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④ AI 시대, 교육 패권을 누가 쥐는가 —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AI 디지털 교과서를 세계 최초로 도입한 나라, 그런데 왜 WDEC는 모르는가
한국은 지금 흥미로운 모순 속에 있다.
세계 최초로 공교육에 AI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 도입한 나라이면서, 동시에 두 시간 거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디지털 교육 컨퍼런스를 사실상 무관심 속에 흘려보낸 나라다. AI 교육 기술력과 정책 의지는 세계 최고 수준을 지향하지만, 그 시선의 방향은 여전히 런던과 워싱턴을 향해 있다.
이 방향 설정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다만, 판이 어디서 짜이고 있는지를 함께 보지 못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엉뚱한 경기장에서 혼자 달리는 것과 같다.
세계 최초의 실험, 그리고 현실의 마찰
2025년 3월 수학·영어·정보 교과에서 시작된 AI 디지털 교과서(AIDT) 도입이 2026년에는 국어·사회·과학 등 주요 교과로 대폭 확대되고 있다. 공교육에 AI 개인화 학습을 전면 도입하는 실험은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이 규모로 시도하지 않았다. 그 자체로 한국은 글로벌 AI 교육의 가장 대담한 현장 실험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복잡하다. 3년간 1조 4,093억 원이 투입되고도 학생 활용률이 8.1%에 그쳤다는 감사원 결과가 나왔고, 483만 학생의 학습 이력이 국가 데이터베이스와 민간 에듀테크 기업 서버 사이를 오가는 데이터 주권 공백 문제도 제기됐다. 세계가 주목하는 실험이지만, 그 실험의 내부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이 쌓여 있다.
비교의 관점에서 흥미로 지점이 있다. 한국 정부는 AI 디지털 교과서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국가 주도 상의하달 방식의 전면 도입은 4개월 만에 좌초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중국이 2020년부터 플랫폼을 깔고 데이터를 축적하며 점진적으로 확장한 것과 대비되는 접근이다.
K-에듀테크의 실력과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에듀테크 생태계의 기술력은 결코 낮지 않다.
2026년 국내 에듀테크 시장은 11조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며, 공교육 도입 확대, B2G·B2B 사업 성장, 데이터 표준 체계 경쟁, K-레퍼런스 스쿨 구축, 산업 얼라이언스 강화가 시장 방향을 결정할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개별 기업들의 글로벌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콴다는 전체 가입자의 90%가 해외 이용자이며 베트남·일본·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시장을 넘어 미국 버클리에 오피스를 개설하고 북미 시장을 겨냥한 신규 서비스를 출시했다. 또 다른 기업은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싱가포르 교육부의 디지털 교과서 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국방부 산하 기관과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이 성과들은 대체로 개별 기업의 개별 진출이다. 중국이 국가-플랫폼-기업이 통합된 생태계 전략으로 220개국을 동시에 공략하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글로벌 전략은 아직 산발적이다.
한국에듀테크산업협회는 학습 데이터 표준, 개인정보·AI 윤리 기준 등에서 국제 표준과 호환 가능한 프레임을 만들고, 에듀테크·콘텐츠·클라우드·AI 기업이 함께하는 'K-에듀테크 얼라이언스'를 통해 공동 브랜드와 패키지 수출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방향은 맞다. 문제는 속도와 시야다.
WDEC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세계 디지털 교육 연맹(World Digital Education Alliance)은 현재 43개국 115개 기관을 포함하고 있다. 이 43개국 안에 한국이 얼마나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WDEC의 의제 설정 과정에 한국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지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확인이 안 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답이다.
반면 한이 잘 아는 Bett는 어떤가. Bett UK 2026에는 130개국에서 3만 7,000명이 참가했으며, 700개 이상의 에듀테크 기업이 전시에 나섰다. 한국 기들도 매년 이 행사에서 부스를 운영하고, 관계자들이 방문한다. Bett에서의 존재감은 분명하다. WDEC에서의 존재감은? 이 질문 자체를 아직 해본 사람이 많지 않다.
데이터 주권이라는 공통 과제
한국과 중국이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으로 직면한 문제가 있다. 바로 학생 데이터의 주권이다.
미국 FTC는 2025년 1월 COPPA 규칙을 개정해 에듀테크 기업의 아동 데이터 상업 활용을 전면 제한했고, EU AI Act는 교육 분야 AI 시스템을 '고위험'으로 분류해 별도 규제를 부과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아동 학습 데이터에 대한 별도 강화 규정이 제한적이며, AI 기본법에도 교육 분야 데이터에 관한 특별 조항이 없다.
483만 명의 학생이 AI 교서를 쓰는 나라에서, 그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를 보호하는 전용 법체계가 없다는 것은 단순한 행정 공백이 아니다. 글로벌 AI 교육 거버넌스 논의에서 한국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한국의 좌표: 가능성과 과제 사이
정리하면 한국의 지금 위치는 이렇다.
세계 최대 규모의 AI 교육 실험을 진행 중인 현장 국가이면서, 동시에 그 실험의 결과를 국제 표준 논의로 연결시키는 다리를 아직 제대로 놓지 못하고 있다.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경험, K-에듀테크의 기술력, 높은 교육열과 디지털 인프라는 분명한 자산이다. 하지만 이 자산이 글로벌 AI 교육 거버넌스 판에서 한국의 발언권으로 전환되려면, 판이 어디서 짜이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 판 중 하나가 항저우에서 열렸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 없었다.
마지막 편에서는 중국·미국·EU의 삼각 구도 속에서 한국을 포함한 중견국이 AI 교육 거버넌스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그 조건과 전략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