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① AI 시대, 교육 패권을 누가 쥐는가 — 항저우에서 울린 AI 교육의 총성
BettShow는 알아도 WDEC는 모른다 — 한국 에듀테크 전문가들이 놓치고 있는 거대한 흐름
매년 1월이면 런던 엑셀(ExCeL) 전시장은 전 세계 교육 관계자들로 북적인다. Bett UK 2026에는 130개국 이상에서 3만 7천 명의 교육 관계자가 참가했으며, 700개 이상의 에듀테크 기업이 전시에 참여했다. 한국에서도 매년 적지 않은 수의 교육 전문가, 기업 관계자, 정책 입안자들이 이 행사를 찾는다. Bett는 이미 국내 에듀테크 업계에서 '성지순례'에 가까운 행사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지난 5월 11일, 지구 반대편도 아닌 불과 두 시간 거리의 중국 항저우에서 또 다른 거대한 교육 컨퍼런스가 열렸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2026 세계 디지털 교육 컨퍼런스(WDEC) — 중국 교육부가 2023년부터 3년 연속으로 키워온 이 행사는 올해 65개국 850여 명의 관계자가 참석하며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더 주목할 점은 개막식 전날 열린 '글로벌 청소년 AI 혁신 캠프'다. 캄보디아, 이집트, 러시아, 태국 등 23개국 27개 팀의 고교생들이 참가한 이 캠프는, 단순한 부대행사가 아니다. 다음 세대의 AI 교육 네트워크를 중국이 직접 설계하겠다는 장기 포석으로 읽힌다.
WDEC, 3년의 궤적 — 우연이 아닌 설계
WDEC는 올해 갑자기 등장한 행사가 아니다. 중국 교육부는 2023년부터 3년 연속으로 컨퍼런스를 개최하며 매년 규모와 국제 참여도를 꾸준히 키워왔다. 이는 전형적인 다자 외교 전략의 패턴이다. 처음엔 소규모로 시작해 참여국을 늘리고, 어느 순간 '이 논의의 장은 여기'라는 인식이 굳어지면 의제 설정권이 자연스럽게 주최국에게 귀속된다.
개막식에서 한정(韩正) 중국 국무원 부주석은 직접 나서 "AI와 교육의 융합은 글로벌 교육 발전의 중요한 기회인 동시에 모든 국가가 직면한 공통 과제"라며, 중국이 모든 당사자와 함께 디지털 교육의 비전과 거버넌스 경로를 탐구하고 규칙 및 표준 체계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부주석급 인사가 직접 개막을 주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행사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전략적 의지를 보여준다.
"누가 자를 만드는가" — 표준 선점의 정치학
이번 WDEC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행사 자체보다 행사장에서 발표된 성과물들이다. 중국 교육부는 이번 컨퍼런스에서 글로벌 디지털 교육 발전 지수(Global Digital Education Development Index) 2026을 공개했다. 전 세계 디지털 교육 수준을 측정하는 국제 벤치마크를 중국이 직접 설계해 발표한다는 의미다.
숫자와 기준을 누가 만드느냐는, 누가 게임의 규칙을 정하느냐와 같다. ISO 인증이 제조업 무역을 좌우하듯, AI 교육의 국제 기준을 선점한 국가는 이후 수십 년간 글로벌 에듀테크 시장의 방향을 사실상 주도할 수 있다. EU가 AI 규제법(AI Act)으로 글로벌 AI 거버넌스의 틀을 짜려 하고, 미국이 자국 중심의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동안, 중국은 교육이라는 비교적 '비위협적인' 영역에서 먼저 국제 표준을 선점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AI 교육 응용 시스템에 관한 2종의 표준도 함께 발표됐다.
이미 세계에 깔린 플랫폼 — 지금 접속해볼 수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csmartedu.cn에 접속해보자. 중국 교육부가 운영하는 스마트교육 국제판 플랫폼이다. 유엔 공식 6개 언어를 지원하며, 맞춤형 무료 학습 서비스와 우수 디지털 교육 자원을 제공한다.
국내판 플랫폼(smartedu.cn)의 규모는 더 방대하다. 2025년 5월 기준 1억 6,400만 명의 등록 이용자를 확보했으며, 총 613억 회의 방문 수를 기록했다. 200개국 이상을 커버하고 있으며, 2022년 UNESCO ICT in Education Prize를 수상했다. 이번 WDEC에서는 글로벌 AI 교육 서비스 플랫폼, 평생학습 허브, 중국어 학습 커뮤니티 등 세 가지 핵심 기능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세 축으로 읽는 중국의 AI 교육 전략
1. 인프라
220개국, 1억 6천만 등록 이용자, 613억 회 방문 — 중국 스마트교육 플랫폼은 단순한 웹사이트가 아니라 국가가 운영하는 글로벌 디지털 교육 인프라다. 무료 제공 모델은 자체 AI 교육 인프라를 구축할 여력이 없는 개도국에 강력한 유인책이 된다.
2. 표준화
글로벌 디지털 교육 발전 지수와 AI 교육 응용 표준 2종. 중국이 자체 표준을 만들어 국제 규범화하는 전략의 첫 걸음이다.
3. 국제 협력
우즈베키스탄, 브라질 등과 AI 교육 분야 정부간 협정 체결. 7개 테마 답사 루트를 통해 항저우 춘휘 초등학교의 AI 언어교육, 저장대학의 AI 에이전트 연구, 알리바바와 유니트리 로보틱스의 첨단 기술을 국제 참가자들에게 직접 시연했다. UNESCO 사무총장 카를 엘레나니도 참석해 "중국과의 교육 협력을 심화해 기술 발전이 윤리적이고 포용적이며 공평한 방식으로 루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Bett는 알고, WDEC는 모른다 — 이 비대칭이 문제다
본 기획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교육 전문가, 에듀테크 기업, 정책 관계자들은 Bett(런던), ISTE(미국), SXSWedu(텍사스) 같은 영미권 행사에는 익숙하다. 이 행사들은 국내 업계에서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참가 후기가 미디어에 소개되고, 기업들이 전시 부스를 열기도 한다.
반면 불과 두 시간 거리에서 열리고 있는 WDEC, 그리고 이미 200개국 이상에 무료로 깔린 중국의 스마트 교육 플랫폼은 국내 담론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 비대칭된 시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우리가 보지 않는 동안에도, 판은 이미 짜여가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200개국에 무료로 깔리는 중국 스마트 교육 플랫폼의 실체와, 그것이 '디지털 일대일로'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살펴본다.
참고 링크: 중국 스마트교육 국제판 | 중국 스마트교육 국내판 | 중국 교육부 WDEC 공식 소개 | China Daily | CGTN
본 기사는 심층 분석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