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④ 싱가포르 AI 교육의 네 가지 원칙 — 한국, 세 모델의 갈림길에 서다
싱가포르는 자체 개발, 말레이시아는 빅테크 의존, 중국은 플랫폼 수출. 세 편의 시리즈를 거쳐 돌아보니, 한국은 이 셋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국만의 길은 존재하는가.
지금까지 세 편을 통해 동아시아·동남아 AI 교육 플랫폼의 세 가지 모델을 살펴보았다. 첫 편에서는 싱가포르가 SLS라는 국가 단일 플랫폼 위에 AIEd 프레임워크를 구축한 사례를, 둘째 편에서는 말레이시아의 DELIMa를 중심으로 ASEAN 각국이 싱가포르 모델을 각자의 조건에 맞게 변형하는 과정을, 셋째 편에서는 중국의 iFLYTEK와 '일대일로' 교육 디지털화 전략을 분석했다.
이제 마지막 편의 주인공은 한국이다. 한국은 위 세 모델 중 어디에 서 있으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한국의 선택: AIDT, 다중 플랫폼 경쟁의 실험
한국 교육부는 2023년 AI 디지털 교과서(AIDT) 도입을 발표했다. 2025년부터 수학·영어·정보 교과에 우선 도입하고, 2028년까지 전 과목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발표 이후 끊임없는 논란에 휩싸였다.
AIDT의 가장 큰 특징은 '다중 플랫폼' 방식이다. 민간 출판사와 에듀테크 기업이 각자 AI 교과서를 개발하면, 교육부가 이를 인증하는 구조다. 이는 싱가포르의 '단일 플랫폼' SLS와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단일 vs 다중: 두 모델의 철학적 차이
싱가포르 SLS의 핵심 철학은 '통일된 기준'이다. 모든 학교가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기 때문에 데이터 표준이 하나로 통일되고, AI 모델의 학습 효율이 높아지며,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쉽다. 단점은 플랫폼에 대한 전적인 의존도와 혁신 속도의 둔화 가능성이다.
한국 AIDT의 핵심 철학은 '경쟁을 통한 혁신'이다. 여러 기업이 경쟁하면 더 좋은 AI 교과서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다. 단점은 데이터 표준화의 어려움, 플랫폼 간 상호운용성 부재, 그리고 교사들의 학습 부담 증가다.
흥미로운 점은 두 모델이 상반된 듯 보이면서도, '국가가 AI 교육의 방향을 설정한다'는 원칙에서는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싱가포르는 국가가 플랫폼 자체를 만들고, 한국은 국가가 인증 기준을 만든다. 접근법은 다르지만, '시장이 아니라 정부가 기준을 정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AIDT의 세 가지 난제
한국의 AIDT 정책이 직면한 현실적 난제는 세 가지다.
첫째, 개인정보보호법과의 충돌
AI 교과서가 학생의 학습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려면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은 미성년자 데이터 수집에 매우 엄격하다. 학부모 동의, 학교장 승인, 데이터 암호화, 목적 외 사용 금지 등 복잡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는 AI 모델의 학습 데이터 양을 제한하는 현실적 장벽이다.
반면 싱가포르는 '국가 플랫폼'이라는 이유로 데이터 수집·활용에 대한 법적 프레임워크를 비교적 단순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정부가 직접 운영하므로 '개인정보보호 vs AI 발전'의 균형을 행정적으로 조정할 여지가 크다.
둘째, 교사 수용성
2024년과 2025년, 한국 교사 단체들은 AIDT 도입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AI가 교사를 대체할 것인가'라는 불안, 'AI 교과서의 교육적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회의론,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 증가에 대한 건강 우려' 등이 주요 쟁점이었다.
싱가포르가 AIEd 프레임워크에 '교직 윤리'를 포함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AI 도입 초기부터 교사의 전문성을 프레임워크의 일부로 편입시킴으로써, 교사 조직의 저항을 최소화했다는 점은 한국이 주목할 만한 전략이다.
셋째, 민간 기업 간 경쟁의 역효과
다중 플랫폼 방식은 경쟁을 통한 혁신을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플랫폼 락인(Lock-in)' 현상이 우려된다. 한 학교가 특정 출판사의 AI 교과서를 도입하면, 데이터가 해당 플랫폼에 축적되고, 다음 학년도에도 같은 플랫폼을 유지할 유인이 생긴다. 결과적으로 시장이 소수 대형 출판사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다.
싱가포르는 이 문제를 '단일 플랫폼, 다양한 콘텐츠'라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플랫폼은 SLS로 통일하되, 콘텐츠는 여러 공급자로부터 받는 구조다. 이는 '플랫폼 독점'과 '콘텐츠 경쟁'을 분리한 절충안으로 볼 수 있다.
K-에듀테크, 글로벌 경쟁력은?
한국 에듀테크 산업은 기술력 자체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NE능률, 천재교육, 미래엔, 아이스크림에듀 등 주요 기업들은 AI 기반 학습 시스템을 자체 개발했고, 일부 기업은 베트남·인도네시아·중동 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력 측면에서 한국은 분명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 언어 장벽이 첫째다. 한국어 기반으로 개발된 AI 교육 시스템을 영어·현지어로 포팅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 둘째, 한국의 에듀테크 기업들은 내수 시장에 집중되어 있어 해외 마케팅 역량이 약하다. 셋째, 중국의 iFLYTEK처럼 '정부가 뒷받침하는 해외 진출 전략'이 부재하다.
이 지점에서 싱가포르의 SLS와 비교되는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있다. 'SLS를 한국의 AIDT처럼 다중 플랫폼으로 전환하면 더 경쟁력이 생길까? 아니면 한국도 SLS 같은 단일 플랫폼으로 가야 할까?' 정답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한국이 선택한 '다중 플랫폼 경쟁' 모델이 아직 증명해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이다.
시리즈를 마치며: 세 가지 모델, 하나의 질문
지금까지 네 편의 시리즈를 통해 동아시아·동남아 AI 교육 플랫폼의 세 가지 접근법을 살펴보았다.
싱가포르 모델: 국가가 직접 플랫폼을 개발하고 운영한다. 데이터 주권과 품질 통제에는 가장 강력하지만, 작은 국가에 최적화되어 있다.
동남아 모델: 국가가 방향을 설정하되 기술은 글로벌 빅테크에 의존한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이지만, 데이터 주권에서 타협이 필요하다.
중국 모델: 국내 시장에서 검증된 플랫폼을 해외에 수출한다. 가격 경쟁력은 최강이지만, 데이터 식민주의에 대한 의문이 따라다닌다.
한국 모델: 민간 경쟁을 통해 AI 교과서를 발전시킨다. 혁신의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표준화와 데이터 통합에서 과제를 안고 있다.
네 모델은 각기 다른 선택을 했지만, 모두 같은 근본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 AI 시대, 교육의 공공성(Public Good)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
싱가포르는 '국가의 강력한 개입'이라는 답을, 중국은 '국가가 주도하는 산업 수출'이라는 답을, 동남아 국가들은 '실용적 타협'이라는 답을, 한국은 '시장 경쟁을 통한 질적 향상'이라는 답을 각각 내놓았다.
어느 모델이 옳은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생성형 AI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고, 교육의 효과를 측정하는 기준도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AI 교육은 더 이상 기술의 문제만이 아니라, 누가 결정하는가,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 시리즈가 그 질문을 던지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시리즈 전체 목록:
1편: 싱가포르 AI 교육의 네 가지 원칙 — SLS가 보여주는 국가 플랫폼의 가능성
2편: 말레이시아가 SLS를 복제한 방법 — 동남아 AI 교육 플랫폼 전쟁
3편: 중국의 AI 교육 플랫폼 수출 전략 — iFLYTEK, 일대일로, 그리고 데이터 식민주의
4편: 한국, 세 모델의 갈림길에 서다
참고 자료: 한국 교육부 AIDT 정책 브리핑 | NE능률·천재교육·아이스크림에듀 사업보고서 | UNESCO Global Education Monitoring Report 2025 | OECD Digital Education Outlook 2025
본 기사는 심층 분석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시리즈 전체는 feature-series 태그로 조회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