "학업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디지털 역량도 높다"는 진술이 나왔다. 가구 소득과 지역에 따라서도 동일한 패턴이 반복됐다. 7개 하위 요소 모두에서 고소득이 저소득을, 특별·광역시가 읍면 지역을 앞섰다. "AI 교육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선언은 선언으로만 남았고, 실제로는 가장 필요한 학생에게 가장 덜 닿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연간 434명의 양성, 1만 개 학교의 요구]
구조적 한계의 뿌리는 양성 체계에 있다. 교육부가 이정헌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사범대학 컴퓨터교육과는 9곳에 불과하고 총 입학정원은 193명이다. 2021년 182명에서 5년간 변화를 보여줄 만큼, 수요 대비 공급의 기울기는 거꾸로다. 정보교사 1명이 5개 학교를 돌아야 하는 강원과, 제로 전담교원 학교 73%가 공존하는 풍경은, 장기적 관점에서는 설계 단계의 실패를 드러낸다. 이정헌 의원은 "AI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좋은 '컴퓨터 선생님'들이 더 많아져야 하는데, 공급이 현장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초중고 학생들이 전문 교사 지도 아래 AI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AI 강국의 기반이 마련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조사에 참여한 신승기 서울교대 교수 등 연구진도 "AI 교육 전담 교원 배치는 전체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특히 초등학교와 특수학교에서 그 한계가 두드러진다"며 "향후 AI 교육의 실질적 안착을 위해 전담 교원 확보와 인력 체계 개선이 핵심 과제로 검토돼야 한다"고 밝혔다.
[에듀테크 산업에 던지는 화두]
이번 실태는 단순히 공교육의 일화가 아니다. 에듀테크 업계가 다음 분기를 읽어야 할 중요한 시그널을 품고 있다. 무엇보다 '플랫폼이 곧 솔루션'이라는 환수는 끝났다. AI 도입은 알고리즘과 모델의 정교함보다, 그것을 가르치고 운용할 사람에 의해 완성된다. 결국 에듀테크 서비스는 학교 현장에서 누가, 어떤 맥락으로 쓰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는 점이 다시 확인됐다. 단순히 학생 1인당 학습 시간을 늘리는 상품을 넘어, 전담 교원의 수업 설계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주는 '교사용 AI 동반자'에 대한 수요가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시장 확대의 이면에는 더 거센 균열이 도사린다. 정부 예산과 무관하게 사교육 시장의 29조 원 흐름은 이미 가계의 선택으로 굳어졌고, 여기에 AI 기반 학습 서비스가 더 빠르게 흡수되며 양극화는 가속화된다. 에듀테크 기업들은 저소득·도서·산간·특수교육 영역을 대상으로 한 저비용·고임팩트 모델을 본격적으로 모색해야 하고, 동시에 정책 입안자들과는 개인정보 보호, 데이터 거버넌스, 교육과정 정렬이라는 주제를 놓고 거버넌스 설계에 함께 들어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본질적인 화두는 남는다. "385억 원을 받은 학교에서 교사가 단 한 명도 AI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학교의 실패인가, 아니면 시스템의 실패인가." 에듀테크는 기술로 답할 수 있는 영역과 구조로 답해야 하는 영역을 분별하는 성숙기를 지금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